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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Sep 21. 2023

교토야, 우리 또 볼 것 같다?

교토, 일본(完) - 09/09/2023

교토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은 뜨거웠다


집에 가는 날.

열차를 타야 하는 탓에 오후 4시 비행 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체크아웃 후에 바로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다.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 탓이었는지 7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목욕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원래는 8시까지 나와 동생만 호텔 근처의 한 카페에서 아침을 먹을 계획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냉장고에 남아 있는 빵과 어제 먹다가 남은 카스테라로 아침을 때운다고 하셨다. 그러나 셋째 날 밤, 우리가 찾은 카페의 메뉴를 본 엄마는 마음을 바꿔 아침 식사 여정에 함께 하기로 했고, 이에 아빠도 동참하기로 했다.



마에다 커피


 <마에다 커피>는 교토의 전형적인 카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동생 말로는 간단한 식사 (특히 아침이나 점심 메뉴)와 커피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카페를 '킷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마에다 커피> 역시 킷사에 포함되는 카페였다. 프렌치토스트, 핫도그, 팬케이크, 스크램블드 에그와 베이컨 등 호텔 조식이 떠오르는 서양식 아침 메뉴와 함께 카레를 비롯한 여러 일본식 메뉴도 팔고 있었다. 건물은 오래된 일본식 목조 가옥이었고 내부도 넓지 않았지만 2층에도 자리가 있었다. 좁고 경사가 높은 나무계단을 올라 보면 테이블 2~3개가 놓여 있는 공간이 나온다.


 우리가 한창 메뉴를 고르던 중, 사장님이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고 내려가 버렸다. 이번 여행에서 유독 배가 고팠던 나는 조급해진 나머지 메뉴 선택이 끝나자마자 안쪽 자리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때 여자 점원이 얼음물 네 잔과 함께 주문을 받기 위해 계단을 올라왔다.


 우리는 카페의 대표 메뉴인 코다지 모닝세트를 비롯해 핫도그, 크루아상, 모닝 카레를 모두 세트로 주문했다. 세트로 주문하면 양배추 샐러드와 음료 한 잔이 포함된다. 음식은 놀라운 맛은 아니었지만, 겉모습이 자아내는 기대감을 백 퍼센트 충족하는 맛이었다. 빵과 계란, 약간의 소세지, 샐러드 그리고 커피는 전형적인 조합이지만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였다. 또한 카페에서의 아침 역시 국내외 어디로 여행을 가든 엄마의 여행 필수코스라고 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교토 출발 전날 밤, 내가 여행잡지인 <Tripful 교토>에서 교토의 킷사 카페들을 소개한 섹터를 보여주자, '이 책 챙겨 가서 더 자세히 보자'라고 할 만큼 엄마는 가능한 한 예쁘고 맛있는 카페를 많이 가고 싶어 했다. 초밥, 오코노미야키, 야키니꾸 등 일본에 가면 한 번쯤 먹어봐야 된다고 생각되는 메뉴들은 오히려 엄마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카페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엄마와 우리 가족은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숙소로 돌아왔다.

 

<시라카와>의 풍경
<기온 타츠미 다리>, 저 멀리 웨딩 사진을 찍고 있는 커플이 있다.
우리가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곳. 오른쪽 검은 건물은 비싸 보이는 카페였다.


시라카와


 나는 <Tripful>을 통해 교토의 카페뿐만 아니라 산책할 만한 거리들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 <시라카와>는 숙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개천이 흐르는 길의 이름이었다. 지난 3일 동안 우리는 서울을 떠날 때의 기대와는 달리 교토에서 작고 소박한 골목길들을 많이는 보지 못했다. 우리는 <기온시조>를 사장 많이 지나다녔는데, 교토 시내의 메인거리인 탓이라 이 길은 너무나 혼잡했다.


 그러다가 둘째 날 철학의 거리에 갈 때는 이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었는데, 메인 거리와 다르게 사람도 많이 없고 옛 건물과 상점이 적절히 섞여 있는 모습이었다. 또한 <야사카 신사>나 <마루야마 공원> 같은 곳도 지나가면서 볼 수 있었다. 마침 <시라카와>는 <야사카 신사>를 거쳐서 갈 수 있는 길이었고,  나, 동생, 그리고 엄마는 11시 체크 아웃 전에 마지막으로 교토를 걷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약간의 비로 인해 시원했던 날씨가 이동이 많았던 셋째 날에 적당했다면, 햇빛이 강하고 땀은 좀 나지만 너무나 청명했던 이 날의 날씨는 마지막 산책을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다.


 목적지에 다다른 우리는 <기온 타츠미 다리>를 지나게 되었는데 마침 일본 전통 의상을 입은 남녀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마 결혼사진을 찍는 듯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Tripful>을 다시 보니 <시라카와>가 원래 결혼사진 장소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예비부부와 사진사의 양해를 구한 뒤에 우리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주변이 갑자기 탁 트인다. 이곳엔 작은 삼거리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개천이 흘렀으며 반대쪽에는 여러 가게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그중에 한 가게에 'petite wedding'이라고 쓰여있었다. 정말 이 근처에서 결혼사진을 많이 찍기는 하나보다.


 고대를 들어 주변을 파노라마처럼 훑어봤다.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빌딩들과 수십 년은 넘어 보이는 목조 건물이 섞여 있는 거리였다. 숙소 근처 골목에 비하면 차도 많지 않은 편이어서 산책하기도 좋았다. 푸르름이 극에 달한 이를 모를 나무, 커다란 목조 건물의 카페, 작은 개천까지 눈이 닿는 곳마다 소박한 아름다움이 화려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부부뿐만 아니라 누가 오더라도 사진을 찍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만 했다. 내가 찾아서가 아니라, 여행의 마지막 오전을 달래기에 딱 알맞은 장소였다고 생각한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오는 동안 태양은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좀 눈에 익은 거리가 나올 때쯤, 내 등은 젖어 있었다. 숙소에 돌아온 우리는 짧은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 뒷정리를 마치고 교토역으로 향했다.




