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목적은 무엇인가. 백 명의 사람에게 백 개의 목적이 있겠지만 '어디론가 떠났다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본질은 모두가 공유할 것이다. '돌아온다'는 개념이 없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이주'가 될 것이다.
나는 여행에서, 특히 해외여행에서 특별한 경험을 추구하지 않는다. 흔히 '본전'을 생각해서 잠자는 시간마저 쪼개가며 관광지를 도장 깨기 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감사하게도 이런 여행을 한 적은 없다. 일정이 바빴던 적은 있었지만, 오전에 바빴으면 오후엔 쉬었다. 산책과 커피 역시 필수였다. 내가 해외여행에서 특별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여행지의 모든 것에서 특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는 남녀화장실을 어떤 그림으로 구분하는지, 보행자 신호등의 사람은 어떻게 생겼는지, 길거리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는지 같은 것을 눈여겨보다 보면 곳곳에서 마주한 색다른 경험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내가 매일 겪는 일상적인 주변과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 도시에서는 꼭 가봐야 하는 명소' 같은 것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여행은 일상으로부터의 탈출도, 배움의 기회도, 에너지 충전의 수단도 아니다. 그렇다고 삶 그 자체는 더욱 아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여행을 가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나는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더해서' 행복을 느낀다기보다 '덜어냄'으로써 여유를 얻는다. 각자의 여행 취향이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여행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나의 일상을 조금 더 멀리서 지켜볼 수 있도록 해주는 기회다. 읽을 수조차 없는 간판, 떠듬떠듬 알아들을 수 있는 현지인들의 일상적인 대화, 묘하게 낯선 건물들의 배치는 '나'라는 사람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만약 여행 계획을 짜는 것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찬찬히 계획표를 살펴보자. 그리고 과감하게 일정을 지워보자. 어쩌면 오사카의 글리코상은 지나가면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고, 피사의 사탑은 멀리서 보는 것이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 많은 곳에 가는 것보다 한 가지를 기억하는 것, 채워 넣기보다 빼는 것이 어쩌면 새로운 여행의 목적을 선물해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