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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리데이파머스 Sep 04. 2020

미리 연못 예찬

국민학교 1학년일 때다. 오전 수업만 하는 토요일. 학교를 다녀왔다. 여유로운 오후. 새 물로 갈아주기 위해 집 안에 있던 큰 어항의 물을 뺏다. 긴 호스의 한쪽을 어항 안에 집어놓고 반대쪽을 화장실로 가져가서 입으로 공기를 빨아내기 위해 한 모금 정도를 뻐끔했다. 늦을세라 얼른 화장실 바닥에 내동댕치듯 호스를 던졌다. 욱 하고 호스에서 어항 물이 뿜어져 나와 내 입으로 들어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졸졸졸 물이 조금씩 빠져나오고.. 깨끗한 새로운 물에서 물고기들이 헤어칠 것을 생각하니 한껏 즐거웠졌다.

 

 물속 친구들을 잊을 수가 없다. 엔젤 열대어와 금붕어, 참가재가 살았다. 어항 바닥에는 두툼하게 모래가 깔려있었다. 가재의 하루 일상은 집 짓기다. 청소를 하는 것인지 열대어로 인해 무너진 곳을 수리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가재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두 큰 집게에 모래를 끌어안고 밖으로 나오는 게 가재의 하루 일상이었다.  뻐꾸기 시계가 정시가 되면 집 밖으로 나와서 울다가 다시 들어가듯이. 가재가 돌 사이에서 집을 다시 수리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곤 했다. 재미없는 따분한 학교일을 잊곤 했다. 피로를 풀곤 했다.


 그 옆에서 어항을 돌보던 아빠의 옆모습이 떠오른다. 수초를 다시 바로 세우고 돌을 집어냈다. 난 키가 작아서 손이 어항 모래바닥에 닿지를 않아서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아빠는 진심으로 행복해했었어. 내가 이런 것도 이어받았구나.

 참 아마득한 시간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갔다는 걸 멍하니 알게 된 기분은 묘하다. 혼돈스럽게 빛의 굴절이 일어난다. 잔잔히 때론 흐릿하게 물 위에서 어항 모래가 어른거리며 보인다. 약간 어지럽기 하다. 한번 손을 넣고 싶어 졌다. 물속의 모래는 잡힐 듯이 가까이 크게 보이는데 손을 넣으면 꽤나 멀게 느껴진다. 이제는 그때의 아빠가 되어 30년 전 기억을 마주했다.


 어항이라는 실내의 한정된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한 단계 나아가고자 했다. 어릴 적 기억을 이어서 올해는 농장 한 구석에 연못을 만들 계획이다. 실내의 어항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 생물들이 모이지 않는다. 연잎 위의 개구리, 온 깃털을 적시며 목욕하는 참새, 수면 위에 꼬리로 원을 그리는 잠자리...


 비 내리는 날에 빗소리를 귀로만 즐기는 게 아니라 눈으로도 즐기겠다는 오래된 소망과 함께 작년 겨울부터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연못 제작 위치와 모습을 수도 없이 생각했다. 붉은 고벽돌로 노출형 연못을 만들까? 땅을 파고 비닐을 깔고 돌을 가장자리에 쌓아 자연 연못 느낌으로 만들까?

 8월이 지났고 곧 가을이다. 너무 계획적이어서 그런가? 너무 잘 만들려고 해서인가? 너무 잘하려는 심리가 강하면 미루게 된다는데.. 주저하게 된다.

 

비가 연못물을 수없이 부딪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무미건조한 옛 기억들, 농장 초반의 흙 튀기는 거칠함, 시간에 쫓기는 반복적인 일상, 무표정한 얼굴.

삶이 건조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울컥하고 마음에서 올라오는 욕망이 있었으니.. 물을 가까 두어 삶의 촉촉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런 연못은 말야 보고만 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존재다. 필요한 존재다. 최소한 나한테는 그렇다. 지난 시간을 물과 함께 보낸  행복한 기억 때문이겠지.

 다시 돌아오는 8월에는 “내가 이거보겠다고 흐흐흐 좋아 죽겠어” “야자나무는 물로 기억되지” 속이 시커멓게 답답한 와이프는 “연못에 빠져 있지 말고 빨리 집에 와서 아기 봐!” 정체되어 있는 우울한 기분을 물로 씻어 흘러 보내 버리고 항상 밝음을 유지하는 내가 되어있을 것 같다. 쿵쾅이와 나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란다. 물과 생기로움. 행복한 2021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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