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대로 Sep 29. 2019

공무원이 되려면

조국과 검찰개혁



홀름아, 엄마 뱃속에서 잘 지내지? 홀름이는 지금 편안하게 지내겠지만 바깥세상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단다. 드디어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거든. 한쪽은 조국 퇴진을, 다른 한쪽에서는 조국 수호를 외치고 있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설명해줄게. 


우리나라에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붙잡아서 재판정에 보내는 검찰이라는 기관이 있는데 이 검찰이 저번에 말했던 조국 법무부 장관과 그의 가족을 강하게 수사하고 있어. 왜 그러냐고? 그건 조 장관의 가족이 범죄행위로 의심될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이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검찰에게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하고 있어. 조 장관을 사퇴시키려는 게 검찰의 진짜 의도라고 말이야. 왜 조 장관을 사퇴시키려 하냐고? 조 장관은 검찰을 개혁하려는 인물이거든. 조 장관이 자기 조직을 수술하려고 집도의를 자처하자 검찰이 저항하고 있다는 거지. 


그런데 홀름아, 검찰이란 조직은 현 문재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노무현, 친문재인 세력과는 악연이 있단다. 검찰은 퇴임한 노무현 대통령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고 그 결과 노 대통령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외쳤던 인물이었지. 이후 친노무현계는 검찰을 겨냥해 칼을 갈아왔고 마침내 문 대통령을 다시 청와대로 보냄으로써 검찰을 개혁할 기회를 잡은 거야. 그리고 문 대통령과 친문세력은 검찰개혁을 수행할 적임자로 조 장관을 지목했어. 눈치 빠른 검찰은 이를 간파하고 조 장관 낙마에 조직의 명운을 걸 수밖에 없었던 거야.


홀름아, 검찰이 지금은 공공의 적 취급을 받지만 사실은 반드시 필요한 곳이란다. 검찰은 범죄혐의를 밝혀서 죄가 있는 사람은 재판정으로, 죄가 없는 사람은 결백을 입증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야. 검찰이 없다면 한편에서는 범죄자가 활개치고, 또 한편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억울하게 고통을 겪어야 한단다. 그런 중요한 기관이 지금처럼 오명을 쓰게 된 것은 검찰이 그동안 보수진영에게 붙어서 2인자 노릇을 하면서 칼잡이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야. 검찰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후 수사권이란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면서 진보진영 인사들을 위협해왔어. 그렇기 때문에 조 장관 수사 역시 보수진영에 충성하던 검찰 본연의 모습이라는 의심을 받는 거란다.


검찰은 왜 그렇게 보수진영에 충성해왔을까? 그건 보수진영이 검찰을 길들이면서도 권력을 유지할 수 있게 허용했기 때문이야. 검찰은 보수진영 내 실권자의 칼잡이 역할을 하면서 검찰조직 자체가 개혁대상이 되는 것을 피했고 그를 통해 막강한 권력을 유지, 확대할 수 있었던 거야. 반면 진보정권인 현 정부는 검경수사권 조정을 추진하는 한편 검찰개혁의 상징인 조 장관까지 앞세우고 있어. 검찰로선 지난 수십년간 휘둘러온 권력이 약화될 위기에 처하자 저항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검찰이 일반 기업 같은 사적 조직이 아니라는 거야. 검찰은 공무원들로 구성된 기관이야. 공무원이란 국민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야. 공무원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지. 공무원이 충성해야할 대상은 국민이지 자기 조직이나 최고 권력자가 아니야. 그런데 지금의 검찰은 마치 자기 조직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무사나 조직폭력배를 연상시키고 있어. 


생각해보면 검찰만 이런 식의 행태를 보이는 게 아니란다. 국가정보원, 기획재정부, 사법부에 있는 공무원들이 모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스스로 권력의 화신이 돼버렸어. 마치 자신들이 일반 시민보다 위에 있는 듯 특권층이 된 것처럼 군림하고 있단다. 군사정권 시절에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공권력의 엄정함을 지금도 외치면서 자신들을 공권력 자체, 신흥 귀족계급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아. 


