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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HOLIDAY May 16. 2022

[서평] 뉴타입의 시대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들어본 영어 단어 세 개를 꼽으라면 TSMC, MBTI, 그리고 MZ세대가 아닐까 싶다. TSMC는 삼성전자와 묶여 반도체 관련 경제뉴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었고, MBTI는 채용조건이 될 정도로 가십거리 그 이상이 되었으며, MZ세대는 마치 과거의 '신세대'처럼 뭔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새로운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뉴타입의 시대」를 읽으면서 내 뇌는 나도 모르게 뉴타입과 MZ세대를 혼용하기 시작했다.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묶어 부르는 말로 경우에 따라 2010년생부터 최대 1981년생까지를 이르는 말이다. 최대 30년. 문화 및 가치관을 공유하는 하나의 세대라고 하기에는 그 시간의 격차가 너무 크지 않은가? 우스갯소리로 'MZ세대는 MZ세대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도한다. 어른들이 이른바 '요즘 것들'을 묶어서 부르는 말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MZ세대 이전에는 X, N, 밀레니얼 등 세대를 묶어 부르는 다양한 용어가 있었다. 그러나 대학내일연구소의 「밀레니얼 - Z세대 트렌드 2022」에 따르면 새로운 세대론은 그 이전 세대론과 처음부터 뚜렷하게 구분 지어 말하기는 어려우며 명확한 역사적, 사회적 사건으로 두 세대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은 연속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새로운 세대론이 자리 잡았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새로운 세대론에 대한 재정립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세대라는 것은 사과처럼 '딱'하고 쪼개지듯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마구치 슈도 「뉴타입의 시대」의 에필로그에서 곰브리치의 말을 빌려 이처럼 말한다.



곰브리치에 의하면,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일찍이 올드타입이 목표로 했던 것처럼 팡파르를 요란하게 울리며 시스템을 교체한 덕분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인간의 사고가 변화한 덕분에 일어난다.



"자, 지금부터 뉴타입의 시대입니다~"라고 나팔수가 알려준다면 얼마나 편할까. 그러나 저자가 말했듯이 새로운 시대는 대중의 사고 변화로 인해 어느 틈엔가 우리 삶에 슬며시 들어와 살게 된다. 그렇다는 것은 MZ세대라는 말이 탄생한 지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지금, 새로운 시대는 그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야마구치 슈는 뉴타입을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사고와 행동양식'으로 정의하며, 반대로 양적 성장, 경험 등 지금까지 중요시되었던 가치관을 올드타입으로 정의했다. 책에서 제시하는 뉴타입의 특징은 많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교양'을 강조한 파트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에 따르면 과학은 문제 해결책을 제시하고 기초교양은 문제 자체를 만들어낸다. 뉴타입은 이러한 기초교양을 통해 기존에 상식으로 통하던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야마구치 슈는 모든 상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뉴타입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한다.



끊임없이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가 아니라,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과 의심해야 할 상식을 판단하는 혜안을 갖추는 것이다.



기존의 상식을 의심하는 태도는 확실히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혹은 불편했지만 쉬쉬하던 사안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들의 목소리들이 모여 여론을 형성하며 이 여론이 세상을 건강하게 바꾸고 있다. 그러나 야마구치 슈가 걱정했듯이 '그냥 넘어가도 좋은 상식'에까지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개인이 어떤 사안에 불편을 느끼던 그 자체로는 상관없지만, 이들은 '불편에 대한 불편'은 허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인류에게 일어난 대부분의 비극은 자신만 옳고 타자는 틀렸다고 단정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터넷, 특히 SNS는 젊은이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뉴타입의 행동양식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인터넷에서도 올드타입의 행동양식을 보이는 사람도 많다.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만 '좋아요'를 신나게 누르는 행위를 올드타입이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정신세계 안에 있는 사람들과만 소통하며 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은 뉴타입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물리적 거리는 축소되었지만, 오히려 사람들의 정신세계 사이에는 커다란 벽이 세워진 듯하다. 무한한 기회의 땅인 줄로만 알았던 인터넷이 우리를 폐쇄된 공간에 가둬버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폐쇄된 공간에 가둘수록, 민주주의는 점점 위태로워진다.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서 인터넷, 특히 SNS의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다. 러시아는 침략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통신시설을 파괴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를 통해 인터넷 사용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러시아군의 비 인륜적인 만행을 전 세계가 계속해서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SNS를 통해 우리는 고립되고 분산되기도 한다. 원래 자신이 평소에 생각하던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받아들이는데 훨씬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현실에 지친 바쁜 현대인들은 그렇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피곤한' 콘텐츠는 무시하려 한다. 인터넷은 피곤한 내용을 애써 무시하려는 현대인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관심 없음' 몇 번만 눌러주면 다음부터는 스마트폰이 알아서 이와 유사한 내용을 걸러준다. 현대인은 점점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의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어지고 어쩌다 불편한 내용을 발견하면 화만 낸다.




민주주의는 자신과 입장이나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성립한다.




올드타입의 시대에는 '이해'가 굉장히 중요했다. 뉴타입의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이해가 무가치해진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쉽게 이해한다'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쉽게 이해했다는 뜻은 상대방의 의견을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경험과 지식에 맞춰 유추했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멘탈 모델로 타인을 이해하는 행위는 생각을 넓혀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을 고정된 틀에 가두어버린다. 그러므로 뉴타입의 시대에는 이해보다는 경청과 공감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이 파트에서 야마구치 슈의 주요 골자이다.


'뉴타입=신세대'의 공식은 항상 성립하지 않지만 올드타입은 우리말의 '꼰대'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말투를 희화화할 때 '아, 그런 건 난 모르겠고!'와 같은 대사를 이용하기도 한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 내 생각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으며 내가 하는 말이 무조건 맞다. 꼰대의 전형 아닌가. 우리는 꼰대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나보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을 연상한다. 그러나 진장한 꼰대, 진정한 올드타입은 두 귀를 막은 채 자신의 말만 반복하는 사람이 아닐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뉴타입이 되고자 한다면 입보다는 귀를 여는 습관을 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입은 하나지만 귀는 두 개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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