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막고 살아야지 올해는
엄마와 싸웠다. 아니 일방적으로 혼났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사실 혼나게 된 계기도 나한테는 억울한 것이었다. '오히려 엄마가 잘못한 거 아냐?', '내가 이것에 대해 열 번은 더 얘기한 거 같은데?' 내가 지금 왜 혼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는 채로 엄마의 잔소리들을 들었다. 어쨌든 그 계기는 다른 사소한 것이었는데 그 사소함에 이런저런 것들이 더해져 결국엔 이런 말도 들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는 것도 없는 게'
작년 8월에 코스모스 졸업을 하고 학생이라는 타이틀까지 잃어버린 26살의 나는 백수가 되었다. 그러니까 말이 좋아 취준생(취업준비생)이지 사실은 백수가 맞다.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한 지인이 또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요즘 어떻게 지내?', '무슨 일하세요? 학생이세요?'라고 묻는 것이 두렵다. 그러면 나는 또 '취업 준비하고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어색한 웃음을 띄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으로 이런 연락이 오면 최대한 읽지 않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마지못해 답문을 보낼 때도 많다. 아니면 아예 잊어버린 척 답장하지 않거나.
어쨌든 나도 20살 때는 26살이 되어서도 취업을 하지 못한 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내가 상상했던 나의 미래는 적어도 졸업과 동시에 취업에 성공하고 서울에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기에. 내가 아직은 20대의 초반이었을 때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지금 내 나이의 언니, 오빠들을 보며 '왜 아직도 취업을 안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까?'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그때는 취업이란 것이 이렇게 어렵고 높은 곳에 있는 것인지 몰랐다. 자만했던 것 같다.
어쨌든 민족 대명절이라는 설이 코앞으로 다가온 이 시점에서 아직 취업하지 못한 백수라는 타이틀은 누가 따로 상기시켜주지 않아도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이름이라는 거다. 그래도 올해는 꼭 취업에 성공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취업 스터디도 열심히 나가고 자격증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리고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설거지와 빨래를 널고 개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아무것도 하는 것도 없는 게'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조금은 많이 씁쓸했다.
엄마는 예전에도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네가 준비하고 있는 그 일은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런데 우리 딸이 할 수 있을까.' 그때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웃어넘겼지만 이번엔 마냥 그럴 수 없었다. 엄마는 그저 26살의 딸이 백수라는 타이틀을 벗고 아무 곳이나 빨리 취업하기 바라시는 거겠지. 이제 집에서는 귀를 막아야겠다. 26살의 내가 상처 받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