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들 3개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쓴다.
3년 여가 지난 현재, 제주집은 더 이상 운영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기록도 끝까지 남겨야겠다고 생각은 항상 했었는데, 일하고 생활하다 보니 시간이 휙휙 지나가버렸다.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은 쉬운 일일지 몰라도, "끝맺음"을 맺는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다시금 든다.
그래도 기억이 더 휘발되기 전에 적어본다.
하늘빛의 바다로 향했었던 여정
2021년, 2022년, 2023년.
그때는 그래도 낭만의 시대였던 게 아닐까 싶다.
늘 그렇듯 매일의 생활과 생업에 치여서 살고 있지만, 제주집을 생각하면 '참 어떻게 그땐 그랬지?',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작도 그랬었고,
끝난 지금도 그런 행동들의 뿌리, 근원을 찾아 들어가 보면..
결국 살면서 내내 잊히지 않을 만큼의 빛났던 행복감, 그것을 주었던 환경과 장소, 최대한 비슷한 것을 계속 나도 모르게 찾아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결정적인 하루, 그 기억이 3편 있다.
1. 마나가하 비치
열다섯 살 무렵, 사이판의 마나가하 비치에 갔었다.
부모님이 낚시도 좋아하고, 부모님의 고향이 바닷가 가까이에 있어서 어릴 때부터 동해, 남해의 바다는 정말 숱하게 가보았었지만 내가 바다를 좋아한다고 여긴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보았던 하늘색의 투명한 "열대의 바다"는 아예 달랐다.
하루, 한나절만 머물 수 있었는데,
그날 그 하얗던 해변가에서 놀고, 투명한 물속에 둥둥 떠서 알록달록한 작은 물고기들을 내려다보았었던 그 하루가 이후 내 인생에서 이정표로 뿌리를 내렸다.
오랜 시간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가도, 문득 난 뭘 하고 싶지? 어딜 가고 싶지?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먼저 그 하얀 모래와 하늘색의 바다가 다시 떠오른다.
2. 보라카이 비치
스물네 살 무렵, 보라카이 비치에 갔었다.
그날 우연히 밤의 해변가에 띄운 배를 타고서 야간 다이빙을 했었다.
밤에도 따뜻한 바닷물은 투명해서 달빛을 받은 산호와 돌들이 보였다.
잠을 자고 있는지 물고기들은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다이빙을 하고,
잠시 수면 위로 올라와 배의 닻줄에 살짝 매달려 수면에 드러누워 있었다.
크고 검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아직도 문장으로 떠오른다.
'만약 살다가 죽고 싶어지면, 일단 여기 다시 와보자.
어떻게든 여기까지 올 돈만 마련해서
이걸 다시 보고, 그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
지금의 내가 떠올리기엔 너무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생각이지만 분명히 그랬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다시 보고 죽어도 되지 않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씩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 때면, 저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아직 그곳에 가려고 실천한 적은 없었으니 평탄하게 살아온 것이겠지.
3. 김녕 해변
서른한 살에는 제주도 김녕 해변에 갔었다.
3박 4일의 여행 끝에 서울로 돌아와야 하는 날이었는데, 공항으로 가던 길에 김녕 해변을 지나가게 되었다.
사흘 내내 먹구름이 왔다 갔다 하던 날씨였는데, 그땐 비도 멎고 햇빛이 내리쬐며 엄청나게 화창해졌다.
자동차의 오른쪽으로 계속 펼쳐지는 바다의 색깔이 심상치 않았다.
결국 김녕해변가에 차를 주차하고, 바닷물이 닿는 곳까지 걸어갔다.
저 멀리 검푸른색, 가까이는 하늘색의 깨끗한 바닷물이 반짝거렸다. 검은 돌과, 하얀 모래..
눈앞 가득 펼쳐져 있지만 정말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찰랑찰랑 거리는 바닷물 속을 잠시 걸어 다녔다.
비행기 타러 가야 해서 더 이상은 머물 수 없었지만, 꼭 다음에 다시 와서 수영복을 입고 하루종일 여기 몸을 담그겠다 생각했다.
그동안 이곳, 저곳 그래도 나름대로 국내, 해외의 많은 바닷가를 가보았는데,
그날 그 김녕의 바다는 단숨에 1위로 올라섰고, 사실은 지금까지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그 뒤로도 김녕의 바다에 여러 번 갔었지만.. 그날과 같은 날은 없었다.
그날, 그 감격적인 기분에 흠뻑 취해서
나는 무려 결혼 결심까지도 했었던 것 같다.
