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7.5, 인천공항
눈 앞에 보이는 세상의 한가운데가 미세하게 움푹 패여버려서, 나는 하마터면 자연의 법칙이 순간적으로 살짝 달라진 것이라고 믿을 뻔했다.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10년 넘게 착용한 소프트렌즈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새로 맞춘 하드렌즈를 착용했을 때였다. 평소 같았으면 평평하게 보였을 스마트폰 화면이 가운데만 오목하게 패여들어가 있었다. 깜짝 놀라 눈을 깜빡이니, 이상한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나의 시각이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라고 해서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그리고 인간의 감각은 또 얼마나 허약한지.
나는 애초에 내가 믿는 것들이 진리일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맹목적인 태도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맹목은 맑고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선물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수하던 시절의 내가 지니고 있던 어떠한 믿음들이 관성처럼 나의 몸에 붙어서, 머리로는 거부하는데도 나의 선택들에 영향을 미치곤 한다. 누구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어른스럽지 못한 꿈들과 어줍잖은 사명감 같은 것들이 가끔씩 방심한 순간 튀어나오는 것이다.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많이 생각했다. 인간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늘어가는 회의감이 단순한 패배의식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 4년의 대학생활과 비슷한 기간의 직장생활 끝에 비관론자 비슷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나는 내가 놓아버린 순수하던 시절의 삶의 이유가 그다지 건강하지 않은 욕심이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기 시작했다.
다수의 기준에서 중요한 것이 아닌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찾기 시작하면서 찾아온 변화에 나는 아주 만족하는 중이었다. 타인들에겐 바보같아 보일 수 있는 선택을 나 스스로를 위해 해냈다는 사실이 나의 불안한 자아를 단단하게 다져주고 있었다.
다만 이것이 생존 걱정 없는 배부른 사람이나 하는 철없는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누군가를 만날 때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고 겸손해져서, 산다는 것에 대해 한 차원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 그제야 세상 사람들이 그저 '남들'이 아닌, 각자의 지도를 지닌 개별적인 인물들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은 핑계같지만 일상의 이야기만으로는 내 삶을 온전히 채울 수 없다는 갈증이 느껴져서 나는 또 짐을 꾸렸다. 인간의 정신에 가장 효과적으로 내적, 외적 팽창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세 가지 요소가 책, 사랑 그리고 여행이라고 생각하는데, 여행은 이 세 가지 요소 모두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게 하기에.
내 생에 존재했던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길을 잃고, 사랑하고, 읽고, 깨지고, 잃어버리고, 실망하고, 기뻐하고, 울고, 환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