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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Sep 14. 2023

노천 온천 김 모락모락

교토, 일본(2) - 06/09/2023, 저녁

기온의 건물들은 유별나게 튀는 가게는 없지만, 규칙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은근히 드러낸다.
숙소에서 소파가 있는 공간과 침대들이 있는 공간을 나누는 문. 종이가 발라져 있어 기댄 '척'만 하고 사진을 찍었다.



<Donguri Bridge>에서 카모강으로 내려가는 계단. 청계천 일대를 산책하던 때가 떠올랐다.


Donguri Bridge


 엄마는 여행 일정 중간중간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곤 한다. 이는 해외가 아니라 국내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숙소가 중요하고 숙소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 이날 역시 간단히 커피를 마시고 숙소에 돌아와 저녁 먹기 전까지 휴식을 취했다. 소위 여행에서 '뽕을 뽑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 특히 엄마와 아빠에게 휴식은 매우 중요했다. 휴식 없이는 오후나 저녁 일정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온시조와 우리 숙소를 잇는 다리가 있었다. 구글맵에는 <Donguri Bridge>라고 나오던데 일본어 발음은 잘 모르겠다. 카모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에 하나였는데, 다리 밑으로는 강둑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휴식을 취하거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항상 볼 수 있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은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있었다.


 3박 4일 동안 우리는 이 다리를 자주 지나다녔다. 웬만한 관광지로 가기 위해서는 이 다리 주변에서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다만 첫째 날 저녁에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최대한 숙소 근처에서 식당을 찾았다.




旬菜 よし田(Shunsai Yoshida)


 후쿠오카에서는 밥 먹을 곳을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됐었다.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만 했을 뿐 문을 닫는다거나 예약이나 줄을 서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줄을 서는 식당에 가기로 했다가 포기한 적은 있지만, 금방 그 일대에서 새로운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교토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교토는 후쿠오카보다 예약 문화가 더 정착되어 있었다.(그런 듯했다) 또한 작은 규모의 식당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에 식사시간에는 식당이 만석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줄을 서면 금방 들어갈 수도 있겠으나 아빠는 '줄을 서서 밥을 먹는 것'을 이해 못 하시는 분이었다. 엄마는 맛집에서 줄을 서본 경험이 아빠보다는 많았겠지만, 배가 고프면 조급해지는 경향이 조금 있었다. 아, 두 분 다 이 글을 안 읽어야 할 텐데.


 어쨌든 교토의 예약 문화를 얕잡아본 우리는 '숙소 근처 아무 데나 들어가서 먹으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과 함께 식당을 찾아 기온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1인당 무려 '1만 엔'이 넘는 가이세키 식당들을 지나고 라멘집과 우동집들을 지나자(우리 넷 모두 저녁으로 면요리는 당기지 않았다) 먹을만한 곳이 많지 않았다. 중간에 골목에서 <Mare>라는 스테이크 덮밥집을 발견했지만 우리를 발견한 직원이 'Sold Out'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와 사과했다. 저녁 8시쯤이었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식당은 재료가 소진될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적잖이 당황한 나는 부랴부랴 구글맵을 켰다. 이미 오늘 낮에 내가 찾은 카페가 문을 닫았던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배고픈 가족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했다. <Mare> 근처에서 식당을 검색하던 나는 <Gion Duck Rice>라는 곳을 발견했다. 특이하게 '오리덮밥'을 파는 곳이었는데 별점이 높았고 영어로 된 리뷰 중에는 이곳을 'hidden  gem'이라고 소개하는 리뷰도 있었다. 나는 나머지 가족에게 이곳을 소개했다. 지친 가족(그중에서 특히 어마)들은 이제 메뉴는 상관없었다. 나는 가족들을 이끌고 Gion Duck Rice가 있는 빌딩 지하로 들어갔다.


