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보수집회와 검찰개혁
아가야, 요즘 아빠는 서울시청 쪽에서 일하는데 주말과 휴일마다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고 있다.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보수 성향 시민의 대규모 집회가 연이어 열리기 때문이야. 조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뿐만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어서 사실상의 반정부 집회라고 할 수 있어.
최근의 보수집회가 2016년 말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를 연상시킬 정도로 커진 건 문 대통령이 조 장관 임명을 강행했기 때문이란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들은 조 장관 임명 강행을 발판 삼아 문 대통령과 정부 여당을 향해 총공세를 퍼붓고 있어. 보수야당들은 이 분위기를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까지 끌고 가서 승리해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 다음 대통령선거를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려 하고 있단다.
아가야, 이 대목에서 너도 의문스러울 거다. 문 대통령이 이렇게 보수야당에 공세의 빌미를 주면서까지 조 장관을 지키려는 이유 말이다. 그건 문 대통령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집권세력이 검찰개혁을 이 정부의 가장 큰 과제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란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였는데 이 노 전 대통령이 바로 검찰의 표적수사를 받다가 수모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문 대통령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듯해. 아마 그동안 문 대통령은 검찰조직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왔을 거야. 정권의 심각한 위기를 각오하면서까지 검찰개혁 의지를 불태우고 있으니 말이야. 그런 문 대통령인 만큼 자신과 오랫동안 검찰개혁을 구상해온 조국 장관을 차마 내치지 못하는 거지.
아가야, 한국 검찰이 그동안 여러 잘못을 저지른 만큼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란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정부가 검찰개혁을 추진하는 방법이 지나치게 거칠고 서투르다는 점이야. 검찰은 차관급만 50명에 달하는 막강한 조직이라서 웬만한 압력에는 끄떡도 안 한단다. 그리고 수십년 동안 정관계에 그물망 같은 인맥을 형성해 두터운 우호세력을 확보하고 있어. 이런 조직을 무장해제하려 한다면 더 주도면밀해야 하지 않았겠니?
아가야,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실제로 거대 관료조직을 개혁한 사례가 있단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5년을 전후해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져 일본 내 우편, 금융, 보험 관련 민간기업을 압도하는 공룡이 돼버린 일본우정공사를 분할해 민영화하겠다고 밝혔어. 일본 정관계는 물론 재계까지 장악한 우정공사를 민영화하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는 개혁 과정에서 우정공사를 아예 배제한 채 개혁안을 마련했단다. 그리고 거기에 우정민영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다케나카 헤이조라는 교수 출신을 등용했어. 고이즈미 내각의 우정민영화는 한때 반발에 직면했지만, 다케나카 헤이조는 총선에 출마해 보기 좋게 당선되면서 우정민영화를 지지하는 여론이 우세하다는 걸 증명해냈지. 이를 통해 고이즈미 내각은 불가능해보였던 우정민영화를 성공시켰단다.
어쩌면 문 대통령도 조국 장관을 기용하면서 다케나카 헤이조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랐던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기엔 조 장관과 그 가족은 지나치게 약점이 많았다. 다케나카 헤이조는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선에서 승리함으로써 우정민영화의 선봉이 됐지만, 딸의 입학 의혹과 친인척의 비리 의혹 등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조 장관이 과연 검찰개혁이란 과제를 풀어낼 선봉장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야.
세종대왕의 한글 반포 과정 역시 문 대통령과 현 집권세력이 참고해야할 부분이야. 아가야, 네가 태어나면 배우게 될 한글은 오늘날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발명품이자 최대의 개혁이란다. 조선 초기 우리 조상은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로만 글을 쓸 뿐 우리말을 우리 글로 표현하지 못했었지. 그런데 세종은 우리말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문자를 아예 새로 만들어 반포했단다. 정말 대단하지 않니? 하지만 당시 지배계층은 한자 능력을 바탕으로 관리가 된 사대부들이었고 그들은 중국을 우러러보면서 한글을 업신여겼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종은 애써 만든 한글을 묵혀둘 순 없었어. 세종은 사대부들과 타협했단다. 세종은 한글을 한자를 읽기 위한 보조글자 수준으로 여기는 '훈민정음'이라는 명칭을 받아들였고 한글의 전면적인 적용을 포기했지. 그 결과 한글이 반포된 후에도 공문서는 거의 모두 한자로 쓰였고 한글은 서민층을 중심으로 쓰였단다. 요약하자면 세종은 수백년에 걸친 문자개혁을 완성하기 위해 당시 기득권 세력과 타협하는 한편 서민을 포섭해 새 글자의 저변을 넓힌 거란다.
아가야, 그렇다면 검찰개혁에도 세종의 문자개혁을 적용해볼 수 있을지 않겠니? 윤석열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한 기존 검사들을 포섭하는 한편 검찰개혁에 찬성하는 시민을 늘려야 하겠지. 검찰개혁에 찬성하는 유권자를 압도적으로 늘린다면 검찰을 고립시킬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정부는 조국 장관을 지키는 데 집중한 나머지 검찰 편에 서는 시민이 늘어나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어. 최순실 사태 이후 특권층 비리에 극도로 민감해진 국민에게 특권층 비리의 당사자라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을 검찰개혁의 상징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형태야. 이대로 간다면 현 정부는 검찰의 반발을 누그러뜨리지 못할뿐더러 검찰개혁 찬성여론을 확산시키는 데도 성공하지 못할 수 있어.
아가야, 어떤 사람도 성인이 되면 생각과 습관을 바꾸기가 매우 힘든데 하물며 국가와 조직을 개혁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겠니? 그런데 그런 개혁을 하면서 타협과 굴욕을 마다하는 것은 개혁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거야. 기득권을 구워삶는 동시에 다수 국민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기득권을 고립시키는 방법, 그것만이 개혁을 실현하는 길일 거야.
어쩌면 현 정부와 집권세력은 평생을 공격수로만 살아오느라 수비수 역할에 익숙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다. 419혁명, 6월항쟁, 2016년 촛불집회 등에서 늘 공격수로서 정권을 비판하고 대중을 동원하는 입장이었던 현 집권세력은 대중의 집결을 유발하는 아주 작은 사건 하나의 파괴력을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 그들 스스로가 그 작은 사건을 계기로 뭉치고 싸워왔던 것을 까맣게 잊은 듯이 말이다.
아가야, 아빠는 오늘 밤 집으로 오는 길에 화들짝 놀랐단다. 하늘에서 거대한 새 그림자가 휙 지나가는 바람에 오금이 저렸단다. 고개를 들어 어찌된 일인지 봤더니 글쎄 날벌레 하나가 가로등으로 돌진하면서 생긴 그림자였을 뿐이었다. 그걸 보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분기탱천한 몇 사람이 앞뒤 안 가리고 권력에 맞서 돌진하기 시작하면 그 모습은 아까 본 저 그림자처럼 거대한 세력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 말이다. 아가야, 네가 자라서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는 위정자가 된다면 너의 편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너의 적이라도 그들이 분노에 이르지는 않도록 달래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