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7/2023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A Tourist's Guide to Love'라는 영화였다. 30초 남짓의 짧은 장면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줄거리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대강 '베트남에 여행 온 여성과 그녀를 가이드해 주는 베트남 남성이 겪게 되는 이야기' 정도인 것 같다.
내가 본 장면에서 남자는 '여행 가이드북을 펼치는 여자'에게 책을 치워버리라고 말한다. 여자가 이유를 묻자 남자는 '당신은 지금 Tourist가 아니라 Traveler'라고 말한다. 여자는 그 둘의 차이를 묻는다. 남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Tourist는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해 떠나지만 Traveler는 여행의 경험을 온전히 즐기는 사람이라고. 어디에선가 탈출하기 위해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정확한 대사는 아직 찾아보지 않았지만 이런 뉘앙스의 대화였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Tourist'와 'Traveler'의 미묘한 차이점을 꼬집어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말장난'이었다.
이 게시물의 댓글에는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오글거린다. 어느 정도 동의했다. 로맨틱하다는 댓글에도, 한국인의 휴가는 너무나 짧기 때문에 진정한 여행을 즐기기엔 마음이 조급해진다는 댓글에도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남자의 대사에 대해 그저 말장난일 뿐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난 이 댓글에도 '어느 정도' 공감했다. 남자는 확실히 wordplay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말장난은 아니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받아들였다.
말장난에도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형태, 발음, 의미 등이 유사한 두 단어를 이용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치킨은 키친에 있다~' 같은 아재개그도 재미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장난은 말장난이니 이에 해당한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은 'Tourist'와 'Traveler'라는, 일반적으로 혼용될 수 있는 두 단어를 이용했다. 이 말장난 역시 재미는 없었지만 '그저 말장난'으로 치부되기에는 깊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 치킨과 키친, Tourist와 Traveler, A와 A'를 활용한 말장난. 어떤 말장난은 말장난 특유의 미묘한 뉘앙스로 우리에게 또 다른 시야를 밝혀주기도 한다. Wordplay 그 자체는 의미가 없지만 우리로 하여금 'word'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선사한다. 이 영화의 남자의 말장난 같은 대사를 통해 지금껏 남들을 따라한 여행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여행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미묘하게 넓어진 시각은 삶을 대하는 자세의 변화를 야기하기도 한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
이 문장도 말장난의 일종이다. 이 말장난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자'와 '살'이라는 같은 두 글자로 이루어진 두 단어가 공교롭게도 의미적으로 연관성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유치한 이 문장에 힘을 얻은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 뭍에 있는 사람은 밟고 가는 지푸라기지만 급류에 휩쓸려 가는 사람에겐 희망의 밧줄이 된다. 지금은 이 문장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삶을 버티기 어려운 순간이 오면 이 문장 덕에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냥 말장난.
맞다. 그냥 말장난이다. 그러나 어떤 말장난은 가벼워 보이는 껍데기 속에 작지만 단단한 알맹이를 숨기고 있다.
그 알맹이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