 빌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에서 비교적 쉽게 식당이 있는 빌딩을 찾을 수 있었는데, 이는 지하에 있는 식당들이 쭉 쓰여있는 간판에 오리와 밥 이모지가 그려져 있는 식당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지하로 들어간 우리는 빌딩 초입에 멈춰 섰다. 구글맵 사진에는 가게 문 앞에 흰색 천이 달려 있었는데 이 식당에도 흰색 천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묘하게 사진의 구도가 달랐다. '이 식당이 맞나' 하며 가게 앞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엄마는 '여기가 맞는 것 같다'며 가게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다. 배고픈 엄마에게 이 집이 맞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오리덮밥을 꼭 먹고 싶었던 나는 망설이며 가게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알아챘다. 이 식당이 아니라는 것을. 만약 이곳이 맞았다면 이 단락의 제목은 Gion Duck Rice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들어온 곳은 <Shunsai Yoshida>라는 이자카야 겸 식당이었다. 나중에 식사 후에 알게 됐는데, 빌딩 안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 보면 Gion Duck Rice에 갈 수 있었다. 다른 식당들보다 조금 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오리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약간 부러웠지만, 뭐 어쩌겠는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비록 내가 가고자 한 식당은 아니었지만 이곳 역시 평이 꽤 훌륭한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와 동생이 먹은 소고기 스키야키는 맛도 양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특히 파를 많이 준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불행하게도 엄마와 아빠는 다른 메뉴를 주문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내가 이 식당에 처음 들어올 때 알게 된 것은 첫째, 내가 찾던 곳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둘째, 우리 네 명이 따로 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 식사를 하고 있던 일행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와 동생, 아빠와 엄마가 각각 양쪽으로 찢어져 식사를 해야 했다. 식당이 워낙 작고 바 테이블 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다행히 먼저 온 일행이 식사를 마친 후 엄마와 아빠는 우리 옆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지만, 이때는 이미 주문을 마친 후였다. 아마 넷이 같이 앉았더라면 우리가 부모님에게 스키야키를 권했을 텐데. 엄마 아빠는 메뉴판의 큼지막하게 나와있는 소고기 사진은 보지 못한 채 장어덮밥도미 타다키 덮밥을 주문했다. (아마도? 반만 구운 도미가 밥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엄마는 도미 덮밥이 나오자 한 번 실망했고, 우리의 스키야키가 나오자 또 한 번 실망했다. 양이 충분했던 탓에 엄마 아빠에게도 소고기 몇 점을 드렸지만 엄마의 아쉬움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본의 아니게 엄마를 배신한 우리는 여행이 이어지는 동안 엄마의 투정을 들어줘야 했다.



교토에서 간간히 발견할 수 있었던 천을 사용한 제품 브랜드. 무심한듯 써있는 'Since 1615'가 브랜드에 깊이를 더한다.


다시 Donguri Bridge, 기온 시조


 엄마의 투정을 들으며 우리는 다시 Donguri Bridge를 건넜다.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마주치는 아름다운 배경 탓에 우리는 항상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사진 몇 장을 남긴 뒤에 다리를 마저 건넜다.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 섞였다. 그중에는 메이드복을 입고 메이드카페를 홍보하는 여성도 있었고,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무리도 있었으며, 가이드의 깃발을 따라 우루루 움직이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또한 많은 가게들도 만났다. 그중에서 <Eirakuya> 라는 천 소재 제품을 파는 곳에서 꽤 오랜 시간 구경을 했다. 교토 여행 중간중간에 위와 같은 문양의 발을 종종 만난 것으로 보아 여러 지점이 있는 브랜드인 듯했다. 여담으로, 일본에서는 저렇게 천으로 만든 발을 '노렌'이라고 한다고 한다. 교토의 골목길은 비와 햇빛을 막기 위해 지붕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탓에 골목을 걸으면서 가게 간판을 볼 수가 없다. 노렌은 이런 환경에서 행인과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우린 숙소로 돌아왔다. 목욕물을 받으며 샤워를 하고, 뜨거운 욕조에 들어가 billboard 스피커로 빈지노의 'Gym' 을 틀었다. '노천 온천 김 모락모락' 하는 가사 뒤에는 '하얀 설경 구경 설경구, ya'라는 가사가 나온다. 비록 설경은 없었지만 베란다의 작은 정원을 보니 오늘 하루의 피로가 가셨다.


 가족과 떠난 첫째 날 밤이 이렇게 지나고 있었다. 되돌아보면 한 번에 제대로 된 것이 없어 유독 피곤했다. 딱히 엄마 아빠를 '모시고' 여행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도 친구와 여행했을 때보다 피로감은 더했다. 10시도 되기 전에 숙소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확실히 친구와 떠난 여행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집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배경을 옮긴 우리 가족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같이 살았던 가족들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여행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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