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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Jul 28. 2017

새벽의 대성당

2017.7.23-25, 독일 쾰른


일어나보니 새벽 6시였다.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난 덕에 깨끗한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구름이 많아 하늘의 색깔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청소부와 빵집 점원 같은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가득한 쾰른 대성당 앞은 색다른 풍경을 자아냈다. 아무도 없는 풍경을 보고 싶거든, 새벽에 움직여라. 역시 어디서나 통하는 여행의 법칙이었다.

쾰른 대성당을 대부분 비가 오거나 흐린 구름 속에서 보았기에, 이날 새벽에 비가 왔는지 아닌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산 너머로 쾰른 대성당의 꼭대기를 바라볼 때 눈에 들어올듯 쏟아지는 빗방울과 빗방울의 날카로움만큼이나 뾰족하게 하늘을 향해 치솟은 쾰른 대성당의 첨탑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서로 다른 방향의 선들을 하나로 이어가며 오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늘로부터 자연의 이치인 중력에 순응하며 떨어지는 빗방울과, 땅에서 하늘로 치솟고자 하는 바벨탑의 욕망이 만나 이루는 경계.



그러나 바벨탑을 세우고자 했던 사람들 - 괴테를 비롯해 - 의 욕망의 결과물은, 제2차세계대전이라는 더 커다란 욕망의 자멸과 함께 파괴되었다. 쾰른 대성당 역시 약 70%가 전쟁에 의해 무너졌는데, 독일 사람들은 쾰른 대성당의 복원을 무너진 자신들의 삶을 재건하기 위한 희망의 상징 같은 것으로 보았다고 누군가가 적어놓은 것을 보았다. 그러니 대성당은 한때는 신에게 닿고자 했던 인간들의 욕망이었으나 이제는 무너졌고, 그 욕망의 잔해 위에 신이 내려주는 비가 은총처럼 대지를 적시는 셈이 된 것이다.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아직도 재건중인 이 오묘한 공간은 새벽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관광객과 역을 통해 어디론가 가고자 하는 사람들로 가득찬다. 쾰른 대성당 바로 옆에는 쾰른 중앙역이 위치해있는데, 이 역은 한때 독일 교통의 중심이라 불리며 유럽 전역으로 사람들을 실어나르곤 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통해 오가는데 그 가운데는 아시아를 제외한 전세계의 인종들이 섞여있다. 전세계 다른 관광지에 비해 극도로 아시아인들의 비율이 적고, 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중동 지역에서 온 난민과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들이 많다.
 


숙소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오마르는 나에게 이름을 물으며 독일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물었다. 전혀 모른다는 나의 대답에, 영어를 못 하는 그와 그의 친구들은 구글 번역기를 켜서 대화를 시도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말에 조금은 긴장해 굳어있던 나와 달리, 그들은 정말 호기심이 가득한 눈망울로 이런저런 질문들을 했고, 내 이름을 페르디쉬로 적어줄 수 있냐는 나의 부탁에 오마르는 내 이름을 예쁘게 수첩에 적어주었다. 내가 오마르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주자 그들은 다 함께 "오!" 라고 외치며 즐거워했다.

쾰른 대성당을 중심으로는 수많은 노천 카페와 식당들이 쾰른 맥주인 '쾰쉬' 브랜드를 내걸고 있다. 쾰른 맥주에 대한 쾰쉬들의 자부심은 꽤 커서, 그저 관광객들을 위해 맥주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도 맥주를 마실 때 무조건 쾰른 맥주를 마신다. 독일에는 다른 좋은 맥주가 많지만 다른 유명 맥주는 메뉴판에조차 오르지 못한다.


호스텔에서 추천받은, 라이브 재즈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작은 바에 갔을 때였다. 커스틴 던스트를 닮은 단발의 금발 여성이 적어도 열 살은 많아보이는 남자와 함께 바에 들어왔다. 병맥주를 시킨 남자와 달리 여자는 바텐더에게 이것저것 맥주에 대해 물어봤고, 바텐더는 한번 마셔보라며 탭에서 맥주를 조금 따라 여자에게 건넸다. 여자는 와인을 음미하듯 맥주 맛을 감상하더니 바텐더에게 잔을 채워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맥주를 두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속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와이파이가 있냐는 나의 질문을 바텐더는 '화이트 와인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알아듣고 와인을 주려 했다. 아니, 와이파이가 있냐는 질문이었다고 답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 쏘리. 올드 스쿨."


배터리도 떨어져가고, 와이파이도 안 돼서 숙소로 돌아가기가 막막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계획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움에 골목을 돌아보며 나오는 길,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작은 무지개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무언가 뜻대로 안된다 싶어 슬퍼지려 할때쯤 웃어야만 할 이유를 주는 이 도시에서 나는 적당히 외로웠고 적당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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