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위한 공부를 경계하자

by JUNE HOLIDAY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열심히 필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필기'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될 때가 있다. 수업내용보다 깔끔하고 빼곡하게 글씨를 쓰고 밑줄 치는 데 정신이 팔린 것이다. 나는 필기를 보기 좋게 하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험을 종종 하곤 했다. 형형색색의 형광펜과 볼펜으로 꽉 찬 교과서를 보면 마치 시험공부를 벌써 다 한 것만 같이 든든했다. 그러나 시험기간에 다시 교과서를 펴보면 마치 처음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최근에는 기획 및 디자인으로 직무를 정해서 공부 중인데, 기획은 그나마 대학교 연계전공으로 공부해봤지만 디자인은 완전 초심자라서 공부할 양이 너무 많다. 게다가 영어로 된 자료까지 찾아보니 그 양이 너무 많아서 항목별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던 중 No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참고할 만한 사이트, 도서목록, 공부한 디자인 원리 등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 터치펜이 지원되는 갤럭시탭도 새로 구매해서 관련 자료들을 필기하면서 공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영어로 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손으로 쓰면서 공부하고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마치 내가 디자인을 오래전부터 공부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더 나아가 이미 디자이너가 된 것만 같은 착각도 들었다. 하지만 'RGB와 CMYK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혹은 '더보기 메뉴를 불러오는 대표적인 아이콘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와 같이 매우 간단한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깔끔하게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분명 아는 내용임에도 막상 필요할 때 내 머릿속에서 꺼내는데 오랜 시간이 든다는 것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진정으로 알지는 못 했던 것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 씨가 현대인의 문해력 문제에 대해 했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에 따르면 '다수의 현대인들이 실제로 아는 것보다 자신이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든지 정보에 대한 탐색이 가능해짐으로써, 사람들은 '검색 가능한 지식' 마저 자신의 지식 바운더리에 포함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안다는 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필기나 자료정리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 무수한 반복과 다양한 실생활에서의 활용이 더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참고자료]

https://youtu.be/sy5bmlIEX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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