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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ly Frege Sep 11. 2017

2019.09.06(새벽)

중남미.

fb에서 예전에 알던, 아니면 다리 건너 알던 사람의 근황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들 저렇게 나름 역할을 하며

사는구나... 나는 이렇게 멈춰서있는데...ㅠㅠ


김성훈 교수가 네이버로 간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성훈 교수와 직접적인 인연은 없다. 제주에 내려왔을 때 얼굴을 보자고 했는데, 소심한 나는 볼 수 없었다. 사람 만나기를 극히 꺼려하던 폐인이었으니까. LG에 있었을 때 젊고 야심 있는 후배가 퇴사를 했다. 그를 만나서 유학을 가라 했고, 대학원 선택에 있어서 경제적인 이유로 홍콩과기대의 김성훈 교수와 contact 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그는 물론 나중에 콜로라도 주립대로 갔지만... 홍콩과기대는 그래픽스에서 나름 유명한 신생 명문학교다. 흔히 보는 siggraph에 간간히 멋진 논문을 내는 학교다. 나도 그래픽스를 전공했거나 관심이 있었다면, 가고 싶은 학교다. 물론 김성훈 교수의 전공은 그건 아니다. 여하튼.. 구글이 아닌 네이버라니...


그리고 박정훈기자... 책을 냈다. 이 사람을 얘기하려면 내 얘기도 해야 한다.

나는 20대부터 자살을 꿈꿨다. 너무 살기 싫었다. 엄마가 죽고 난 후 자살시도, 미국에서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 죽는 고통이 싫어서 자살은 실패했다. 나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보면  뛰려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그걸 하지 못하게 하는 발.. 발이 심하게 떨린다. 난 이런 충동을 잠재우려, 새롭고 흥미 있는 일에 매진하려 애쓴다. 자살은 무기력할 때 일어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depression. 이걸 없애는 건 옆에 말동무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무언가에 꽂혀 열정적이 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 무기력할 때... 난 미국에서 손을 그었다. 룸메가 보고 대학 hospital로 긴급 후송되었고, 나는 학교 보험으로 정신과를 다녔다. 교수와 상의해서 homesick으로 1년간 leave of absence를 받았다. 그사이 나를 꽂히게 만든 건 중남미였다. chile of battle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고, 박정훈 기자의  Marcos 관련 연재기사를 읽으면서, 난 San christobal로 무작정 떠났다. 그러나.. 스페인어를 못하면 너무 힘들다. 다시 미국으로 왔다. Jed라는 친구의 멕시코 여행을 간다는 말에 같이 가기로 한다. 그때 멕시코 여행을 잊지 못한다. san christobal로 다시 가 게릴라들을 만났고, 기자라는. 거짓말로 Marcos와 인터뷰도 시도했다.  그들의 거주지인 snail에서 자원봉사도 하려 했다. 많은 곡절 끝이 있었다. 여하튼 난 멕시코부터 따로 여행을 한다.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다시 혼자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여행이 아니다. 난 돈이 없었다. 그냥 살았다. 대합실, 가스 스테이션에서 노숙을 했고, 막일, 버스 운전 등을 하면서 잠과 먹을 것을 얻어먹었다. 많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여하튼... 얘기하려면 책 한 권이다. 난 제주에서 soul mate를 만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중남미로 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돼야 한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해야 하고,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는 돈이 되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막일, plumbing, 전기, 프로그래, 그림, 연주..... 전문가? 웃기고 있네.. 난 모든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돈을 벌고 여자에게 무책임하게 일만 벌이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보여주고 싶다. 세상은 넓다라는 것을... 능력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고, 많은 것도 볼 수 있다고...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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