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오늘은 국정감사라는 행사에서 나온 어떤 말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보자꾸나.
최근 마무리된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장면은 단연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의 '통일한국 수도의 평양 이전' 발언이었다.
경북 경주시가 지역구인 김석기 의원은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서울시 국감에서 서울시 대북교류사업을 문제 삼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또 다른 계획이 있는 것 같다. 통일되면 수도를 평양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냐"고 따졌단다. 이에 박 시장은 발끈했지. 박 시장은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나. 사과해야 한다. 제가 1000만 시민을 대표하는데 그건 예의가 아니다. 상식과 예의에 맞지 않는다"며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먼저 수도를 이전할 권한이 없는 서울시장에게 이 같은 질문한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 질문은 시대 흐름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626년 전인 1393년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개경을 대체할 새 도읍으로 한양을 정한 것은 국가지도자 마음대로 수도를 옮길 수 있는 왕조국가 시대였기 때문이야. 김 의원의 질문은 같은당으로부터도 동의를 얻지 못했어. 같은당 소속인 박순자 국토교통위원장이 김 의원 질문에 "부당한 질문"이란 평을 내놨을 정도야.
하지만 동시에 박 위원장은 "의원들의 질의는 국민의 소리고 요구"라며 김 의원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단다. 김 의원 역시 박 시장과 말다툼하는 내내 "이걸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다"며 자신이 강경 보수 유권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김 의원의 이번 발언은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를 겨냥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단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역구인 경북 경주시, 나아가 전국에 있는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여.
발언 시점도 정치공학적으로는 시의적절한 측면이 있다. 최근 북한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푸대접을 받고 돌아왔다. 게다가 아프리카 돼지열병에 걸린 북한 지역 멧돼지들이 우리쪽 돼지들을 위협해 북한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지. 김 의원은 이 시점에서 색깔론을 제기해 여당 유력 주자인 박 시장은 물론 여당 전체를 곤란에 빠뜨리겠다는 전략을 짰을 것이다.
수차례 고성이 오간 우발적인 사건 수준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김 의원의 이번 질문에는 적잖은 시사점이 있다. 평양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 그리고 평양을 둘러싼 우리 정치세력들의 오래된 갈등관계를 생각하면 김 의원의 질문은 그저 웃고 넘길 만한 수준은 아니다.
고려시대에 평양은 '서경'으로 불렸다. 고려 중엽에 서경은 정치적 주도권 싸움의 주 무대였다. 12세기 초반 고려 인종 당시는 중국에서 북방 유목민족 국가간 세력교체가 벌어지고 국내에서는 이자겸의 난이 발생하는 등 내우외환이 심했던 시기다. 서경 출신 승려인 묘청은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김으로써 국운을 회복시키고, 고려왕이 스스로 황제를 칭하며, 나아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를 공격해 중국대륙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이 바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란다.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는 서경천도운동은 실패했다. 개경에 근거지를 둔 경주 김씨 김부식 등 개경파 문벌귀족은 천도를 좌절시켰고 묘청 등 서경천도파(북진파)는 반란 끝에 몰락했다. 사학자 신채호는 "조선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첫번째 사건"으로 표현할 만큼 이는 민족사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김부식 중심 개경파와 묘청 중심 서경천도파의 대립 구도는 오늘날 국내 정치현실과 묘하게 닮아있다. 귀족을 중심으로 뭉친 사대주의 기득권 세력과 자주노선을 주장하는 신진 세력의 투쟁은 오늘날 형태만 다소 바뀌었을 뿐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수진영은 한미동맹 강화를 철칙으로 삼고 북한과의 통일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은 상대적으로 미국과 거리를 두면서 북한과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김석기 의원의 평양 수도 이전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어쩌면 김 의원은 서경천도운동과 같은 결말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 시장과 현 여권을 서경천도파와 같은 반란세력 내지 체제위협세력으로 규정하고 고립시키는 것이 김 의원의 본래 의도일 거야.
게다가 김 의원은 서울지방경찰청장 출신으로 용산참사의 책임자로 지목돼 진보진영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아온 인물이다. 김 의원으로선 정적인 박 시장과 현 여권을 저격해야할 이유가 충분하다. 아울러 김 의원은 조국대전 국면에서 황교안 대표를 따라 삭발을 감행할 정도로 군기가 바짝 든 초선이다. 재선을 위해서는 이보다 더 한 발언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고려시대가 아니다. 정치세력끼리 벌이는 권력다툼만으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뒤바뀌는 시대는 이미 저물었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실질적 민주주의로,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직접민주주의로 나아가는 현 시점에서 대중은 더이상 선동이나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를 일으키는 주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직접민주주의로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일들은 최근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벌어졌다. 광화문에서는 보수세력 집회가, 서초동에서는 진보세력 집회가 열렸다. 대규모 집회를 통한 민의 표출은 그간 진보세력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이제 보수세력도 대규모 집회에 거부감이 없다. 집회 참여인원을 둘러싼 양측의 공방은 국회에서 벌어지는 표 대결을 방불케 한다. 시민이 직접 의견을 표출했던 고대그리스식 직접민주주의가 싹 트는 증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도 이전 문제는 더 이상 국회나 국감장에서 벌이는 고위인사들간 말싸움 수준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 국민도 이제는 막말을 활용한 자극적 선동과 속 보이는 선거전략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과거처럼 수도 이전 문제가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그리고 통일한국의 수도를 옮기는 문제야말로 국회라는 공간을 넘어 우리 국민, 나아가 통일한국의 전체 국민이 심사숙고해서 판단해야 할 사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