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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로 Sep 21. 2019

인지부조화


홀름아, 2019년 여름 우리나라는 여느 때처럼 떠들썩했단다. 구혜선과 안재현이란 연예인 부부가 부부싸움을 온라인상에서 요란스럽게 하는 바람에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양쪽 주장이 서로 엇갈렸는데 두 사람이 뭔가 새로운 주장을 내놓을 때마다 여론은 이리저리 휘둘렸단다. 구혜선을 편드는 사람들, 그리고 안재현을 편드는 사람들이 갈라져서 싸우는 통에 정신이 없었지. 그런데 이 부부싸움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뭔가 결정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단다. 자기가 편드는 연예인의 주장이 허위로 드러날 때마다 사람들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하며 고개를 저었지. 누군가는 편들던 연예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누군가는 허위라는 지적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이 부부싸움은 흐지부지돼버렸고 사람들은 모두 바보가 된 것 같은 무력감을 느끼더니 곧 정말 바보가 된 것처럼 다 잊어버렸단다.     


홀름아, 조국이라는 법무부장관이 임명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어. 조국이라는 사람의 배우자와 딸이 대학 입학 등 과정에서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 과정에서 야당과 검찰이 ‘저런 사람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선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단다. 의혹 제기와 반박, 새로운 의혹 제기와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온 나라가 조국 후보자를 놓고 다툼을 벌였어. 상당수 사람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어 헷갈려했단다. 조국이란 사람이 무엇을 잘못했고, 조국의 가족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도무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었던 거야. 특히 가장 혼란스러워했던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촛불집회에 참가함으로써 현 정부 여당 지지로 돌아선 사람들이었어. 이들은 박근혜정부 당시 비선실세 최순실이 박근혜의 후광을 악용해 딸의 부정 입학 등 각종 권력형 비리를 저질렀던 데 경악했던 사람들이지. 이들은 조국의 딸이 이례적인 방법으로 대학 등에 진학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 충격을 받았어. 영리한 진학전략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이는 박근혜 탄핵 촛불 지지자들에게 박탈감을 주기에는 충분했단다. 박탈감과 실망은 촛불 지지자들을 심각한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뜨렸어.


인지부조화란 자신이 갖고 있던 신념과 실제 나타나는 현상이 어긋나는 상태와 이로 인한 불편한 감정을 의미한단다. 쉽게 설명해줄게.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군과 적군을 나누고 아군은 좋은 일을 하고, 적군은 악한 일을 저지른다고 생각해. 그런데 아군이 악한 일을 저지르거나 적군이 좋은 일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그 순간부터 헷갈리면서 매우 불편한 심리상태에 빠지게 돼. 인간은 누구나 이런 인지부조화 상태를 꺼리기 때문에 적응방법을 찾게 되지. 즉 아군이 하는 악한 일이 사실은 좋은 일이라거나, 적군이 하는 좋은 일이 실은 악한 일이라고 믿어버리는 거야. 이를 합리화라고 부르지. 어떤 사람들은 입장과 태도가 뒤바뀌어도 뻔뻔하게 ‘내가 언제 그랬어?’ 라고 합리화하지만 일부는 착오를 인정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실제로 일부 탄핵 촛불 지지자들은 이번에 제기된 조국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아예 불법이 아니라거나, 이 모든 게 보수 언론, 기레기 언론, 그리고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검찰이 벌인 정부 여당 죽이기라고 주장하고 있어. 하지만 탄핵 촛불 지지자들 중 일부는 조국 사태와 최순실 사태간의 본질적인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단다. 이 인지부조화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결국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어.     


홀름아, 그러면 너는 이렇게 묻겠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고 어느 쪽에도 서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다. 어느 편도 들지 않으면 나중에 뒤통수를 맞고 실망하면서 인지부조화를 겪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묻겠지. 하지만 홀름아,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한 쪽을 반드시 택해야할 때가 있단다. 그리고 한 쪽을 택하지 않았을 때 두 번 다시 기회가 돌아오지 않는 그런 시기가 반드시 있단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뺏길 위기에 처했을 때 어중간하게 중립을 취하며 항일운동에 참가하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고 일본에 적극 협력했던 친일파 못지않게 책임이 있단다. 일본의 침략을 대세로 보고 거기에 순응하는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했다는 측면에서 친일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군사독재 정권의 압제에 침묵했던 이들, 재벌기업의 노동탄압에 침묵했던 이들도 대세에 순응하며 일신의 안일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자기합리화를 통해 마음속의 불편함을 무시했던 것이다.     


홀름아, 그래서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란다. 나이를 먹고 무언가 선택을 하게 되면 그 후부터는 수많은 인지부조화와 그로 인한 심적 고통을 겪게 된단다. 그리고 그 심적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하다보면 어느 샌가 되돌아갈 수 없는 먼 곳, 내가 애초에 뜻하지 않았던 정반대로 흘러와버렸음을 깨닫고 또 한 번 아파하게 된다. 너는 앞으로 네가 한 행동, 믿었던 사람, 지지했던 조직, 확신했던 신념이 오염되고 비판 받고 공격 받는 순간 마음 한편이 무너지는 듯 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인간이라면 이 일을 피할 수 없다. 다만 아빠는 홀름이가 그런 순간들마다 깊이 생각하면서 반성하고 고민하길 바란다. 사람들은 합리화에 합리화를 거듭하면서 자신과 아군의 잘못을 덮고, 부인하고, 또 거짓말을 하면서 떳떳함을 과시한단다. 홀름이는 부디 인지부조화 상황을 접할 때마다 잘못이 없다고 항변하기 전에 스스로를 뒤돌아보길 바란다.     


홀름아, 네가 엄마 뱃속에서 지켜볼 2019년의 대한민국은 전쟁터다. 연장자 위주의 기업 조직문화를 비롯해 남성중심 사회구조 등 기존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많은 전제들이 전 방위 공격을 받고 있다. 박근혜 탄핵 촛불 이후 한국 사회의 모든 전통적 권력과 사회 곳곳에 깔린 규범들이 의심의 대상이 됐단다. 변화의 물꼬는 터졌고 이는 멈출 수 없다. 앞으로 홀름이가 살아갈 이 사회의 전 영역은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다. 기존 체제의 수혜자와 체제에 도전하는 자 사이의 격돌은 지속될 거다. 토마스 홉스가 일찍이 말했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홀름아, 이런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홀름이는 늘 약자의 편에서 생각하길 바란다. 강자의 편에 서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합리화는 결국 인지부조화로 인한 스스로의 고통만 키울 뿐이란다. 절대적 약자와 상대적 약자, 역사적 약자와 상황적 약자. 이들처럼 약해서 고통 받는 이들 편에 서는 것이 스스로의 고통도 더는 길임을 알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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