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4.08 / 김광현 / 3이닝 5실점
오늘은 생중계를 보지 않고 포털을 통해 점수 및 문자중계만 확인했다. 사실 3회부터는 라이브 중계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예전부터 김광현이 등판하는 날은 생중계를 잘 보지 못했다.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김광현이 실점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모든 위기 상황은 팬들을 마음 졸이게 만들지만 에이스가 위기 상황을 맞이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이미 문자 중계를 통해 1,2회의 위기 상황을 확인했던 터라 '5회까지만 막아라'라는 마음으로 TV를 켰다. 4회 말, SSG랜더스의 수비였고 마운드에서는 신인 송영진이 공을 던지고 있었다. 3이닝 5 실점 4 사사구.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김광현은 3이닝 동안 70개의 공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간 후였다.
선발투수가 누구였든 간에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지만 김광현이었기에 더욱 아쉬웠다. 잠시나마 변호를 하자면 3회 외야수비가 아쉬웠던 것도 대량 실점에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외야수 최지훈과 에레디아의 타구 판단이 아쉬웠다. 그러나 '메이저리그 복귀 후 최악투'라는 어느 기사의 내용처럼 김광현의 구위와 제구 모두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야수 최고 유망주 전의산의 스리런과 불펜 신예 송영진의 호투에 힘입어 10회 연장 승부 끝에 경기는 승리했다.
1988년생인 김광현은 올해 만으로 34세다. 150km이 넘는 구속으로 상대를 윽박지르던 시절에도 경기 초반, 특히 1회가 불안한 경기가 많았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오늘은 컨디션은 물론 운이 따르지 않아 위기 극복에 실패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에이징 커브', 즉 선수의 '노쇠화'에 대한 염려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오늘 패스트볼 최저구속이었던 '137km'를 제목으로 한 기사도 있었다. 그의 계약기간은 올해가 지나면 2년이 남는다. 2025년 김광현의 나이는 만 36세. 만 36세의 투수가 1선발인 팀은 KBO는 물론 해외 리그에서도 쉽게 볼 수 없다. 물론 스포츠 의학과 트레이닝 방법 등이 발전하면서 운동선수들의 소위 전성기가 길어졌기 때문에 30대 후반이 된 후에도 활약하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김광현 정도의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라면 몇 년 더 나이를 먹더라도 충분히 좋은 공을 뿌릴 가능성이 높다. 랜더스 팀 내 최고참인 김강민에게 팬들은 우스갯소리로 '50살까지만 뛰어주세요'라는 진심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30대 중반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쇠화'나 '은퇴'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팬으로서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에이스 김광현의 투구를 볼 수 있는 해가 많이 남지는 않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4월 8일 오늘 인터뷰에서 김원형 감독은 '김광현은 한미 통산 3000이닝까지도 던질 수 있는 투수'라고 말했다. KBO 역사상 통산 3000이닝을 던진 투수는 송진우 한 명 밖에 없을 정도로 대단한 기록이지만 나 역시 김광현이 그만큼 꾸준하게, 오랫동안 던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아마 어느 팀을 응원하건 야구팬이라면 팀을 상징하는 선수에게 이와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롯데팬이신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는 이대호가 그런 선수였다. 솔직히 말하면 엄마는 이대호 덕분에 웃으신 날도 많지만 아쉬움에 원망 섞인 말을 뱉어낸 날도 적지 않다. 그러던 엄마지만 작년 이대호의 은퇴투어 경기를 볼 때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한숨을 연신 내쉬었다. 엄마에게 있어 이대호는 그만큼 '롯데 그 자체인' 선수였다. 나 역시 '선수' 김광현을 떠나보낼 때 그러지 않을까.
15년 동안 한 팀을 응원하면서 많은 선수들이 우리 팀을 거쳐 갔고 또 많은 선수들이 우리 팀을 마지막으로 스파이크를 벗었다. 그리고 SK시절부터 팀 그 자체인 김광현 역시 언젠가 마운드를 영영 떠날 것이다. 나는 팬으로서 영구결번 0순위인 김광현이라는 투수를 가졌다는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그와 함께 나이를 먹을수록 그 자부심과 함께, 애써 외면해 왔던 그의 은퇴에 대한 두려움도 커져 간다.
앞으로 평생 야구를 보면서 랜더스에 김광현보다 더 엄청난 기록을 써내려 갈 선수가 나오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최고의 선수는 언제나 김광현이 아닐까 싶다. 마치 부모님에게 이대호가 그러하듯이. 그의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의 부진을 더는 탓하지 않고 다음 등판에서는 더 좋은 투구를 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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