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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이 Sep 15. 2015

연필을 깎아준다는 것

휴지통 앞에 쪼그려 앉아 색연필을 깎다가 문득, 연필을 깎아주던 누군가들이 생각나서.


등골브레이커 미대 입시생이었던 나는 세 번의 대학입시를 치렀고,  당연히 세 번의 미술 실기시험을 봤다. 열 아홉부터 스물 한 살, 그 무렵의 나는 세 번이나 입시를 봤음에도 실기시험을 앞두고는 간이 콩알만해져 긴장에 긴장을 집어먹었다.

실기시험 전날이면 혹시나 깎아간 연필이 모자라진 않을까 조마조마해하며 연필을 두 다스, 세 다스씩 새로 사서 오십자루의 총알(?)을 만들어갔고 불행하게도, 그리고 당연히 뽀족하게 깎은 그 4B연필들은 항상 열 자루 정도만 사용하고 돌아오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착하지만 멍청했던 수험생. 그 정성으로 공부를 하지 이 멍청이.

내가 멍청했던 이야기는 마음아프니까 접어놓는 걸로 하고.
미대입시학원의 시스템은 전임 선생님의 수업, 그리고 그 밑의 대학생 나이의 보조강사들의 개인별 지도의 시스템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2010년 입시까진 그랬다)

색연필, 연필 파스텔 등 칼로 직접 깎아 사용하는 도구가 많아 미술학원엔 항상 '연필 깎는 자리' 가 있었고 실기시험 보조강사 한둘이 함께 연필을 깎아 총알을 '장전' 해 주었다.
보조강사들이 연필을 깎아주는 것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사소한 일상같은 거였다. 그렇게 여럿이 달려들어서도 깎지 못한 새 연필들은 무거운 화구박스에 담아 집으로 가져와 엄마와 깎아놓곤 했다.

몹쓸 새벽 감성 탓일까, 내가 쓸 색연필을 깎다가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그때 그 사람들은 참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멍하게 살다가도, 그때 생각을 하면 이를 악물게 된다.

화구박스 무겁다고 그거 들다가 손 떨려서 그림 못 그리면 안된다며 굳이굳이 그 무거운 화구박스를 들어주던 엄마의 손이, 대학에 예비 1번으로 떨어졌을 때 그 못난 딸자식 맘 아플까봐 앞에서 울지도 못하던 그 엄마의 눈이, 연필을 깎아주던 지금은 이름도 어렴풋한 그 몇몇의 보조강사 쌤들의 얼굴이, 피울줄도 모르면서 무작정 샀었던 그 담배 냄새의 기억까지도
그런 것들이 뒤섞여서 나를 키웠다. 다시 말해, 그런 것들이 나를 연필처럼 날카롭게 깎은 것이리라.

덧붙여, 그것들은 지금도 나를 단단하게 한다. 나는 그들이 깎은 나를, 나의 삶을 함부로 구겨버리지는 않을 거다. 넘어지고 질질 끌려다닐지라도 절대 내가 먼저. 포기하진 않을거라는 거.

삼천포로 얘기가 많이 빠졌지만, 연필을 깎아준다는건 내게는 대단한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처음 학교가는 날 연필은 꼭 칼로 예쁘게 깎아줘야지. 내새끼가 학교간다는데 내가 해 줄 거라곤 그것뿐일테니.

그때 울 엄마 심정이,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쌤들 심정이 딱 그랬겠지. '해줄 수 있는게~이것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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