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리데이파머스 Jan 16. 2020

쿵쾅이도 식물을 좋아할 거야

'어바웃타임' 레인편.

주말이다. 오늘 겨울비가 내린다고 기상예보가 있었다. 하우스 안에서 모종을 포트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도중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갑자기 잔뜩 어두워진 낮 오전시간. '이제 곧 비가 내릴 것 같아. 밖에 꺼내놓은 농기계와 도구들이 비를 맞으면 녹이 슬 텐데... ' 마음이 무거웠졌다. 정리하기를 좋아하는데 농장 일이 몰리게 되면 사용하던 도구들을 흙바닥 위에 그냥 던져놓을 경우가 많다. '미리 미리 정리를 했어야 했는데..' 정리대는 농막 안에 있어서 도구를 꺼내거나 사용했던 도구를 제자리에 두려면 매번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사실 매뉴얼대로 되진 않는다. “언제 다하지?” 조급한 마음이 앞섰다. 머리가 무거워졌다. 살짝 머리 통증이 느껴졌다. 생각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찰나에 아차 싶었다. 잠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계획대로 잘하고 있음에도 안 되고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레인의 마음은 민감한 가속도계 같다. 상승 곡선을 꾸준히 그리고 있더라도 이전보다 가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으면 만족을 못 하는 것 같다. 등속인 것을 참 질 못한다.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더더더" 요구해서 단계마다 합당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마음을 조이는 것이다. 가속력이 0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우울해진다. 눈 시선을 땅으로 향한다. ‘아 뭔가 잘못하고 있다. 행복하려고 농장 일을 하는데 이러면 안 되지. 내가 왜 이러지' 깊은숨을 들이켜고 몇 초간 불안정한 마음의 리듬을 끊는 시도를 한다. 그래! 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비 내리는 것을 보면서 진정하자. 문을 드르르륵 열고 밖으로 나와서 찬 공기를 마시고 겨울비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 멀리 옅은 안개가 끼어있었다. 마침 기러기 떼들이 하늘을 날아간다. 기러기 떼가 나무에 가려서 안 보일 때까지 지켜본다. 다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빠듯한 주말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다. 생각이 복잡해진 데는 세세한 모든 결정을 의논할 사람 없이 혼자 모든 것을 내려야 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외롭다는 게 이런 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시도를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실패하면 안 된다는 굳은 마음도 한몫을 한 듯하다.  룰을 정했다. 결정을 할 때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방향으로 하자. 마음이 편안해야 지속할 수 있을 것이고 동거 동락하는 야자나무들도 편안할 것이라 생각했다.


  마음이 진정되고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 땅 위에 널브러져 있는 망치와 삽, 가위, 갈퀴, 사다리를 농막 안으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나의 행동에서 낭만을 찾는 거야. 천천히 멀리 바라보자” 농장 풍경을 머리로 상상하자. 그 속에 나를 그려 넣자. 그리고 은행잎이 떨어져서 샛노랗게 변한 땅을 그려 넣자. “어때? 좀 멋지지 않나?” 복잡한 세상을 디테일하게 그대로 바라보지 말고 때로는 단순한 라인으로 바라보자. 뭉퉁한 4B 연필이 도화지를 지날 때 손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살짝 움푹 누르는 종이의 저항감을 생각했다. 흑연이 떨어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사각사각..


 몸은 하나이고 해야 할 일은 이렇게 많으니 맨날 밤에 곯아떨어진다. "이번 겨울을 잘 보내면 내년은 한결 가볍게 느껴질거야. 1년이라는 한 사이클을 겪어봐야 하니까.." 오늘은 일요일.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 와이프를 빼놓지 않고 생각했다. 와이프 직장이 끝나는 시간을 맞춰서 데리러가야하니까 이제 슬슬 마무리 작업을 한다. 도대체 농장가면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으냐고 와이프는 이해하지 못 했다. 약간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기도 했다. 2019년 봄에 농장을 와 본 이후로 한 번도 다시 오지 않아서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여름 무더위에 돌멩이 제거,잡초 제거, 벌레 퇴치, 포트 작업, 그늘막 설치...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사소한 일들을 했다.  농장 갔다가 빨리 좀 오란다.

