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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Sep 15. 2023

교토: 커피와 나무와 녹차의 도시

교토, 일본(3) - 07/09/2023, 오전

<풀하우스>의 여자 사장님은 대만분이셨다. 입구의 작은 입간판에 대만 국기가 그려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풀하우스


 "교토 사람들의 혈관에는 커피가 흐른다."


 우리나라에선 녹차로 유명하지만 사실 교토는 일본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커피 소비량이 높다. 도시 전체의 '킷사'들만 봐도 교토 사람들의 커피 사랑을 알 수 있다. 간단한 식사를 판매하는 카페 정도를 이르는 말인 킷사. 마치 작은 코스 요리를 맛보는 것 같다. 어떤 가게든지 '모닝세트' 같은 메뉴를 주문하면 메인요리와 샐러드, 그리고 커피가 함께 나온다. 우리 가족이 둘째 날 아침 식사를 해결한 <풀하우스> 역시 이런 종류의 카페였다.


 풀하우스는 교토 여행 내내 우리 가족의 숙소였던 <기온 엘리트 테라스>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던 카페였다. '전형적인' (그러니까 다시 말해 계란과 빵이 포함된) 아침 식사를 원했던 엄마를 위해 구글맵으로 카페를 찾다가 발견한 곳이었다. 리뷰를 보니 여자 사장님께서 대만분이신 듯했는데, 실제로 가게 앞의 입간판에 대만 국기가 그려져 있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1인 1 메뉴씩을 주문해 나눠 먹었는데,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프렌치토스트도 있었다. 당연히 네 가지 메뉴 모두 커피가 포함된 세트로 주문했다. 특별한 맛은 없었지만 아침으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깔끔한 맛이었다. 특히, 전날 이 카페에서 피자를 판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에 피자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잘 한 선택이었다. 치즈가 많지 않고 전체적으로 묵직한 맛이 아니라서 콜라가 아닌 드립커피와도 잘 어울리는 메뉴였다. 성인 양 손바닥만 한 크기였으니 혹시 양이 부족할 것 같은 사람들은 하나 주문해도 좋을 듯하다.


버스에서 내려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다 보면 <철학의 길>이 시작된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이젠 조금은 익숙해진 길을 따라 버스 정류장을 찾아갔다. <철학의 길>을 따라 산책을 하며 <은각사>까지 가는 코스였는데, 숙소 근처에서 철학의 길이 있는 Kinrin Shako 앞 정류장까지 20분 정도만 버스를 타면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이 아닌 버스만이 가진 매력은 주변 풍경을 보면서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지하철도 가끔씩 밖을 볼 수 있지만 속도가 빨라서 도시 전체 풍경을 보는데 적합한 반면, 시내버스는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지하철보다 자세히 도시를 관찰할 수 있다. '저 집은 동네 가게인 줄 알았는데 프랜차이즈인가 보구나', '아, 이쪽 거리에는 빵집이 많네. 지도에서 찾아봐야겠다'와 같이 여행의 감상뿐만 아니라 외지인은 알기 어려운 여행 정보까지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버스만의 매력이다.


철학의 길 = 사진의 길


철학의 길


 단락에 들어가기 앞서 구글맵에서 '철학의 길'을 검색하면 <철학의 길>과 <철학자의 거리> 두 곳을 발견할 수 있다. <철학자의 거리>는 은각사에서 3분 만에 도달할 수 있는 바로 앞의 거리를 말한다. 사진에 나온 좁은 개천길과 풍경들을 구경하면서 은각사로 가고 싶다면 <철학의 길>로 가야 한다. 구글맵 리뷰수가 <철학의 길>이 훨씬 많으므로 헷갈릴 일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을 옮겨 적자면 <철학의 길>은 이번 교토 여행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좋은'곳이라는 것은 이곳에서의 끝나는 것이 아쉬운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오히려 <은각사>보다 <철학의 길>을 걸었던 것이 아직까지도 더 기억에 남는다.


 <철학의 길> 곳곳에는 편안한 즐거움이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간 탓에 문을 연 곳은 많지 않았지만, 개천 양 옆으로 작은 카페와 식당, 소품 가게들을 구경하며 갈 수 있었다. 가게 하나의 규모는 기온보다 약간 작은 정도였지만 그 밀집도가 현저히 낮아 주변 풍경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융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보행로에서 개천까지 깊이는 2~3m 정도로 꽤 높아서 위험하기도 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살짝 걸터앉아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도 운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엄마와 간 여행에서 3m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는 개천가에 걸터앉는 것은 불가능했다.


