교토, 일본(1)- 06/09/2023, 아침부터
돌아올 곳이 있는 한 여행은 많이 떠날수록 즐겁다. 물론 어느 지점을 넘으면 그 즐거움이 서서히 줄어들겠지만. 친구와 후쿠오카에서 돌아오고 약 2주가 지난 시점, 이번에는 가족들과 교토로 떠나게 되었다. 후쿠오카, 서울, 울산(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교토까지. 약 3주간의 여정이 바쁘게 이어졌고, '떠남'이 주는 기분 좋은 설렘이 그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교토 여행은 원래 엄마, 아빠 둘이 떠나는 여행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설득 끝에 네 가족이 모두 떠나는 것으로 결정됐다. 가정주부인 엄마,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는 아빠, 대학원생인 여동생과 사회로의 첫 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나. 이렇게 각기 다른 네 명의 '백수'로서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여행이었다. 엄마는 나와 동생이 직장을 다니고 결혼한 후에 떠나는 여행은 이제까지 와의 여행과는 다른 느낌일 것이라며, 이번 여행은 꼭 넷이 가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중 일정이 제일 바쁜 동생은 망설였지만 끝내 '오케이'하였다. 나는 별다른 고민 없이 여행에 참여하기로 했다.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게 되다니. 마치 내가 여행유튜버라도 된듯한 기분이었다.
해외여행은 언제나 준비할 것도 많고 걱정도 많지만 이번 여행은 더욱 그랬다. 우선 우리 네 가족만 떠나는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친척들과 다 같이 떠나는 해외여행은 10여 년 전까지 몇 번 다녀봤지만 우리 넷만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해외는 고사하고 고등학교 때 이후로 넷이 국내여행을 간 적도 없더라.
게다가 엄마 아빠는 해외 자유여행 경험이 전무하다. 엄마는 이전 여행을 시작으로 자유여행 경험을 쌓아 스페인 자유여행을 떠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있었다. 물론 그때도 엄마의 필수 준비물은 핸드폰, 여권, 그리고 나 혹은 동생일 것이다.
그 누구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내가 이 여행을 이끌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다. 블로그나 유튜브를 통해 습득한 기초 일본여행 지식을 나에게 전파하며 설렘과 걱정이 묻어있는 부모님의 표정을 보며 나는 '조용히 하고 내 말만 따라'와 같은 꽤나 당차고 버릇없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비짓재팬이랑 종이 신고서랑 같이 써야 한다던데."
"패스권이라는 게 있대. 너 알고 있었니?"
이와 같은 질문 세례들을 하루에도 수 없이 받고 나면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만큼 내가 철저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다녀온 현시점 되돌아보면 나만의 힘으로 여행을 무사히 끝낸 것은 아니었다. 동생은 생각보다도 더 큰 도움이 되었고, 예전만큼 날카롭진 않지만 아빠 역시 중간중간 현명한 선택을 하기도 했으며, 엄마의 유머는 우리의 여행이 삐걱거리지 않도록 기름칠해 주었다. 어쩌면 우리의 첫 가족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나 혼자 너무 긴장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네 가족은 비행기 가운데 자리에 쪼로록 앉아 약 1시간 반 가량을 날아갔다.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내려 미리 예매한 하루카 열차를 타고 교토역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새삼스럽게 우리 가족에 대해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1) 아빠는 생각보다 혼잣말이 많으며,
2) 엄마는 생각보다 말을 한 번에 듣지 못했고,
3) 동생은 생각보다 훨씬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다.
가운데 좌석에 앉아 생각보다 혼잣말이 많은 아빠와 생각보다 말을 한 번에 잘 듣지 못하는 엄마의 대화(대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를 바라보는 일은 꽤나 즐거웠다. 여느 때처럼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기내식을 먹고 잠시 뒤에 우리는 간사이 공항에 착륙했다.
첫째 날과 마지막날 비행기.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빠 말에 따르면 간사이 공항은 간척지 위에 지어진 공항이라고 한다. 간척지 위의 활주로에 착륙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바닷물을 볼 수 있었다. 난 개인적으로 '바다'를 본 순간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에, 조그마한 비행기 창문 너머 손수건만 하게 보이는 바다라도 나를 흥분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간사이 공항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 가족. 우리의 소식통 아빠에 따르면 귀국하는 당일, 교토역에서 하루카 티켓을 뽑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한다. 아마 유튜브 쇼츠에서 얻은 정보인 것 같다.
