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인의 소소한 공간 연대기_04화
여행하면서 모은 세계 각 국의 머그컵이 있고, 넓고 폭이 긴 책상과 책이 있는 공간, 밥을 먹고 책을 읽으며, 요리도 하면서 잠도 잘 수 있는 공간,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오가는 공간, 유명 작가의 그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의 오리지널 그림을 볼 수 있는 공간, 모든 것으로부터의 단절을 선언하고 하루나 이틀 세상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공간, 집을 떠난 여행자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또 하나 어머니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이전 살던 집도 좋았지만 좀 더 쾌적하고 넓은 집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으면 했다. 이런 공간을 실현하기에 23평 아파트는 무리가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의 리모델링은 쉽지 않았고, 또 하나는 공간적 한계가 있었다. 지금보다 조금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를 꾀해야 했다. 새로운 집을 얻어야 했다.
사실은 어머니를 우리 집 옆으로 모셔왔으면 해서 집이 팔리기 전부터 과천에 집을 알아봤다. 아파트 가격은 엄두도 나지 않게 비쌌다. 전세 역시 지금 사는 집을 팔아도 턱없이 부족했다. 차선책으로 과천에 있는 빌라를 전세로 알아봤다. 전세 가격은 5~6억 선. 돈은 어떻게 마련한다 해도 2년마다 전세를 갱신해야 되고 거처를 옮겨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여든이 넘은 어머니에게 무엇보다 주거는 안정적이어야 했다. 다시 턴. 현재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 가격을 알아봤다. 서울 중심 가까이 있지만 저평가된 곳, 1천 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이지만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는 곳, 게다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여서 인지 과천 전세 가격으로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처음에 32평을 생각했지만 공간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때 남편이 던진 한마디
“이왕 옮길 것, 제일 큰 데로 가자”
이 단지에서 제일 큰 평수를 우리가? 턱도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안 될 이유도 없었다. 가격을 알아보니 23평을 팔고 조금 무리를 하면 가능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이 팔린 지 하루 만에 인터넷 검색으로 가장 저렴한 집을 고른 다음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 남편과 함께 집을 보러 갔다.
집은 나쁘지 않았다. 예전 집처럼 북한산이 시원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향에 로열층, 그리고 거실과 부엌 바닥이 마루였다. 어차피 수리를 할 것이니 꼼꼼히 이것저것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래, 이 집으로 결정!’
나는 호기롭게 구두 계약을 하고 집을 본 지 세 시간 만에 계약금을 보냈다.
우리가 이사를 가는 날은 2월 14일, 들어가는 날은 3월 중순, 약 한 달 간의 갭이 생겼다. 한 달 동안 어머니는 기장에 있는 이모 집에 머물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핀터레스트에 인테리어 관련 폴더를 만들고 이사 갈 집의 리모델링에 집중했다. 겨울은 생각보다 금방 지나갔다.
리모델링을 전체적으로 맡길 인테리어 업체는 23평 때 부분 인테리어를 맡긴 곳으로 정했다. 3월 10일 잔금을 치르고 남편과 집을 보러 갔다. 사람과 짐이 빠져나간 집은 황량했다. 생각보다 집 상태가 심각했다. 계약을 할 때는 싱크대는 ‘써도 되겠다’고 생각했는 데 쓰기에는 낡았고,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커다란 부엌 창문을 싱크대 상부장으로 가려 놓은 것이었다. 측면 공간은 붙박이장으로 꽉 차 냉장고가 붙박이장에 갇힌 양 숨이 턱턱 막혔다.
화장실도 예산을 고려 한 개만 고치고, 한 개는 어떻게 써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보니 두 개 모두 손을 봐야 했다. 이래저래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삿날은 3월 26일로 정했다. 인테리어 업체 일정으로 공사는 2~3일 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그동안 정리한 인테리어 관련 자료와 사진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보았다. 자료를 보고 있으니 내가 알지 못한 취향이 조금씩 드러났다. 핀터레스트에서 내가 고른 욕실 거울은 모두 원형이었다. 그것도 크지 않은. 그렇게 나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취향을 하나씩 알아 가면서 리모델링을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