고시제도가 그들을 엘리트계급으로 만들고 있는 측면이 있어. 어려운 고시를 통과한 공무원들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평생 동안 국가의 녹을 먹으며 특권층의 삶을 누리지. 힘든 일, 더러운 일, 고통스러운 일을 하는 공무원도 일부 있지만 실제로 상당히 많은 공무원들은 편하게 자리에 앉아 권력을 휘두르면서 살고 있어. 십수년만 버티면 웬만한 대기업 수준의 봉급을 챙길 수 있고 퇴직하면 죽을 때까지 공무원 연금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단다. 


하지만 이런 고시제도는 시민 누구나 공직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 즉 공무담임권을 침해하는 측면이 많아. 옛 민주국가 아테네에서는 추첨을 통해 공무원을 뽑을 정도로 공직 문턱이 낮았어.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으로서 일하면서 공익에 입각한 활동을 할 수 있었지.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어려운 고시를 통과해 공무원이 되고 있단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지금의 공무원 조직이 과연 공직자로서 얼마나 공익의식을 갖고 있을까?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이 결국 자기 붕당의 권력 독점을 위해서 일하고 이 과정에서 타 붕당에 속한 선비들을 마구 죽였던 사례가 있단다. 권력을 쥔 엘리트들이 스스로를 위해 힘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공직자가 아닌 폭력조직원이 되는 거란다.


홀름아, 아빠가 일을 하다보면 많은 공무원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마다 앞서 만난 것처럼 국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달과 자기 조직의 권력 확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단다. 어떤 공무원은 기초의회 의원들의 수준이 떨어진다면서 기초의회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더구나. 기초의회가 없어지면 기초지자체는 사각지대에서 전횡을 저지를 수 있는데도 말이야. 이 말은 공무원들 자신들이 견제 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또 어떤 사람한테는 일부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대통령이나 장관의 명령을 아예 따르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들었단다. 대통령과 장관은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고 자신들은 퇴직할 때까지 해당 부처에 있을 사람들이니 굳이 대통령과 장관의 지시를 따를 이유가 없다는 거지. 이는 공무원들이 정부와 정치지도자의 지시조차 따르지 않는 조직이기주의에 물들어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란다.


고위직 공무원들이 너무 많은 돈을 받는 것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할 부분이야. 옛 아테네에서 공무원에게 봉급을 주기 시작한 것은 무료봉사직으로 둘 경우 사람들이 공직을 맡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단다. 당시 공무원 봉급은 공직을 수행하면서 생계를 이어갈 정도였지.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고위직 공무원들은 한달에 500만~600만원이 넘는 돈을 받아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하는 이들에게 고액 연봉을 보장하는 현재의 직업공무원제가 과연 바람직한지 검토할 때가 됐다. 


홀름아, 그래서 앞으로 특정 공무원을 투표로 뽑거나 추첨하는 방식을 적극 도입하는 게 어떨까 생각해본단다. 판사, 검찰, 경찰 등 시민을 상대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소지가 있는 공무원을 투표나 추첨으로 뽑는 것 말이다.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하려면 이 방법이 좋을 것 같다. 공무원이 모셔야할 대상은 국가 자체도, 특정 정치지도자도, 특정 정치세력도, 직속상관도 아닌 바로 함께 살아가는 시민과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깨닫도록 말이야. 


홀름아, 아빠는 홀름이가 나중에 공무원이 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 거란다. 하지만 홀름이가 단지 회사에서 잘리기 싫어서, 연금을 받고 싶어서, 권력을 휘두르고 싶어서 공무원이 되려고 한다면 아빠는 반대할 거다. 그래도 굳이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나라와 우리 사회, 우리 사회에서 힘들게 사는 저소득층,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공무원이 돼야 한다. 홀름아, 지금 우리나라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번지고 있단다. 경기도 북부와 강화도에서 공무원들이 돼지 살처분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은 수많은 돼지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는 고통을 감수하고 있단다. 진정한 의미의 공무원이란 시민을 위해 이런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란다. 홀름아, 그런 공무원이 될 수 있겠니?

작가의 이전글 인지부조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