일단 go 하자. 그런 마음이 절로 들었었지.
첫 번째 여름, 바다에 드디어 가다.
제주집은 첫 손님이 들고나간 이후, 그때가 6월의 시작이었으니 성수기가 시작되었다.
6월, 7월, 8월, 9월까지 계속 예약 문의가 들어왔다.
특히 7월, 8월 휴가철에는 한 달이 아닌 더 짧은 기간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대부분 받아주었고,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나도 한 달에 2,3번씩 제주도에 왔다 갔다 했다.
작은 집이어도 생각보다 청소할게 많고 시간이 많이 들어서 몸은 고되고 힘들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행복했던 기억이다.
초창기엔 나도 바짝 긴장한 상태여서, 청소 일정도 매우 타이트하게 잡았었다.
짧은 일정으로 갈 때는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없어서 혼자서 후다다닥 다녀왔는데, 아무리 왕복 10시간이어도 혼자 다녀오는 것은 홀가분한 것이었다.
당일에 가서 청소하고 그날 밤이나, 바로 다음날 새벽에 나오곤 했다.
한 끼 혹은 두 끼 정도를 조금 마음 편하게 맛있게 먹었고, 카페도 간 적도 있고 못 간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제주도에 가서 한 바퀴 돌고 오는 것 자체가 기분이 참 좋았었다.
그렇게 짧은 일정의 손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틈새가 며칠이 비어서 아예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 일정을 잡았다.
8월 중순. 8박 9일의 일정이었다.
4월 말에 집을 사고, 한 달 넘게 집을 수리하고 가꾸고, 6월 초에 첫 손님이 방문한 이후 드디어 나도 식구들과 놀러 가게 되었다. 그렇게 길게 제주도에서 머물렀던 것도 처음이었다.
처음엔 '사람들은 어떻게 한 달이나 제주도에 있나, 지루하지 않나?' 생각했었는데 9일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떠나는 날까지도 벌써 집에 가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 기분으로는 한 달이건 두 달이건 편안하게 쭉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하나씩 사서 집에 두었던 모든 집기들, 가구들, 물건들을 총 동원해서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둘 다 유치원생일 때라 할 수 없이 한라산이나 오름에는 갈 수 없었고, 조잡한 박물관, 놀이동산 위주로 다닐 수밖에 없었지만 매일매일 틈틈이 석양을 보았고, 바다에서 온전히 하루 논 날도 있다.
협재와 금녕 사이 해변.
십 년 전에 보았던 그 아름다웠던 김녕바다에 견줄만한 날이었다.
십 년 전에는 커다랗고 파란 챙모자하나 들고 비치드레스 입고 팔랑팔랑 돌아다녔을 뿐이었지만,
지금은 아이들에 부모님까지 모두 다 같이
그것도 내가 산 파라솔, 미니테이블, 의자, 돗자리를 챙겨서 갔다는 것이 매우 달라졌다.
다른 것도 아닌 "파라솔"을 짊어지고 해변으로 가는 기분이 참 묘했다.
여행객은 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하얀 모래와 검은 돌 사이에 자리를 잡고 파라솔을 펼쳤다.
어린아이 두 명을 계속 지켜봐야 해서, 막상 나는 해수욕을 전혀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조그마한 애들 둘이 구명조끼를 입고 투명한 물에 둥둥 떠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근처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다가 파라솔 밑에서 먹었다.
정말 정말 파랬던 하늘과 투명한 바다를 배경으로, 수영복 입고 컵라면을 먹고 있는 아이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날 라면은 정말 맛있었고, 아이들은 그 뒤로도 바다에 가서 라면 먹고 싶다고 가끔 이야기한다.
그 9일의 여름휴가는 내겐 너무 특별해서 나중에 따로 앨범도 만들어두었다.
그 무렵 경제적인 문제는 언제나 근심거리였는데, 공교롭게도 마침 그 휴가의 첫날,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전부터 한 달 이상 공들여왔었던 계약이 체결되고 꽤 큰 액수의 계약금이 갑자기 입금되었었다.
졸였던 마음이 탁 풀리면서 자동차로 제주집 가는 길에 식구들을 데리고 스테이크를 먹으러 갔다.
그렇게 휴가가 시작될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한시적이나마 확 풀렸던 지갑사정.
몇 달 동안 가꾸었던 제주집에서의 첫 휴가.
내 손으로 일군 것들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하늘빛 빛나는 바다에 갔다.
그 이상 좋을 수 있을까?
원래 나는 과거의 어떤 날로도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삶에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날을 꼽으라 한다면 바로 이 날이라고 깊이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