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느닷없이, 뜻밖에 홍콩

by 골드래빗

퇴사를 한 후 다짐했던 게 원 없이 여행 좀 가보자였습니다. 사실 회사일이 너무 바빴던 지난 몇 년간 휴가라고는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기껏해야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남산 어느 호텔에서 호캉스 하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죠.

사실 그런 호캉스를 싫어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는 하루 종일 원 없이 수영을 할 수 있었고, 저는 오랜만에 강북의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으니까요. 뭐, 대단한 음식도 아니고 부암동에 유명한 치킨입니다. 그 집 골뱅이 소면과 치킨, 웨지감자의 조합은 어디도 따라갈 수 없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곳으로의 호기심을 항상 열려있었습니다.


작년에는 10살짜리 딸아이와 오사카와 교토에 2주간 머물렀습니다. 올 해는 홍콩과 마카오를 열흘 계획했지요. 7월 15일 , 사실 지금 저는 홍콩에 있습니다. 70억 개의 별보다도 더 반짝이는 홍콩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이 곳에서 제가 홍콩에 온 이유를 글로 써보려고요.




모든 것의 시작은 이 노래 때문입니다.
Try to remember


https://youtu.be/uOvXDWBzGPg


최근 제 귓 가를 흘러 들어왔던 이 음악은,

'유리의 성(琉璃之城: City Of Glass, 1998)'에서 남자 주인공인 여명이 불렀던 OST입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저는 서울 극장에서 친구와 보고 기숙사로 돌아와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격동의 홍콩 현대사를 고스란히 안고 영화는 두 사람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 영원할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영화입니다. 주인공들은 1996년 12월 31일 새해를 앞두고 축제 분위기였던 런던의 어느 대로에서 자동차가 전복되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1997년 7월 1일 자로 150여 년의 영국령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되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홍콩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사람들의 인생과 심리가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여줘 왔습니다. <첨밀밀>도 그랬고 < 화양연화>도 그랬네요.


최근에는 '일국양제'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는 홍콩 시민들이 연이어 시위를 하고 있죠. 친 중국 성향의 홍콩 행정장관이 송환 법을 이유로 일국양제를 무너뜨릴 것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국양제란 하나의 국가에서 두 개의 제도를 허용한다는 의미로 중국 본토는 사회주의, 홍콩과 마카오는 자본주의 체제로 간다는 뜻으로 등소평이 했던 말이었습니다. 이미 영국의 자본주의에 익숙한 홍콩인들에게 사회주의는 너무나 다른 정치 방식이었거든요. 그러나 일국양제도 시한이 50년이기 때문에 홍콩인들은 늘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거죠.





홍콩에 오면 제가 느꼈던 20대 초반의 불안했던 마음과 그때의 내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매우 밀집된 도시 환경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홍콩인들이지만 안정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운명 같은..


그렇게 뭔가에 홀린 듯이 뜻밖에 홍콩행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하고 여기로 왔네요. 그리고 지난 며칠간 계속 홍콩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생각도 정리하며 지내고 있습니다.돌아가기 전까지 몇 개의 이야기를 더 남겨 보려 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