 “내년에는 와이프를 무보수직원으로 고용하겠어. 하하 직원이 생기는 건가?” “아들이 빨리 자라서 이 일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 든든하겠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를 생각하며 중얼 거렸다. 뭐 몇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사이 농장 기반을 닦아두겠다는 다짐을 했다. "봄이 오면 이곳은 아들의 놀이터가 되겠지. 여름이면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서 수영도 하고 벽돌 담장을 만들면서 시멘트 위에 이름과 날짜도 새겨 넣고.. 어떤 추억을 쌓아야 하나? 너무 행복한 고민인거 같아" "흥 어찌 알고??"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문대대로 내려온다는 그 특별한 능력에 대해 말이죠. 나한테는 능력이라기보다 흥미거리입니다. 저의 오랜 기억 속에 할아버지의 정원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어렸을 적 고향집은 아주 외진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농사로 살아가는 마을이었죠. 할아버지도 당연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과 다른게 하나 있었습니다. 마당을 예쁜 정원으로 가꿨던거죠. 고된 농사일을 끝마치고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오면 식사를 하고 쉬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 농부들 한테 마당을 꽃과 나무로 가꾸는 것은 사치같은 거였죠. 그냥 나무를 빈자리에 심어둔것이 아니라 화단 경계석도 만들고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도록 가꾼거죠. 집 주변에 풀이 가득한테 집에서 까지? 그당시 제가 유치원생이었는데 봄에 놀러간 기억이 납니다. 정말 목대가 굵고 키가 큰 장미나무가 마당 중심부에 있었고 마당 경계를 따라서 여러 꽃나무들이 즐비했습니다. 빨강색 노랑색 아이보리 색이 가득했습니다. 'ㄴ' 자 집이었는데 꽃나무로 둘러쌓여있어서 마당에 들어오면 포근하게 안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집을 잊지 못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몇년뒤 하필 할아버지 집으로 큰 도로가  생기게 되면서 그 정원이 도로 아래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1'자 집이 되어버렸습니다.  동심 파괴가 일어났네요.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식물에 대해 잊고 살다가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경력이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서 언제부터인가 양재꽃시장을 매주말이면 가게 되더군요. 문뜩 과거를 돌아다 봤습니다. "할아버지도 식물을 좋아했었고.. 음.. 그렇고 보니 아버지도 식물을 참 좋아했었네.. " "아파트 베란다를 전부 식물로 채워뒀고 오전 근무만 했던 주말이면 일찍 와서 물을 주는 타임을 가졌었어." "요즘에도 옥상에 야생화를 심어 가꾸고 있고 야외로 야생화 꽃을 보러 다니네" "오.. 그렇고 보니 장손들만 식물을 가까이하고 기르는 것을 좋아하네. 그 많은 아버지 형제들, 나의 사촌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 하하" "쿵쾅이도 그렇겠지? 하하" 와이프한테 이 말을 지겹도록 했습니다. 피식 웃으면서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짓습니다.


2년 전에 정말 정말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아 뵈러 시골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경상북도의 안동에서 남동쪽에 있는 길안이라는 시골 마을입니다. 앗 이럴수가 마당 한 쪽에서 오래된 할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할아버지의 정원의 일부였던 당종려나무 입니다. '할아버지도 야자나무 종류에 관심이 있었었나?' 몇 십년 전의 할아버지와 지금 내가 연결되는 듯 합니다. 아버지한테 듣기로는 4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 그 오래전에 이 깊고 깊은 시골에서 어떻게 야자수씨앗을 구해서 발아시켜 길렀는지 할아버지의 식물에 대한 애착에 대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던 저는 어렸을 적에 이 나무의 잎에 나있는 결을 따라서 두 갈래로 찢곤 했는데... 괜한 후회가 듭니다. 그 동안 대신 관리를 해 준 삼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무튼 쿵쾅이도 식물을 좋아할거야. 그런 줄 알아." 와이프한테 넌지시 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