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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Jan 03. 2023

모든 것은 사람, 사람, 사람

[서평]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 심리' (1)

 현대 디자인을 대표하는 서적 중에 하나인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과 인간심리’는 좋은 디자인의 중요한 특성 두 가지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발견 가능성(discoverability) 이해(understanding)가 그것이다. 발견 가능성은 어떤 행동이 어디에서 어떻게 가능한지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해는 말 그대로 이 제품이 대체 무슨 뜻이며 어떻게 쓰라고 만들어진 것인지 사용자가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노먼은 빌딩 문 사이에 갇힌 그의 친구를 예시로 들어 발견 가능성이 결여된 ‘안 좋은 디자인’을 설명했다. 그의 친구가 유럽의 한 빌딩에서 두 줄의 유리문 사이에 갇혀버린 것이다. 어느 곳을 밀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탓에 친구는 애꿎은 경첩 부분만 밀고 당겼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그의 멋에 심취한 탓에 밀어야 하는 곳에 대한 어떤 힌트도 제공하지 않은 탓이었다.


 문처럼 ‘밀면 열린다’의 간단한 개념 모형을 갖고 있는 제품도 잘못 디자인될 경우 사용자에게 불안과 혼란을 선사한다. 하물며 문도 이런데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 현대의 첨단기기들이 잘못 디자인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디자인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것들이 어떻게 통제되는가, 사람과 기술의 상호작용의 본질이 무엇인가와 관련이 있다.’


 디자이너는 기술(혹은 기계)과 사람 사이에 있다. 사람에 비해 기계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본인의 역량을 발휘하여 사람과 기계가 알맞게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품이 이해 가능하고 사용하기 쉬워야 비로소 그 제품이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다. 나는 노먼의 ‘인간 중심 디자인 (HCD: Human-centered Design) 지론을 이해하면서 언젠가 들은 말이 하나 떠올랐다. ‘디자이너는 예술가가 아니다’. 예술가는 대중의 이해와는 별개로 자신의 철학을 작품에 담는다. 물론 위대한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본인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강력하게 각인시키지만, 생각보다 많은 예술가들이 사후에 그 명성을 얻었다는 점을 돌이켜 보면 창작 활동과 좋은 평판 사이의 간격이 길더라도 어쨌거나 그들은 예술가다.


 그러나 디자이너는 다르다. 디자이너는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창작하지 않는다. 물론 정말 훌륭한 디자이너들은 마치 ‘작품’처럼 그들의 제품에 철학을 담는다. 그러나 그보다는 ‘효용’이 먼저다. 효용성이 낮은 디자인에 대한 사용자들의 피드백은 예술 작품의 그것보다 훨씬 빠르다. 또한 안 좋은 디자인에 대한 평가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기 어렵다. 고흐의 그림은 발표 당시 미치광이의 그림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사후에 그는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먼의 문’은 100년이 흘러도 ‘노먼의 문’ 일 것이다.

그래도 노먼의 말에 따르면 좋은 예술가와 위대한 디자이너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겠다. 바로 ‘즐거운 경험’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비록 예술의 즐거움은 디자인의 즐거움보다 포괄적인 뜻을 담고 있지만 말이다. 그가 말한 인간 중심 디자인은 논리에만 기반한 디자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는 사람들이 당연한 논리에서 어긋나는 오류를 저지를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제품과의 상호작용을 ‘좋게’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전이 ‘산을 넘는 것’이라면 디자인의 발전은 산에 ‘터널을 뚫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필연적으로 기술의 발전 속도는 디자인의 발전을 앞지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에 ‘기술의 역설’이 발생한다. 장치에 더 많은 기능을 추가해 삶을 편하게 만들고자 할수록, 사람들은 그 장치를 사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 앞에 제시된 역사적 한계치를 뛰어넘는 것이라면, 디자인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기술의 역설’이라는 산에 터널을 뚫음으로써 길을 제시하는 것 아닐까. 그리고 그 길을 뚫기 위해서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사람, 사람,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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