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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Feb 27. 2023

한 장 짜리 동화책 만들기

<독거 예술가, 세상 밖으로>

내가 그린 한 장 짜리 동화


 요즘 <독거 예술가, 세상 밖으로>라는 책을 읽고 있다. 몇 년 전 사놓고 책장 한 구석에 꽂아놨다가 최근 다시 관심이 생겨 읽기 시작한 책이다. 책을 샀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 스스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작가와 같이 보다 넓은 범주인 '창작자'로 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말이다.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독거 예술가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이다. 몇 년 전에 유명하지 않은, 취미로 예술을 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온라인에서 전시를 열고 싶다는 목표를 세우 이후 예술가들의 심리를 이해하고자 이 책을 구매했다. 


 이 책에서는 예술가들(혹은 예비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가로막는 여러 방해물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완벽주의' 역시 그 방해물들 중 하나에 속한다. 정말 말 그대로 완벽한 작품을 내놓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작품을 꽁꽁 싸매고 있거나, 심한 경우 완벽한 것을 만들지 못할 바에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나 역시 최근 들어 이런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브런치 작가를 시작하고 나서 생긴 증상인 것 같은데, 한 번 쓴 글을 몇 번이고 읽어 보며 맞춤법을 확인한다. '오타가 있는 글을 업로드하면 내 수준이 떨어져 보일 거야'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나를 지배하는 것 같다. 작가는 완벽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일단 공개하라'라고 말한다. 이런 작가의 메세지를 받아들여 적어도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만큼은 맞춤법 확인이나 퇴고 없이 업로드하기로 마음먹었다. 


 작가는 완벽주의를 벗어나기 위한 활동으로 '한 장 짜리 동화책 만들기'를 소개했다. 위의 그림은 내가 그린 나만의 한 장 짜리 동화책이다. 1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인상적인 활동이었다. 간단한 실행 방법과 함께 내 동화책을 소개하겠다. 


주의사항: 그림이 별 볼일 없더라도 과감하게 그려라. 또 유치하고 너무 흔한 내용이라고 생각되더라도 과감하게 써라. 신화가 가진 힘을 알고 있다면, 이 과제가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그렇게 별볼일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고독한 예술가, 세상 밖으로>, 99pg



<1>

그릴 것: 공주

방법: 이미지가 됐든, 표식이 됐든, 단어가 됐든 당신인 하려는 프로젝트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그려 넣도록 하자. 지금 당신이 생각한 이미지는 '공주'가 된다.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것을 그리고 이름을 붙여라.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라. 무엇을 그려 넣었든, 이제 시작이다.

내가 그린 것: 여행용 트렁크, <여행 다니며 살고싶다>

설명: 나는 최근에 내가 세운 프로젝트 하나를 끝냈기 때문에 새로 구상한 프로젝트는 없다. 그래서 막연히 '이렇게 살면 좋겠다' 생각했을 때 떠오른 이미지를 그렸다. 괴로운 일상을 참은 뒤 떠나는 여행을 일종의 쾌락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이 갑자기 떠올라, '그럼 여행이 일상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을 넘어 여행이 삶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2>

그릴 것: 용

방법: 당신을 늑장 피우게 만드는 존재를 그려 넣고 이름을 붙여라. 이제부터 이것은 '용'이다.

내가 그린 것: 돈, <여행 다니면서 돈 벌겠어!>

설명: 이곳저곳 여행 다니면서 돈을 버는 사람을 디지털 노마드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삶, 문화 차이, 안정감 등 디지털 노마다는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용'에 가장 가까운 것은 역시 '돈'이었다. 


<3>

그릴 것: 영웅

방법: 이 이야기의 주인공, 당신을 그려 넣어라. 우스꽝스러워도 상관없다.

내가 그린 것: 턱을 괴고 앉아 망설이는 나의 모습

설명: 내가 구할 공주(여행 다니는 삶)를 생각하니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고민하는 나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어쩌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막연히 망설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4>

그릴 것: 검

방법: 당신의 무기, 용을 때려 잡을 당신의 무기를 그려넣어라. 좋은 취향, 재능, 자본 등 무엇이든 검이 될 수 있다.

내가 그린 것: <세상에 없는 것을 보고자 하는 눈>

설명: 내가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하는 생각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적 성공뿐만 아니라 어떤 목표든지 이루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해석하고 연구함으로써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5>

그릴 것: 옆차기

방법: 당신이 기댈 수 있는 것을 당신(영웅)의 옆에 그려보자.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면 더욱 좋다.

내가 그린 것: <글쓰기, 언어에 대한 관심> (혹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

설명: 막연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내 글과 언어에 대한 관심이면 한 곳에 얽매여 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작은 자신감을 내 안에서 발견했다. 무언가를 만들고(글을 쓰고) 언어를 공부하는 일은 언제든지 즐겁다. (사실 글 쓰는 건 즐겁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즐겁다. 다시 읽어보지 않아도 되니까)


<6>

그릴 것: 당신의 신실한 팬

방법: 이 세상에서 당신을 지지하는 모든 존재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그려라. 당신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더라도 이 존재한테 돌아가 다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그런 존재를 팬으로 그려 넣어라.

내가 그린 것: <사랑하는 사람과의 낮잠>

설명: 사실 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 이유는 나도 안정감을 바람과 동시에 그 사람이 변화무쌍한 삶이 아니라 안정적인 삶을 원할 것이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떤 꿈을 꾸든 결국 그 사람은 이해해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팬'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려 넣었다. 



느낀 점


 사실 그렇게 진지하게 시작하지는 않았는데 막상 이것이 내 꿈이라고 생각하니까 어느 순간 몰입하게 되었다. 나는 막연히 상상했을 때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사는 삶을 꿈꿀 뿐이지, 사실 현실적인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이 꿈은 그저 꿈으로만 존재할 확률이 크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여행 다니며 사는 삶'을 그저 마음 한 구석 꿈이 아니라 현실에 펼치고자 마음먹었다면 무엇이든 시작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 전반에 걸친 꿈이나 목표가 아니라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려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일단 세상에 공개해보자. 악평을 받은 작가는 더 나은 작품을 낼 여지가 있지만, 작품을 책상 속에만 숨겨 놓은 작가는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면, 세상에 내놓아 보자. '이 정도면 됐지' 하는 것들이 쌓이다 보면 분명 나만의 걸작도 탄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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