하루카 열차는 예약한 것에서 끝이 아니라 예약 정보를 바탕으로 실물 티켓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자유석을 탈 계획이었기 때문에 돌아오는 날 열차 시간을 생각할 필요 없이 티켓 오피스에서 오는 날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티켓 발급기에서 줄을 서서 뽑는 방법도 있었지만 티켓 오피스 줄이 더 짧았기 때문에 (그리고 에어컨이 나왔기 때문에) 나 혼자 가족 대표로 줄을 서서 돌아오는 날 티켓을 받을 수 있었다. 교토 방향으로 가는 티켓은 오피스 앞의 직원에게서 교환했는데, 아마 중국인 아니면 대만인 직원이었던 것 같다. 오피스 내부에는 여러 직원이 각자 자리에서 순서대로 티켓을 교환해 줬는데, 내 차례에는 운이 좋게도 한국인 남자 직원분이 걸려서 궁금한 것을 모두 물어볼 수 있었다.
하루카에 탑승한 우리는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에 빗방울이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빗줄기는 점점 강해졌는데 다행히 교토역에 내릴 때쯤에는 비가 거의 그쳐 흩날리듯이 비가 뿌려댈 뿐이었다. 이마저도 시내버스를 탄 후에는 모두 그쳤다.
간사이 공항에서 오사카 시내를 거쳐 교토역까지. 약 한 시간 반 가량이 소모되었다. 평소 활동량이 적은 부모님이라 비행기에 기차까지 타는 일정이 무리는 아닐까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두 분은 더 쌩쌩했다. 걱정을 한시름 덜고 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내가 진짜 일본에 또 왔구나라는 것이 실감 났다. 도시와 시골길, 주택가가 몇 번이고 번갈아가며 창 밖을 지나갔다. 풍경은 변화무쌍했지만 모두 한 명의 손에 의해 그려진 그림인 듯 그 그림체에 통일성이 있었다.
하루카에서 내린 후 우리는 중앙 출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열차 플랫폼을 지나 개찰구 밖으로 나가니 생각보다 더 큰 규모의 <교토역>을 만날 수 있었다. <하카타역>처럼 여러 쇼핑몰이 지하로 이어져 있었고 일본인과 관광객들이 뒤엉켜 각자 길을 가고 있었다.
열차에서 나와 동생은 <포르타 다이닝>이라는 쇼핑몰 푸드 코트에 가서 먹을 만한 식당을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열차에서 내리니 마음 급한 아빠와 배가 고픈 엄마와 함께 복잡한 지하상가를 지나 포르타 다이닝을 찾는 것은 우리의 욕심이었다. 결국 우리는 교토역 지하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 근처에 위치한 <Estación café> 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가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카페였지만 간단한 점심 식사 메뉴도 있었다. 교토에는 이런 종류의 카페들이 많은듯했다. 우리 가족은 데미그라스 소스가 뿌려진 오므라이스 네 개를 주문하기로 했다. 의욕 넘치는 아빠는 테이블 위의 모든 일본어를 번역할 것처럼 핸드폰 렌즈를 갖다 대며 파파고 번역기를 돌렸다. 또한 테이블 위의 QR코드를 보고 'QR로 주문하는 거 아냐, QR?'이라 말하며 인터넷을 연결했다.
학구열 넘치는 아빠를 실망시키긴 싫었지만 나는 살짝 손을 들고 카페 점원에게 '데미그라스 오므라이스 욧츠 쿠다사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빠가 찍은 QR코드는 인스타그램 후기를 남기는 링크였다고 한다.
점심 식사를 마친 우리는 캐리어 세 개를 끌고 교토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숙소가 있는 기온까지는 약 2,30분이 소요되었는데, 3시가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교복을 입은 학생들로 버스는 점점 꽉 차게 되었다. 큰 캐리어 두 개와 작은 캐리어 하나를 끌고 버스에 탄 우리는 교토의 주민들에게 조금 미안함을 느꼈다. 오는 날 같은 버스에 타고 알게 되었는데, 교토에서는 여행객을 대상으로 '택시 타기' 캠페인을 진행 중인 것 같았다. 버스 창문에 붙어 있던 손바닥 두 개만 한 스티커에는 '캐리어를 끌고 온 여행객은 다른 승객들을 위해 택시 사용을 권장한다'는 내용이 영어로 쓰여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최대한 내 자리 사이로 구겨 넣으며 통로를 넓히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했다.
