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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케로 Nov 21. 2023

멀리 보면 천사인데 가까이 보면?

라이브 네이션과 On the Road Again

오늘은 최근 미국 음악공연계에 떠오른 중요한 쟁점 하나를 좀 깊게 파보려고 합니다.


라이브 네이션의 [On the Road Again]은 어떤 프로그램일까?

라이브 공연과 투어 프로모터 회사로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회사,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이 최근 "On the Road Again"이라는 프로그램을 런칭했습니다. 


말 그대로 "다시 투어 해줘"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이 프로그램은 이들과 전속 계약을 맺고 있는 미국 소규모 공연장들과 클럽에 한해서 적용됩니다. 


이 프로그램의 요지는 크게 두 가지로 보이는데요.  

공연장이 아티스트의 merch 상품 판매 수익의 일부분을 가져가는 것을 금지하겠다. (보통 15~20%를 가져가는 것이 미국 공연 업계 표준)

아티스트들에게 1,500 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겠다.

매우 아티스트 친화적으로 보이는 정책이기에, 미국 진보 진영을 대표하는 음악 거장 중 하나인 윌리 넬슨까지 나서서 홍보 중입니다.


그런데 과연 라이브 네이션은 보이는 것처럼 아티스트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천사일까요? 만약 그게 아니라면 이번 프로그램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그리고 이들에겐 어떤 이득이 생기는 걸까요?

  

* 사실 "On The Road Again"은 윌리 넬슨의 히트곡 중 하나로, 1980년 윌리 넬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 [Honeysuckle Rose]의 테마곡이기도 합니다. 미국을 떠돌며 공연을 하는 늙은 뮤지션과 그의 가족 밴드에 관한 영화죠. 이 노래는 2011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Willie Nelson, Slim Pickens - On the Road Again | Honeysuckle Rose (1980)


라이브 네이션 소속이 아닌 공연장들은?

우선 당연하게도 미국의 독립 공연장 협회 (NIVA) 에선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NIVA (전미 인디펜던트 공연장 협회)


이건 (1) 라이브 네이션 소속이 아닌 공연장들은 경쟁에서 밀려 막심한 손해를 볼 수밖에 없고

(2) 아티스트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으로 보일 수 있으나 단기적인 이익일 뿐이고 

(3) 무엇보다 길게 보면 라이브 네이션을 제외한 공연장들과 아티스트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정책이라는 것이죠.


위 같은 정책들은 소규모 공연장들 입장에선 티켓의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상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티켓의 가격을 올리면 아티스트와 관객에게 외면받는 건 당연한 일이구요.


그럼, 결국 공연장 문을 닫거나 라이브 네이션에게 공연장을 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대형업체가 들어와서 우리 소규모 업자들 다 굶어 죽는다라는 것인데.


하지만, 이 전략 자체는 어떤 산업이건 간에, 웬만한 대기업들이 기본적으로 택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결국 소비자 그리고 아티스트에게 피해가 안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싶기도 한데요. 


참고로 라이브 네이션은 이 정책을 위해 티켓 가격을 올리진 않겠다고 공표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NIVA 측은 왜 이번 프로그램이 장기적으로 아티스트에게 손해를 끼칠 것이라고 주장하는 걸까요?


라이브 네이션은 어떤 회사인가?

 

이번 프로그램의 장기적 영향을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선 우린 우선 라이브 네이션이라는 회사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봐야 합니다.

라이브 네이션은 대체 뭐 하는 회사인지,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인지 감이 안 잡히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라이브 네이션은, 자그마치 시총이 한화로 26조 원에 달하는 대기업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아티스트가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기까지는 매니지먼트사, 공연 프로모터, 티켓팅 플랫폼, 그리고 공연장이라는 중간 단계 업체들을 통해야 하는데요. 


라이브 네이션은 쉽게 말하자면 이 네 가지 중간 업체에 모두 걸쳐 있는 회사입니다. 심지어 뒤에 세 분야에선 업계 압도적 1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죠. 


공연 프로모터로 시작한 회사이기도 하고, 현재까지도 대략 연간 세계적으로 4만에서 5만 개 정도의 공연 그리고 백 개가 넘는 페스티벌을 프로모션 하는 초대형 프로모터입니다.

티켓마스터

거기에 더해 미국의 가장 큰 공연 티켓 판매/거래 플랫폼인 티켓마스터를 소유하고 있는데, 미국에서 열리는 콘서트의 대략 70% 정도가 티켓마스터를 통해 티켓팅이 된다고 하니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회사이죠.

   

※ 참고로 미국은 사용자 간 티켓 거래가 합법이기 때문에 암표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티켓마스터는 최초로 티켓을 팔 때 뿐 아니라, 사용자들끼리 거래를 할 때에도 수수료로 돈을 버는 회사입니다.


그리고 라이브네이션 측이 프로모션 권리를 독점하고 있거나 (exclusive booking right) 거의 독점했다고 말할 수 있는 공연장만 26만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Front Line Management 인수와 유니버설 뮤직 그룹과의 파트너십 등으로 음악 매니지먼트 업계에도 진출해 있으니, 라이브 공연 업계에서 지속해서 수평적 그리고 수직적 합병을 해온 회사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로 인해 현재 라이브 네이션의 독과점 관련해서 캘리포니아주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뭐가 문제인가?


