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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대로 Oct 02. 2019

어벤저스 외전

외계인의 침략으로부터 지구를 지키다



아가야, 오늘은 아빠가 재미난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어느 날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 무서운 외계인 군단이 침략해왔단다. 이 외계인들은 막강한 힘으로 지구 지표면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어. 할 수 없이 인간들은 땅 아래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어. 다행히 외계인들은 지하까지 침략하지는 않았어. 대신 지표면을 완전히 장악해버렸지. 인간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긴 했지만 지하도시에서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곧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갈수록 건강도 나빠졌단다. 식량은 며칠분밖에 남지 않았고 산소탱크도 수를 헤아릴 수 있을 만큼 줄어들었단다. 인간들은 더 이상 외계인들에게 터전을 뺏긴 채 숨어 지낼 순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어. 분노한 군중을 달래다 못한 각 나라 대통령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대책회의를 했단다. 한국 대통령이 말했어. "이대로 가다간 수년 안에 인류는 멸종하고 말거요.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손을 들었어. "상상력을 발휘해봅시다. 인기를 끌었던 영화 어벤저스처럼 뛰어난 인간들을 모아서 외계인에 대항하게 합시다." 


각국 대통령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국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그렇게 실사판 어벤저스가 결성됐어. 아쉽게도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어. 전 세계 격투종목 챔피언들은 물론 각 영역에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엘리트들을 모조리 뽑아서 땅위로 보냈지만 번번이 실패한 거야. 왜 그랬냐고? 어벤저스들은 외계인들의 본부까지는 진입했지만 본부 내부로 들어간 뒤에는 모두 소식이 끊겨 버린 거야. 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육상선수가 한 명 있었지. 그 사람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귀중한 정보를 남겼어. "본부로 들어가면 외계인들이 관문을 여러 개 만들어놨습니다. 이 문들은 모두 인간의 감각으로는 견딜 수 없게 설계가 돼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본부에 그 흔한 경비원조차 두지 않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관문을 뚫을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본 겁니다." 말을 마친 육상선수는 숨을 거뒀지. 


육상선수를 그렇게 떠나보낸 뒤 한동안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있었단다. 인간의 감각으로는 견딜 수 없는 관문들을 차례로 만들어놓은 외계인들이 얄미웠지만 그렇다고 어찌할 도리도 없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중년 남자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단다. 그의 이름은 닉 퓨리. 그가 말했어. "내게 방법이 있소."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쳐다봤지. 미국 대통령이 말했어. "그 방법이 뭐요? 이 잿더미에서 인류를 구해낼 영웅들이 누구요?" 닉 퓨리는 자기 뒤에 있던 세 명을 가리켰어. 그 세 명을 살펴본 사람들은 크게 실망했단다. 세 명은 외양이 볼품없는데다가 장애인이었기 때문이야. 한 명은 아예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다른 한 사람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나머지 한 사람은 극도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정신장애인이었어. 미국 대통령은 코웃음을 쳤어. "말도 안 돼. 그동안 인간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들을 무더기로 보냈는데도 매번 실패했는데 저런 어중이떠중이들을 보내서 무슨 수로 관문을 뚫겠다는 거야?" 닉 퓨리는 표정변화 없이 담담히 말했어. "그동안 내 업적을 생각해서라도 이들을 외계인 본부로 보내주시오. 그 다음은 이들이 알아서 할 것이오." 


그렇게 장애인들은 외계인 본부 앞에 당도했단다. 육상선수의 말대로 본부 보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어. 인간이 아무리 기를 쓰고 덤벼도 관문을 뚫지 못할 것이란 오만함이 엿보였어. 장애인들은 서로를 도와가며 첫 번째 관문으로 다가갔지. 그러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광선이 세 사람을 향해 쏟아졌어. 청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어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고통스러워했어. 반면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멀쩡했어. "이봐, 너희 지금 뭐해? 왜 그러는 거야?" 정신장애인이 공포에 질린 채 답했지. "너는 지금 저 빛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아 참, 너는 시각이 없지. 그래, 너만이 저 문을 뚫을 수 있어." 시각장애인은 쏟아지는 광선을 헤치며 더듬더듬 앞으로 나아갔어. 느리긴 했지만 조금씩 관문으로 다가갔지. 관문으로 가는 길에는 두 눈에 피를 흘린 뒤 죽은 영웅들의 시신이 즐비했지. 마침내 시각장애인은 관문에 도달했고 단추를 눌러 문을 열었단다. 거대한 첫 번째 관문이 열리자 광선이 사라졌어. 청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환호했단다. 이들은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며 본부 안으로 진입했어. 


