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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으로서 에디터

어느 에디터 박찬용의 이야기-온사이트 클럽 후기

by JUNE HOLIDAY

에디터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한, 혹은 그러한 직함을 가진 자기 자신에 대한 로망을 버린다면 이 직업은 꽤나 매력적이다. 또한 유연하기도 하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포함하는 콘텐츠라면, 그 비율의 차이만 있을 뿐 만드는 사람들을 에디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유연하다고 하더라도 AI테크라는 거대한 시대의 파도 앞에서는 쓸려나갈 걱정을 하게 된다. 요즘 내 커리어에 있어 가장 큰 고민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에디터라는 직업으로 시작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경제적 자유를 이룰 수 있을까를 상상해도 갑갑하지만, '에디터'라는 직업 자체를 AI가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다. 일하면서 AI를 툴로 다루고 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경쟁하듯이 튀어나오는 똑똑한 AI 모델을 사용하면서 '내가 정말 AI를 사용하는 주체가 맞나' 라는 두려움에 종종 휩싸인다.


이러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자, 온큐레이션에서 진행한 <온사이트클럽-어느 에디터 박찬용의 이야기>를 찾았다. 매거진B, 에스콰이어 등 대형 지류 매거진부터 현재 프리랜서 에디터, 작가로서 커리어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박찬용 에디터의 이야기를 들으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조금의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연을 듣고 나서 그에 대해 딱 한 마디로 정리해보자면, 지극히 평범한 한 명의 직업인이라는 것이었다.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한 로망도 없었고, 특권의식이나 과잉된 자아도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인상 깊었던 점은 좋은 에디터의 조건을 태도와 소명 의식으로 꼽았다는 것이었다.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최대한 맞춘다는 그의 태도에서, 나는 오히려 그가 더욱 프로 에디터처럼 느껴졌다. 돈을 받고 이루어진 계약에서, '난 어떤 에디터야'라는 개성보다는 제한된 시간과 조건 아래 클라이언트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이 기본 아닐까.


박찬용 에디터는 직업인으로서의 태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I have no ego'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마치 자아가 없듯이 일하는 것. 물론 그는 개성이라는 것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기 때문에, 인위적으로라도 자아를 지우려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나 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아와 개성을 지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접근법이었기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원하지 않는 소재에 대해서 일을 하거나, 내 의견과 충돌되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수용하기 위해서 자아를 줄여야 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패턴을 뒤돌아보면, 오히려 박찬용 에디터의 '자아를 지우는' 태도가 나와 잘 맞았다. 하지만 자아를 지우고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 AI 시대에서 '대체 1순위'의 특징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 같다.


이제 에디터나 기자가 아니더라도 AI의 도움을 받으면 누구든지 멋드러진 글을 쓸 수 있다. 애초에 에디터가 글을 잘 써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이러한 사회에서 꼭 내가 아니어도 글을 쓸 수 있는 주체가 많아진다는 것이 두려웠고, 성향에 맞지도 않는 퍼스널 브랜딩을 하려 억지로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클라이언트가 다른 에디터가 아닌 나를 써야 하는 이유를 애써 설명하려다 보니,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 답지 않은 삶을 살고자 했다.


앞으로 먹고 살기 위해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할까.

노력하되 억지로 하지 않는 것. 클라이언트가 나로 하여금 써주길 바라는 글을 더 잘 쓰는 것.


시장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 필요한 이상, 에디터를 찾는 기업과 개인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꾸준히 나아가야 겠다. 또 하나는 자의식이 과잉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것? 에디터가 설 자리가 줄어들어도 순식간에 전부 사라지진 않을 것이며, 그렇다면 내가 에디터 중의 유일신이 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조금은 내려 놓고,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그릇 같은 에디터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후일담

- 강연 신청과 동시에 미리 작성한 질문에서, 박찬용 에디터님께 '지금 시대는 글을 읽지 않는 시대' 라는 것을 전제로 질문을 했었다. 그런데 에디터님의 생각은 달랐다. 장문의 텍스트를 많이 읽는 시대는 아니지만 아침부터 자기 직전까지 많은 콘텐츠와 메신저 등, 무엇이든 읽는 것은 널려 있었다. 어쩌면 요즘 내가 글 읽기에 소홀했고, 너무 단편적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제단했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럽기도 했다.


- 강연을 듣던 중, 청중 중에 뭔가 낯이 익는 분이 앉아 계셨다. 아마 확실하지는 않지만, 스택 에디터 강연에서 강단에 섰던 예화림 에디터셨던 것 같은데. 강연이 끝나고 인사라도 드려볼까 했지만, 온큐레이션 대표님과 잠시 인사를 나누는 사이 밖으로 나가셔서 그냥 신기한 경험 정도로 마무리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프리랜서로서 자리를 잡은 사람도 발전을 위해 다른 사람의 강연을 찾기도 한다. 멋있다는 생각과 함께, 에디터는 정말 끊임 없이 배워야 되는 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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