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홀수 Oct 14. 2020

그 공간이 '툭'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한 개인의 소소한 공간 연대기_03화 


내 머릿속에 자리한 공간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었다. 요즘 말로는 ‘넘사벽’. 나와는 상관없는, 특정한 사람만이 향유할 수 있는, 그저 나는 뒤쪽에 서서 눈으로만 공간을 보고 만족해야 했다. 공간의 주체는 될 수 없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단정 지어 놓은 것이었다. 


나만의 개성이 담긴 공간을 늘 꿈꾸어 왔지만 현실에서 그런 공간은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었다. 공간에 대한 동경, 공간을 향유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이라는 생각에 막상 기회가 왔을 때 꿈꾸어 왔던 공간을 실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공간에 대한 짝사랑만 키운 격이었다. 나만의 취향이 살아있는 공간을 제대로 가진 적도 없었고, 그런 공간을 꾸민 경험도 없었다. 그러므로 잡지에 나오는 멋진 집은 그들만의 전유물이었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내게 용기를 불어넣은 공간이 나타났다. 갤러리 ‘우물’이었다. 친구의 초대로 2017년 3월 서촌에 있는 우물에 갔다. 처음 문을 연 순간 ‘그래 여기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한옥 갤러리 우물, 그곳은 내가 꿈꾸던 공간과 닮아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 사람의 마음 저 밑바닥에 감춰져 있는 감성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공간이 ‘툭’ 나의 마음을 건드렸다. 

 

사실 지금까지는 공간에 대한 꿈만 꿨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꿈만 꾸고 말기에는 그 공간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그곳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갤러리였다. 나는 예술가도 아닌데….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밤 밤새 뒤척였다. 다음날 아침 ‘기획’을 시작했다. 갤러리 우물에서 무엇인가 펼쳐내고 싶은 ‘나’를 위해. 

 

‘그래 전시를 하자, 나 편집자이면서 기획자잖아, 그곳에 내가 만든 포트폴리오를 다 모아 보자. 마침 오랫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둔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축하 세리머니를 그곳에서 하는 거야, 그래 내가 나를 축하해 주자, 내가 원하는 공간에서….’ 


이런 생각을 갖고 나는 갤러리 우물 관장을 만나 내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와 전시에 대한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대답은 ‘예스’. 갤러리 일정이 비어 있는 8월 말을 디데이로 전시 일정을 잡았다.  

 

전시 일정이 확정된 뒤 그동안 간직해 온 작업물을 모아봤다. 잡지의 로고가 새겨진 원고지, 촬영계획서, 잡지, 기획노트, 내가 만들었던 기업의 브로슈어와 애뉴얼 리포트, 디자인 시안, 간간이 취미로 찍은 슬라이드 필름과 사진, 국어사전, 기획 노트, 취재 노트 등 소소한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나는 공간을 나누고 각 공간마다 편집자, 기획자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글을 썼다. 그리고 그 글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출판 오브제들을 전시했다. 전시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갤러리 우물 관장은 현장에서의 경험을 살려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그의 도움으로 4일 동안의 전시는 무사히 끝났다. 


남들이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작업을 한 뒤 나는 훌쩍 더 성장한 기분이었다. 전시를 기점으로 ‘종이’에만 머물던 나의 사고 영역은 입체적 공간으로까지 확장됐다. 전시 이후부터 공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넘사벽의 공간에서 실현 가능한 공간으로, 뒤편에 서서 바라만 보았던 공간에서 스스로 기획하는 공간으로, 공간 안으로 성큼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후 공간에 대한 생각은 쭉쭉 뻗어나갔다.   

 


전시를 기점으로 '종이'에만 머물던 나의 사고 영역은 입체적 공간으로까지 확장됐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간에 대한 짝사랑만 키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