안도의 시간은 금세 끝났어. 두 번째 관문을 앞두고 인간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끔찍한 소리가 세 사람의 귀를 때리기 시작한 거야. 엄청나게 높고 큰 소리가 끊임없이 귀를 공격하는 바람에 양손으로 있는 힘을 다해 귀를 막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시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귀를 손으로 막은 채 바닥에 나동그라졌어. 반면 청각장애인은 아무렇지도 않았단다. 너도 예상했겠지만 청력을 상실한 청각장애인은 귀를 가리지 않아도 됐어. 청각장애인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어. 그리고 관문을 여는 단추 앞까지 도달했어. 그 부근에도 앞서 도전했던 영웅들의 주검이 여럿 있었단다. 시신을 살펴보니 두 눈에 피가 흥건한데다가 두 귀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어. 저들은 온갖 고통을 견디고 문 앞까지 왔지만 저 위에 있는 단추를 누르기 위해 귀에서 한쪽 손을 떼는 순간 엄청난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게 분명했어. 청각장애인은 죽은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한 뒤 침착하게 단추를 눌렀어. 그러자 거대한 관문에 쿠궁쿠궁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어. 귀를 때리던 소음 역시 금방 잦아들었단다. 저 멀리에서 귀를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 하던 시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소음이 사라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청각장애인을 향해 격한 환호를 보냈어. 


세 사람은 손에 손을 잡고 마지막 세 번째 관문으로 향했단다. 그러다 갑자기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기 시작했어. 외계인이 만들어놓은 세 번째 난관은 심리공격이었던 거야. 외계인은 시각장애인에게는 눈앞이 처음으로 캄캄해지던 무서운 순간을 주입했어. 청각장애인에게는 처음으로 부모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던 끔찍했던 기억을 불어넣었어. 두 사람은 공포에 질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어. 끝 모르게 솟구치는 공포심 때문에 두 사람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단다. 그 때 정신장애인이 재빨리 움직였어. 정신장애인은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이 자해를 하지 못하게 묶어둔 채 세 번째 관문을 매섭게 노려봤지. 외계인은 정신장애인에게도 수없이 많은 공포의 기억을 주입했지만 정신장애인은 끄떡없었어. 정신장애인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많고 많은 공포와 우울, 불안을 견뎌냈고 이제 그 감정들을 어떻게 해소하는지 요령을 깨닫고 있었던 거야. 정신장애인은 엄청난 강도의 심리 공격을 모두 견뎌내고 세 번째 관문으로 달려갔어. 관문 주변에는 마찬가지로 눈과 귀에 피를 흘린 채 죽은 영웅들이 있었단다. 시신의 얼굴은 하나 같이 공포에 질린 끔찍한 표정을 짓고 있었어. 흉측한 시신들을 뒤로 하고 정신장애인은 힘껏 단추를 눌렀어. 관문은 철커덩 소리를 내면서 열렸단다. 


