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유사과학 같은 거, 개나 줘 버리란 생각으로 살았다.
나도, 내가 이딴 글을 SNS에 싸지를 줄은 몰랐다.
개 구충제 같은 걸 내 손으로, 그것도 웃돈 얹어서라도 구하고 싶어 할 줄은 몰랐다.
요 며칠 폐암환자 커뮤니티가 꽤나 떠들썩했다.
유튜브를 보니, 먼 나라의 폐암환자가 강아지 구충제를 먹고 병을 고쳤다고.
(유튜브 주인공에겐 임상실험과 보조적인 수단이 있었지만, 일단 타이틀은 강아지 구충제다.)
개 구충제. 나에겐 쓸모없는 선물 주고받기 행사에서나 필요할 것 같은, 생소한 단어였다. 적어도 어제까진.
비슷한 처지인 직장 동료가 먼저 말꼬를 텄다.
강아지 구충제 얘기 들었냐고. 그거라도 해보고 싶다고.
(이 친구의 아버지는 병원에서 더 이상 해드릴 게 없다는 이야길 듣고 집에 돌아왔고 하필 그 날은 한 달 정도 남았다는 이야길 들은 날이었다 )
섣부르게 권할 수는 없었지만
일단 해보고 싶다고 하니 무슨 수를 써서든 구해 본다.
아는 약사, 수의사, 제약회사 영업, 주변의 견주들.
- 안녕 미안한데 혹시 강아지 구충제 구할 수 있을까
- 안녕 오랜만이지 미안한데 혹시 XX구충제 처방받고 남은 거 있을까
- 아 그건 아는데. 근거 없는 건 아는데.. 그래도 필요해서 혹시 알아봐 줄 수 있을까
- 그래 고마워 연락 꼭 좀 줘 기다릴게
- 안녕하세요 혹시 구충ㅈ.. 네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개똥도 약에 쓸래야 없다지만,
온 동네의 개 병원을 다 뒤져도 개 구충제가 없다.
물론 낫기만 한다면 개똥이라도 주워 먹겠지요
나도 게르마늄 팔찌 같은 유사과학을 비웃어 술자리 안주로 삼는 딱 그 정도의 온도를 가진 사람이었다
병원이 아닌 곳에서 비전문가에게 의학적 조언을 구하고 있는 꼴을 보면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저어기 미국의, 고작 유튜브 때문에 개 구충제를 개처럼 구하러 다닐 줄이야. 사실은 나도 나 자신이 믿기진 않았다. 내가? 개를? 아니 개 구충제를?
바깥의 사람들은 우리가 많이 한심해 보이나 보다
믿을 건 첨단 의학의 최전선에서 연구하고 있는 의사들이지, 출처 모르는 근본 없는 유튜브가 아니라고.
또, 죄없는 개들은 그럼 구충제를 못 먹냐고.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을 한 당신은 아마 모를 것이다
누구보다 의사를 믿고 싶은 것은 환자 가족이라는 것을.
한 달에 3분만 회진해 줘도 좋으니까
지금보다 더 불친절하고 오래 기다려도 좋으니까
항암이든 수술이든 표적 항암이든
병원에서 뭐라도 가능성 있다고 괜찮다고 했다면
그 사람들이 사람 약 놔두고 “근본 없는
유튜브를 믿고”
개 약을 그것도 구충제를 먹을 생각하진 않았을 거라고
누군들 한국말 잘 통하는 똑똑한 의사 내버려 두고 지극적인 유튜브의 자막을 믿고 싶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가족의 목숨을 그런 불확실한 정보에라도 마지막 희망을 걸어야 하는 그 마음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본 적 있을까.
개가 먹는 걸. 그걸 씨발 사람한테, 우리 엄마한테 먹여야 할 상황이 생길까 봐. 그런 상상이라도 해보다가
아 진짜 그냥 일단 사서 쟁여놓는 그 심정을,
정기검진을 하러 평소처럼 병원에 갔는데,
더 이상 해 줄게 없다고 집에 가라고 할까봐.
그런 상황이 올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놀이공원 대기줄도 아니고 붕어빵 줄도 아닌데 공기만 축내 가며 손 놓고 죽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우리는 그래서 개 구충제를 구하러 다녔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근데 가만있을 순 없으니까, 이왕에 기적을 기다리려면 뭐라도 열심히 하면 혹시 더 잘 될 수도 있으니까,
누구 말마따나 ‘근본 없는’ 희망을 닥닥 긁어모았다.
+ 아참, 물론 인스타에 올린 글로는 구충제를 구하지 못했고 나와 직장 동료는 구충제 요법을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그렇단 얘기다. 세상엔 당신이 느껴보지 못한 감정과 상황이 있고, 직접 처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한 말은 아끼는 게 좋다는 뭐 그런 얘길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