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가 되느니 진상이 되기로 했다

지지부진했던 에어프라이어와의 사투_2

by 작가H

우리 집에 도착한 에어프라이어의 상자를 뜯으며 ‘드디어!’, ‘이젠 끝이겠지’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진 채 상자 속에서 에어프라이어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는데 뭔가 이상했다. 에어프라이어가 자꾸만 오뚝이처럼 흔들댔다. 수평이 안 맞는 거다. 이게 뭘까. 에어프라이어를 들어 밑을 확인하는데 겉면의 플라스틱이 깨져있었다.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여기저기가. 웬만하면 참고 쓰려고 했다. 또다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고 상황을 이야기하고 제품을 보내는 것이 생각만으로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커다란 에어프라이어가 들어갈 상자를 구하기 위해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그만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제대로 세워보려 해도 깨진 부분들 때문에 에어프라이어는 제대로 서질 않았다. 그리고 이런 상태로 제품을 계속 사용했다간 또다시 다른 부분에 고장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고객센터에서는 에어프라이어의 밑면이 깨져있다 설명하니 기사님들이 물건을 던진 것 같다며 말을 했다. 하지만 글쎄. 내가 봤을 땐 공장에서 수리를 하며 깨진 부분들인 것 같았다. 만약 던져서 제품이 깨졌다면 밑면이 전체적으로 쓸리듯 깨져있어야 할 텐데 그런 모양이 아니었다. 이미 포장을 벗긴 에어프라이어를 험하게 다룬 모양으로 군데군데 플라스틱이 깨져있었다. 고객센터에서는 또다시 제품을 보내라고 이야기했다. 두 달도 채 사용하지 않은 에어프라이어를 두 번이나 이주가 넘게 걸리면서 수리를 맡겼었는데 또 수리를 맡겨야 하다니.


“이번에 수리 맡기면 세 번째로 수리 맡기는 거 알고 계세요? 저번에도 일주일 만에 보내주신다고 하시더니 이주가 넘어서 도착하고.”


하지만 고객센터 측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대한 빨리 수리해서 이번 주 안으로 받을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저번에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이주가 넘어서 받았어요.”


“이번에는 정말 빨리 보내드릴게요.”


결국 전화는 그렇게 끝났고 나는 또다시 제품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일주일이 지나도 에어프라이어는 우리 집에 배송 오지 않았다. 최근 전화 목록에 고객센터의 번호가 가득했다. 나도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지겨워 최대한 전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하지 않으면 상황이 진행되질 않았다. 전화를 하고 독촉을 해야만 제품이 수리되고 우리 집으로 배송이 되었다. ‘언제 제품을 받을 수 있냐’, ‘벌써 약속한 기간이 자났다’, ‘제품을 사용한 시간보다 수리 맡긴 시간이 더 많다’ 독촉을 해야 하니 전화를 할 때마다 의도치 않게 진상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 이렇게 매번 통화하는 것도 오늘로 마지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전화를 걸자 고객센터에서는 추석이 겹쳐 일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땐 정말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그동안 참아왔던 말들을 쏟아냈다.


“이제 사용한 것보다 수리한 시간이 더 긴 거 알고 계세요? 제품 상태가 이런데 교환도 안 된다고 하고 환불도 안 된다고 하고. 제품은 수리를 맡겨도 이 모양이고. 저번에도 일주일 안에 받을 수 있게 해 주신다고 하더니 결국 이주가 넘게 걸렸잖아요. 이번에 보낼 때도 분명 일주일 만에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면서 또 추석 때문에 일주일 더 걸린다고 하시고. 정말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고객센터의 상담원에게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것이 너무 진상처럼 보일까 봐 최대한 참아온 말들이었다. 하지만 계속해 이렇게 가다간 정말 이 기업의 호구가 될 것만 같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전화를 하는 동안에만 이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 최대한 빨리 해결해주려는 척 연기하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내 제품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는 것 같았다. 상담원은 제품을 교환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쪽에서는 나에게 다시 연락을 주지 않았다. 며칠이나 전화를 기다리던 내가 다시 전화를 했고 그제야 수리기사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수리기사에게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들을 설명하고 또 몇 번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나는 새 제품으로 교환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추석이 지나고 나서야 도착한 새 에어프라이어의 포장을 뜯으며 약간은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이걸 받으려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고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고 에어프라이어를 언제 받을 수 있을까 걱정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내가 에어프라이어를 사용해본 기간과 같을 것이다. 그리고 고객센터에서는 분명 나를 진상이라고 욕했겠지.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전화를 하지 않고 무작정 제품이 수리되기를 기다리기만 했다면 아직까지도 제대로 수리된 제품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럼 그 상황에서는 진상이 되지 않기 위해 호구가 된 기분이었겠지. 이 얘기를 동생에게 했더니


호구보단 차라리 진상이 낫지 않아?
어쨌든 이제 또다시 고장 날까 봐 마음 안 졸이고 에어프라이어 쓸 수 있잖아.


라는 말을 했다. 그래. 동생의 이 말이 맞다. 누군가에게 욕을 먹을까 봐 누군가가 나를 싫어할까 봐 호구가 되기보단 내가 할 말은 하고 사는 진상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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