교토역 & 간사이공항


 토요일이었던 여행 마지막 날. 하루카는 매시 정각을 기준으로 30분마다 출발했다. 우리는 넉넉히 12시 기차를 타고자 했다. 그러나 11시가 조금 넘어 <교토역>에 도착, 잠깐 길을 헤맨 후 11시 28분에 플랫폼에 도착한 우리는 이제 곧 출발하려고 하는 11시 30분 출발 하루카에 올라탔다. 기차를 타는 동안 먹을 음료와 도시락 등을 사려고 한 동생은 아빠의 재촉으로 헐레벌떡 기차에 타게 된 탓에 약간 뿔이 났다. 아빠 역시 급하게 기차에 올라탄 것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지하에서 기차 타는 곳을 찾아 헤맬 때만 해도 셔츠 가슴팍에 달려 있었던 선글라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차 앞쪽 문에 탄 우리는 자유석인 5,6호차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차가 갑자기 급정거했다. 차체는 꽤나 크게 덜컹거렸고 나는 끌고 가던 캐리어가 문에 부딪혀 잠깐 중심을 잃기도 했다. 아마 이때 선글라스가 사라졌던 것 같다. 우리는 자리에 앉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의 선글라스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됐지만, 결국 교토역에 도착한 후에 청소하는 직원에게 물어봤음에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는 찾을 수 없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에어부산 체크인을 하기 위해 국제선 출발 터미널로 갔다. 이때가 아마 오후 1시쯤 됐을 것이다. 카운터 근처로 가보니 체크인용 키오스크가 몇 대 있었지만, 화면에 8~9개 정도 되는 항공사 로고 중에 에어부산의 것은 없었다. 운 좋게 한국어가 가능한 공항 직원을 만나 에어부산 체크인을 어디서 하는지 물어보니 에어부산은 오프라인 체크인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1시 40분부터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만약 12시 하루카를 타고 왔으면 거의 도착하자마자 체크인이 가능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우리는 캐리어를 달달달 끌고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가로 향했다.


 그런데 모두 우리 같은 처지였던 건지 식당가에는 빈자리가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맥도날드조차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가족은 공항 대기석에서 편의점 음식을 먹기로 했다. 편의점마저도 가게 밖으로까지 이어질 만큼 긴 줄이 있었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물건을 살 수 있었다.


 편의점의 나라 일본. 엄마랑 동생은 삼각김밥 몇 개를 골랐다. 그러나 나는 '닛신 라오 라멘'에 이어 또다시 특이한 음식을 고르고 싶어졌다. 삼각김밥 선반 밑으로 눈을 돌린 나는 내용물도 모르는 주먹밥 하나와 냉파스타를 골랐다.


 자리로 돌아와 캐리어를 밥상 삼아 마지막 식사를 시작한 우리. 나는 제일 먼저 주먹밥 포장을 뜯었다. 맨밥에 김가루만 묻어 있는 것을 바라며 주먹밥을 한 입 메어 물었는데... 세상에, 장조림버터맛이었다. 정확이 말하면 간장계란밥+장조림버터맛이 났는데, 이곳에서 먹은 어떤 편의점 음식보다 맛있었다. 귀찮아서 번역기도 돌려 보지 않고 골랐는데 이런 행운이 있다니. 함께 사온 냉파스타도 좀 자극적이긴 했지만 맛이 좋았다. 편의점에서의 모험이 기대 이상으로 생각하며 나는 교토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어느덧 에어부산의 작은 항공기. 나는 복도 쪽 자리에 혼자 앉았다. 내 옆에는 일본인 여성 두 명이 탔다. 한국의 유학생이거나 여행객이겠지. 늘 그렇듯, 비행기에는 여행을 마무리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


 후쿠오카를 다녀오고 2주 정도 후에 떠나게 된 이번 교토 여행. 내 인생에서 한 달 동안 두 번의 여행을 떠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경험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의미 있던 것은 우리 가족이 정말로 오랜만에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는 것이다. 가족 간의 의사소통 탓에 힘든 것도 있었지만, 아마 여행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나 혼자 이 여행을 이끌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지쳤을 때는 동생이 (생각 외로) 묵묵히 길을 찾아 줬고, 약간 경주마 같은 경향도 있지만 아빠의 도움 역시 컸다. 중간중간 섞인 엄마의 유머는 여행의 긴장감을 해소해 줬다. 길을 가다가 여유롭게 사진을 찍거나 현지인의 삶을 느껴보는 시간은 적었지만 가족이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 이번 여행은 그 의미가 충만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조용하고 할 것 없는 도시일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교토는 다양한 매력을 숨기고 있는 곳이었다. 으스대지 않고 조용히 줄을 맞춰 서있는 목조 건물들이 서로 얽혀 만들어낸 골목길의 매력은 겉으로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과 떠난 여행이었기에 제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라시야마>, <오하라>, <후시미 이나리 신사> 등 대표 관광지 중에서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았으며, 레코드샵, 옷가게, 서점 등 내 취향을 강요할 수 없어 입맛만 다시고 지나갔던 장소들도 있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다음이 있으니까. 교토는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한번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곳이었다. 분명 또 올 것만 같은 예감. 이런 예감은 몇 번이고 교토를 방문해도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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