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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Mar 31. 2023

을왕리 드라이브

플스 대신 운전대와 카메라를 잡았다.

 밥, 위닝, 커피, 노래방. 오랜만에 친구를 만날 때면 늘 이 코스를 밟았다. 고등학생이었던 십 년 전이나 이십 대 후반에 발을 들인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여느 이십 대들처럼 술을 즐기지 않는 우리는 지금도 플스만 있으면 변함없이 맨 정신에도 깔깔거리며 시간을 죽이곤 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친구와의 헤어짐 뒤에는 뭔가 공허함이 남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플스만 쥐면 서로 놀리고 놀림당하기를 반복하면서 3시간은 거뜬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요즘은 게임보다는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늘어났다. 뚜렷한 고민도 마땅한 해결책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이런 일상의 반복을 잠시 벗어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왕산해수욕장


 맑고 시원한 바닷바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뉴스를 보고 오늘 미세먼지가 '나쁨'수준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해변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가슴이 뻥 뚫릴 만큼 바다도 하늘도 청명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뿌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벽처럼 꽉 막혔던 머릿속에 살짝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구멍이 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여자친구가 키우는 고양이가 생각나 반가운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잔뜩 경계하는 탓에 멀찍이 서서 사진 만 두 어 장 찍고 발걸음을 옮겼다. 녹슨 쇠 문짝 사이를 드나들던 녀석이 다치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동해막국수


 나는 여행을 할 때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유명도보다는 그곳 주민들이 갈 법한 식당을 가거나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는 것을 더 선호한다. 다만 오늘은 친구의 추천으로 왕산해변 근처에서 제법 유명한 식당을 찾았다. 조금 소란스럽기는 했지만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눈길 돌리는 곳마다 있던 수많은 조개구이집을 제치고 굳이 굳이 바닷가에서 막국수에 수육을 먹은 것도 흔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맛도 괜찮고 가격도 서울의 비슷한 식당보다는 많이 저렴한 편이니 해산물이 먹기 싫다면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인 것 같다.


을왕리 해수욕장


 식사를 한 후에 다시 한번 자리를 옮겼다. 워낙에 유명하기도 하고 서울에서 접근성도 좋은 해수욕장이라 평일 낮에도 여유를 즐기러 온 사람이 꽤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해수욕장 주변으로 호객하는 상인들과 주차장을 찾는 차들로 붐벼 왕산해수욕장보다는 전체적으로 산만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모래사장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변은 조용해지고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우는 소리만 귀에 남는다. 



 평소와 오늘의 만남에 큰 차이는 없었다. 언제나처럼 같은 친구와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시답잖은 농담과 코로나도 끝났으니 여행 한 번 가자는 얘기로 오후를 채웠다. 일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다가 있었고 플스는 없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턱에 난 뾰루지처럼 묘하게 나를 신경 쓰이게 한 잡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하루였다. 더불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에 대해서 소소한 고마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끝으로 바닷물에 빠졌던 친구의 스마트폰이 무사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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