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를 가장 잘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역사박물관을 추천합니다. 보통 여행지에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보기 위해서는 미술관, 미래를 보기 위해 과학관이 적격이죠.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는 홍콩 역사박물관을 들렀습니다. 홍콩 역시 영국의 지배를 받았었고, 심지어는 최근 국제면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안 갈 수가 없죠.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아침, 박물관 오픈 시간에 맞춰 서둘러 호텔을 나섰습니다. 더운 날씨에 비까지 온다는 것은 매우 돌아다니기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교를 건너 박물관 안으로 대피하듯 미끄러져 들어갑니다.
<역사박물관 입구 설명문>
홍콩 역사박물관은 자연사부터 근대, 현대까지 다양한 홍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장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은 아무래도 영국 아편전쟁부터 근대화, 영국 지배 시대, 그리고 중국으로의 반환되는 과정을 보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근대화 시기의 생활상을 제대로 재현해놓은 상점, 우체국, 항구, 전통 식당, 찻집 등의 모습은 20세기 초 우리나라 모습과도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재미있게 꾸며진 전시장 속에서 추억 돋는 사진들을 찍으며 지나갑니다. 홍콩 사람들도 소원 비는 종이를 적어 나무에 걸어두는 건 우리랑 똑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웃으며 내 소원을 적고 다음 음 전시장으로 넘어가며 연신 웃었습니다.
< 홍콩의 근대화 생활과 나의 소원 트리>
이 곳을 보기 위해 내가 홍콩을 왔지.
영국과 중국 정부는 1984년 12월 '공동성명'을 체결합니다. 1842년 아편 전쟁에서 진 청나라는 영국에 홍콩섬을 할양하고, 이후 구룡반도 일부, 신계 지역까지 영국에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영국은 이 곳을 150년간 통치했고, 이 공동성명에서 발표한대로 1997년에 홍콩을 중국에 반환을 약속합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기나긴 영국 식민의 끝을 정리하는 계기이며, 영국은 대영제국의 마지막 상징을 잃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었죠.
영국은 분명 공산주의 체제인 중국이 홍콩을 공산화시킬 것을 염려했습니다. 여태껏 영국이 홍콩을 아시아의 금융, 무역 중심지로 만든 공이 무너질까 두려웠던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영국은 중국 정부에 홍콩의 주권은 중국이 갖되 치권은 영국이 갖겠다고 주장하죠. 그런 반쪽짜리 반환은 싫다며 결국 덩샤오핑은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제안하고 협상을 마무리합니다.
< 일국양제의 약속>
<일국 양제의 약속>
일국양제((一國兩制)
1997년부터 2047년까지 50년간 홍콩은 영국령 자본주의적 경제/정치 체제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식 사회주의는 영구히 홍콩에 적용되지 않으며 , 홍콩은 홍콩 내 기본법으로 형법과 민법 등을 적용한다입니다. 이러는 이유는 영국에 의해 150년간이나 자본주의가 시행되어온 홍콩에서 바로 사회주의를 실시한다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고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중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았죠.
그렇게 1997년 7월 1일 자로 홍콩은 중국에 반환됩니다. 그리고도 별 탈 없이 지금까지 지내왔죠.
지금 홍콩에서 일어나는 시위는 이러한 일국양제 체제가 무너지고 있음을 직감한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입니다. 그 시작은 지난 3월 개정안을 발표한 '송환 법'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간 범죄인을 인도하겠다는 범죄인 송환에 관한 건데요. 범죄인을 본토로 돌려보내는 게 왜 문제냐고요? 범죄인의 정의를 중국 공산당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언론 탄압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반중국 정부 인사들은 모두 줄줄이 송환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되면 홍콩이 공산화되는 건 시간문제가 될 수 있고요.
다행히 제가 여행하던 시기에는 홍콩 시민 100만 시위가 지난 후, 캐리 람 행정장관은 '송환 법은 죽었다'라고 발표하며 시위를 종료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죽었다'는 표현은 '폐기했다, 폐지했다'가 아닙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홍콩은 뜨겁게 시위를 하고 있죠. 제가 여행 중이던 주말에도 홍콩 시민들은 시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드높은 빌딩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홍콩의 금요일 저녁, 저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올가가 봅니다. 양 옆으로 골목마다 작은 음식점과 펍이 보입니다. 퇴근 사람들이 들어가 저녁을 먹고 있네요. 절반은 외국인으로 보이는데, 이 사람들은 여기 홍콩에서 근무하는 다국적 회사 직원들이겠죠? 저와 같이 5년 간 프랑스 브랜드에서 일했던 아시아 담당자도 여기 홍콩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월세도 비싸고, 좁고 좁은 이 곳에서 그들의 삶도 볼 수 있습니다. 홍콩이 공산화가 되면 이들은 다 어디로 떠날까요? 과연 계속 홍콩에 있을까요?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 무역의 중심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자력이 아니라 영국의 민주주의였음은 분명합니다. 저는 그렇게 자유를 열망하는 홍콩 시민들의 모습을 주변에서나마 지켜봤습니다. 우리의 80년대, 90년대에도 이런 민주화 운동이 있었겠죠. 그 끝에 지금의 우리 사회가 이뤄진 것이라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