녹차로 유명한 교토


마츠바야(まつばや)


 <철학의 길> 산책을 마치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은각사> 입구가 보였다. 우리가 걸어온 작은 길과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큰 길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등산로처럼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은각사를 구경하기 전에 <마츠바야>라는 가게에 들어가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곳은 교토의 명물인 녹차로 만든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파는 곳이었다. 야외였는데도 천장형 에어컨이 풀가동되고 있어 약간 지친 우리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녹차-바닐라 믹스 아이스크림 세 개와 무설탕 녹차 한 병을 주문했는데 사진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더운 여름에 은각사를 찾은 여행객이라면 <마츠바야>가 아니더라도 근처 가게에서 이 녹차를 사가지고 갈 것을 추천한다.


모래를 이용한 일본식 정원. '가레산스이'라고 한다.



은각사(東山慈照寺, 히가시야마 지쇼지)


 땀을 식힌 우리는 <은각사> 입구에 들어섰다. 한국에서는 <은각사>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지만 일본식으로는 '지쇼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비슷한 이름 탓에 구체적으로 여행 계획을 짜기 전에는 <금각사>와 함께 구경할 수 있는 곳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은각사와 금각사는 거리가 상당했다. 금각사는 금박을 씌운 금각으로 유명하다. <은각사> 역시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는 은으로 덮을 계획이었지만 당시 무로막치 막부의 쇼군인 요시마사가 재정 악화 탓에 완성하지 못했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글쎄. 누군가는 이름과 달리 은이 칠해져 있는 평범한 모습을 보고 실망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지금의 모습이 은각사와 주변 경관의 매력을 배가시킨다고 생각했다. 말장난을 섞자면 '은'이 없어도 '은은'한 매력이 충만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사찰의 어느 것 하나 튀지 않지만 서로가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엄마도 나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사실 엄마는 이미 <철학의 길>에서부터 이곳에 매료되어 있었다. 왁자지껄한 도시는 엄마의 취향이 아니다. 조용한 도시라면 모를까. '오사카-교토' 일정이 아니라 교토에만 있는 일정을 짠 것도 엄마의 선택이었다. 자연과 특히 '카페'가 어우러진  <철학의 길>에서 <은각사>까지의 코스는 엄마의 눈과 카메라 렌즈를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목조건축물의 정갈함과 정원의 아기자기함도 좋았지만, 산을 조금 오르면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은각사>의 백미였다. 그곳에서는 <은각사> 전경과 더 멀리 있는 주택가의 모습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얕게 헐떡거리던 숨을 내쉬며 꼭대기에 올라 그 풍경이 눈에 비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와!' 하는 짧은 감탄을 내뱉었던 것이 기억난다.


 풍경의 아름다움에 비해 발을 디딜 수 있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 사실 사진을 찍거나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기에는 그곳이 보행로의 한가운데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꼭대기에 올랐을 때는 운이 좋게도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된 사람들이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기다리며 앞사람의 '의식'이 끝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주고 있었다. 서로가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는 것만으로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은각사>에서 나오는 길에 발견한 수제 신발 가게 /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먹은 자두맛 아이스캔디 from <Kiharu>


 평일 오전 <은각사>의 인파는 생각했던 것만큼 넘치지는 않았다. 셋째 날 다녀온 <청수사>는 아침 식사도 거르고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관광객들로 붐볐던 것에 비하면 은각사의 인파는 주변 경관과 정원을 여유롭게 눈에 담기 충분한 정도였다.


 걱정도 탈도 땀도 많았던 첫째 날에 비하면 둘째 날 일정은 시작부터 여유롭고 상쾌했다. <은각사>의 선선한 산바람도 물론 한몫했겠지만 나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의 여유로운 모습이 나까지도 여유롭게 만들었던 것 같다. 어쩐 일인지 아빠까지 평소보다는 여유롭게 여행을 즐긴다는 인상을 받았으니까.


 기념품 가게에서 교토에서의 첫 쇼핑을 짧게 마무리한 후, 우리는 길을 내려왔다. 다음 일정인 <니시키 시장>에 가기 위해 우리는 교토 시청 방면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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