우리의 숙소인 <기온 엘리트 테라스>는 오픈한 지 1년이 되지 않은 신축 호텔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깔끔했고 우리가 묵은 스위트룸에는 일본식 욕탕과 작은 정원, 그리고 핀란드식 사우나도 있었다. 숙소에 이만큼 돈을 쓴 것은 우리 집이 굉장히 여유로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맛있는 음식'보다 '편안한 잠자리'를 선호하는 엄마의 취향을 내가 적극 반영한 결과였다. 친구와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할 때는 숙박비를 줄이는 것에 골머리를 앓았다면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적어도 나와 동생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뜨거운 것을 못 참는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온천과 목욕에 눈을 떴다. 후쿠오카에서는 4박 5일 동안 온천을 두 번 방문했고, 이번 교토 여행에서는 3박 4일 동안 욕조에 5번 정도 몸을 담갔다. 어느 날은 목욕을 하기 위해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일어나기도 했다. 노천탕에서 빈지노의 'Gym'을 듣는 것이 조그마한 로망이었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그 로망을 실현하게 되었다. 엄마의 여행 취향과 billboard 블루투스 스피커에게 감사를 표한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여행 첫째 날은 헤맴의 연속이었다.
이번 여행은 엄마의 취향에 따라 진행되었는데, 엄마가 교토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는 아기자기한 골목과 '실개천'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을 먹기 전 실개천 앞의 카페에서 빵과 커피를 먹기로 했다. 처음 걷는 거리는 실제 그 길이와 무관하게 엄청 길게 느껴지는 법. 만약 날씨가 더웠다면 그 체감 거리는 아마 배로 늘어날 것이다. 나는 구글맵에서 실개천 앞의 카페들을 뒤져봤고 <카페 치라쿠(cafe chi楽)>라는 곳을 찾았다. 1층은 이자카야, 2층은 카페로 운영하는 곳인데 2층에서 실개천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개천 앞 조명에 비친 카페 사진은 나와 엄마의 마음을 건드렸고 우리는 이곳을 우리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로 삼았다.
날씨는 더웠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국적인 풍경과 카모강 건너의 아름다운 목조건물들은 우리의 발걸음을 자꾸만 멈춰 세우고 카메라 버튼을 누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카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카모강을 바라보고 여러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고, 가게로 들어가려면 건물 뒤편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야 했다. 골목에는 저녁 장사를 위해 식재료와 술병들을 옮기는 아저씨로 어수선했다. 나는 구글맵에서 현 위치와 건물 하나하나를 비교하며 카페 치라쿠를 찾았는데, 문이 잠겨있는 것이다. 구글맵에는 아직 영업 중이라고 나오는데...
그때 내 눈에 띈 것은 가게 주인이 문 앞에 붙여 놓은 작은 달력 그림이었다. 이번 달에 쉬는 날에 동그라미를 쳐놓은 달력이었는데, 9월은 사흘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빨간 동그라미가 쳐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가게 인스타그램을 찾아보니 이 달력 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아무리 구글맵이 해외여행에서 '신'과 같은 존재더라도 가게 사정까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여행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나는 '내가 찾은 카페가 문이 닫았다'는 생각에 살짝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가게 사장에게 한 마디씩 한 후에(물론 사장님은 어디에도 없었지만) 바로 자리를 옮겼다. 기온을 헤매던 우리는 <Coffee Shop Nōen>을 찾았다. 교토 사람들의 혈관에 흐른다는 드립커피와 무난하지만 달달했던 팬케이크가 나를 위로해 줬다.
사실 가족 중에 어느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평소에 나와 조롱 티키타카를 주고받는 것이 일상인 동생조차도 아무런 비난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연 줄 알았던 가게가 문들 닫았다는 것은 여행지에서 겪을 수 있는 작은 불행에 불과했다. 한 번의 작은 실패를 경험한 나는 이어지는 교토 여행에서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도 모르는 새 가이드로서 여행을 이끌고자 했던 나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실개천이 흐르는 카페도 아니었고, 아직은 힘이 다하지 않는 여름 해 탓에 야경도 볼 수 없었지만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여정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시원한 커피를 혈관에 채운 우리는 저녁 먹기 전 휴식을 위해 다시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