어떤 기업이 한 산업을 독점하기 시작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중소형 업체들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고, 경쟁이 사라지면서 소비자 가격은 상승합니다. 


그리고 공급자들은 다른 판매처가 없기에, 독점하는 기업에 싸게 팔 수밖에 없죠. 싸게 사서, 비싸게 파니 이득은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라이브 네이션이 독과점인지 아닌지는 결국 법원에서 판결할 문제이고 모든 게 라이브 네이션 탓이라고 할 순 없지만, 현재 미국 라이브 공연 업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콘서트 티켓 vs. 영화 티켓 vs. 소비자 물가 지수


1) 티켓 가격의 상승

위 그래프로 알 수 있듯, 소비자 물가나 영화 티켓 가격 등과 비교해서 콘서트 티켓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했습니다. 


특히 몇 달 전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소비자들이 실질적 피해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법적으로 그리고 정책적으로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죠. 


결국 이번 반독점 소송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업계에서의 위치를 볼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죠.)


2) 경쟁의 부재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연/투어 기업인 라이브 네이션은 코로나 시기 중 가장 크게 매출 피해를 본 대기업 중 하나였습니다.

라이브 네이션 연 매출 (100만 달러 단위)


위에 그래프에서도 보이듯 2019년까지 110억 달러 선을 상회하던 라이브 네이션의 연간 매출이 20년에 18억 달러 선까지 내려온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하지만 작년에 연간 매출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오는 것을 가볍게 넘어 역대 최고치 160억 달러 선을 찍더니, 올해 매출은 다시 한번 최고 기록 190억 달러(!) 선을 찍었습니다.


물론 코로나 시대 도중 공연에 대한 갈망이 코로나가 끝나자 폭발했다는 것도 한몫했죠.


여기서 문제 나갑니다.


공연/투어 전문 대기업인 라이브 네이션보다 코로나로 더 큰 피해를 본 회사들은 대체 어떤 곳들이었을까요? (넌센스 퀴즈 같기도 하네요.)


정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바로 공연/투어 전문 중소기업들이죠! 


어떤 산업의 매출이 한 순간에 80%가 넘게 날아갔는데 그 상태로 몇 년이 흘러가는 동안 버틸 수 있는 사업체라면? 당연히 대기업밖에 없습니다. 


돌아보면 코로나는 라이브 네이션에 다시 없을 엄청난 위기였지만, 동시에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였습니다. 


이들은 코로나가 곧 끝나리라는 것에 베팅했고, 대기업 특유의 자본과 여유를 갖고 존버(?)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처럼 버티지 못한 경쟁사들, 중소기업들, 그리고 공연장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죠. 


특히 2021년 업계에서 세계 3등 정도 하던 프로모터인 OCESA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인데요. 


몇 년 후 실제로 코로나는 끝났고, 과장 조금 더 해서 공연 산업에 남은 플레이어는 실질적으로 라이브 네이션 뿐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3) 다른 옵션이 없다

공연장과 아티스트들은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나니 갑자기 업계에서 본인들의 레버리지가 대부분 사라졌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 전엔 여러 프로모터와 티켓 플랫폼들이 경쟁하고 있던 구조였기에, 더 좋은 조건을 위해 저울질했었는데, 갑자기 대형거래처 한 곳만 남았으니까요. 


이후 라이브 네이션은 본인들의 힘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티켓마스터 수수료 상승으로 인한 티켓 가격 상승 (현재 미 의회에서 hidden fee를 불법으로 지정하는 법안 검토 중) 

라이브 네이션과 계약을 맺은 공연장들이 티켓마스터와 계약을 맺지 않고, 다른 티켓 판매처와 계약할 시 프로모션 불이익 

아티스트 merch 상품 판매 수익의 30%를 공연장이 가져감

아티스트에게 지급하는 최소 게런티 금액 20% 하락

본인들의 잘못이 아닌 사유로 공연이 취소될 시, 최소 게런티 금액의 두 배를 아티스트가 환불

1번은 소비자들, 2번은 독립 공연장들, 그리고 3, 4, 5번은 아티스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갔다고 할 수 있겠네요. 


특히 5번 같은 경우는 업계에선 처음 보는 리스크 떠넘기기 방법이라 비판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모든 이득은 라이브 네이션과 그들의 자회사들이 가져가겠네요.


이 모든 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른 옵션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벌어질 일

이런 맥락을 알고 나서 다시 한번 "On the Road Again" 프로그램을 보겠습니다.  

공연장이 아티스트의 merch 상품 판매 수익의 일부분을 가져가는 것을 금지하겠다.

아티스트들에게 1,500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겠다. 

단기적으로는 일단 굿굿. 그런데 장기적으로는 어때 보이시나요? 


일단 라이브 네이션 소속이 아닌 공연장들은 더욱 많이 사라질 것이고, 그런 공연장들은 라이브 네이션이 추가로 인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따라 라이브 네이션의 레버리지는 더욱더 커지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아티스트들은 이 강력한 프로모터 + 공연장 + 티켓 플랫폼 기업과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의회 그리고 법원에서 라이브 네이션의 독점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와중에 나온 프로그램이라는 점에도 집중해야 하겠네요. 


브랜드 이미지 상승을 위한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단기적으론 이미지 상승, 장기적으론 경제적 이득이라는 꽃놀이패를 쥔 이 어마무시한 공룡을 미국 의회나 법원이 쓰러트릴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는 확률이 높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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