세 번째 관문이 열리자 심리 공격도 잦아들었어.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비틀거렸단다. 정신장애인을 이들을 이끌고 천천히 본부 내부로 걸어갔어. 본부 안은 조용했지. 게다가 원래 외계인들은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 내부는 텅 빈 것처럼 보였어. 본부로 들어온 세 사람에게 외계인이 말을 걸었어. 위엄 있는 목소리였단다. 외계인 대장인 것 같았어. "용케도 여기까지 들어왔구나. 영웅이랍시고 오만방자하게 굴던 놈들 대신 너희들처럼 하자 있는 놈들을 보내다니. 인류의 지혜가 내 예상보다는 뛰어나구나. 하하." 시각장애인이 응수했어. "야, 이 외계인아. 이제 그만 너희들의 본거지로 돌아가라. 지구는 인간과 다른 동식물을 위한 보금자리야." 외계인은 비꼬듯 말했지. "인간의 보금자리라고? 너희들은 그동안 비장애인들로부터 갖은 차별에 시달려놓고도 이 땅이 너희들의 거처라고 생각하느냐? 우리가 떠난다고 해서 비장애인들이 이 지구 땅뙈기 하나라도 너희 장애인에게 양보할 줄 아느냐?" 그 말에 정신장애인은 동요했어. 정신장애인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지. "그래, 그게 사실이긴 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설움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시각장애인도 맞장구쳤어. "앞 못 보는 설움보다 나를 벌레 취급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나를 더 힘들게 했었지." 외계인은 간사하게 웃으며 말했지.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러니 이제 우리를 쓰러뜨리겠다는 생각은 접고 너희들만 우리와 태평성대를 즐기자. 그동안 너희들을 왕따 시키고 괴롭혔던 비장애인들은 저대로 지하에서 죽게 내버려두고 너희는 우리와 함께 즐겁게 지내자고." 시각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은 크게 동요했어. 청각장애인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만 껌뻑거렸지. 외계인은 조종석으로 다가가 해골 모양이 그려진 뚜껑을 열었어. 뚜껑을 열자 조종간 두 개가 모습을 드러냈어. 외계인이 말했지. "자, 이 왼쪽 조종간을 젖히면 핵폭탄이 터져서 그동안 너희를 괴롭혔던 비장애 지구인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수 있다. 이 한 방으로 그동안의 설움을 떨쳐버려!" 정신장애인은 그동안 꿈꿔왔던 일이 막상 눈앞에 닥쳐오자 불안증이 도졌어, 청각장애인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탓에 답답해하며 가슴을 치고 있었단다. 그 때 시각장애인이 분기탱천한 표정으로 조종석 쪽으로 달려가더니 조종간을 힘차게 젖혔어. 정신장애인을 꼬드기는 데 열중하던 외계인은 기겁했어. 시각장애인이 젖힌 것은 지구 정복을 마치고 귀환할 때 조작해야할 오른쪽 조종간이었거든. 몇 초가 흘렀을까. 장애인들이 탑승해있던 외계인 본부는 쿠르르릉 소리를 내며 공중에 떠올랐어. 지구 전 영역에 있던 우주선들도 일사불란하게 이륙했단다.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수천, 수만 대의 우주선들은 광속비행에 돌입하며 자취를 감췄어. 그 모습은 불꽃놀이를 연상시켰어.


수개월째 지표면을 뒤덮었던 기묘한 모양의 우주선이 자취를 감추자 인간들은 고개를 빠끔히 내밀기 시작했단다. 외계인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들은 만세를 불렀어. 감격에 겨워 땅에 입을 맞추는 이들부터 서로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이들까지 한동안 지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어. 그리고 사람들은 지구를 구해낸 장애인 영웅들을 잊지 않았단다. 장애인 어벤저스가 외계인을 쫓아냈다고 굳게 믿은 사람들은 그 후부터 주변의 장애인들을 칭송하기 시작했어. 그동안 핍박받고 멸시를 당했던 장애인들은 지구를 구한 영웅계급으로 떠받들어졌지. 장애인이 되면 그 순간부터 사회는 그들을 특권층으로 인정하고 각종 혜택을 부여하게 됐단다. 


아가야, 얘기 재밌게 들었니? 장애인들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불쌍하다며 동정을 보내지만 사실은 그 사람들도 어떤 영역에서는 비장애인들보다 훨씬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사회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단다. 아가가 자라서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 걔들을 놀리지 말고 아빠가 오늘 들려준 이 이야기를 꼭 떠올리렴. 아가야, 그럼 잘 자고 내일 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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