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선반의 B6, 조용한 위험

“수용성이라 안전하다”는 믿음이 신경을 건드릴 수 있다는 보고들

by 전의혁

“그냥 비타민이잖아요.”


약국 진열대 앞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손바닥만 한 병을 쥐고, ‘신경에 좋다’는 광고 문구를 다시 읽는 얼굴이 잠깐 안심해 보인다.


그건 무지함이 아니라, ‘일반의약품이면 무해하다’는 믿음에 가깝다.
나도 한때는 수용성 비타민은 남는 만큼 배설된다고만 배웠다.
혹시 당신도 B6는 물에 녹으니 괜찮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


20260116 _ 비타민B6 과다복용, 신경병증 경고와 규제 논쟁 _ 2.png


하지만 호주는 2027년부터 비타민 B6(피리독신, pyridoxine) 함유 보충제 규제를 크게 강화한다.
B6가 50mg을 넘는 제품은 약국에서만, 200mg을 넘으면 처방이 필요해진다.
장기간 고용량 보충 뒤 감각운동성 다발신경병증(감각과 운동 신경이 함께 영향을 받는 다발신경 손상)이 보고돼 왔기 때문이다.


‘무증상’이라는 말은 ‘안전’과 같은 뜻이 아니다.


독일에서도 비슷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경과 한스-위르겐 그드니아 박사는 일반의약품(OTC)으로 살 수 있는 제품에 제한이 바람직하다고 했고, 많은 사람이 “OTC면 무해하다”고 동일시하는 건 착각이라고 말했다.


규제보다 먼저 바뀐 건 ‘권고치’였다.


독일 연방 위해평가연구소(BfR)는 성인과 15세 이상 청소년이 보충제로 섭취하는 B6를 하루 0.9mg 이하로 권고해 왔다.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2023년에 성인의 ‘허용 가능한 총 1일 섭취량’을 25mg/일에서 12mg/일로 낮췄고, 그 이상은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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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시장에는 정제 1개당 25~50mg이 들어 있는 제품이 여전히 많다.
단일 성분뿐 아니라 고용량 B-콤플렉스의 구성 성분으로도 흔하고, 영유아와 학령전기 아동용 보충제 조사에서도 참고값이나 상한을 여러 배 넘는 함량이 관찰됐다고 했다.
여러 제품을 함께 먹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총 섭취량이 ‘고용량’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게 임상의들의 걱정이었다.


비타민 B6의 신경독성은 오래전부터 알려져 왔다.
1983년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은 만성 고용량 피리독신 사용으로 감각신경병증을 보고했고, 보충제를 중단하면 흔히 호전된다고 밝혔다.
올해 독일신경학회 학술대회에서는 B6 과다비타민증(과잉 섭취 상태)으로 다발신경병증이 생긴 환자 8명의 증례 연속이 발표됐는데, 그드니아는 “4년 동안 우리 클리닉에 온 사례만”이라며 생각보다 드물지 않다고 말했다.


중등도 용량도 ‘오래’ 가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호주에서는 규제 결정 이전 B6 유발 다발신경병증이 약 250건 보고됐고, 대다수는 장기간 100~200mg/일 또는 그 이상을 복용한 사람들이었다.
멜버른 대학교의 피터 크랙(Peter Crack)은 매우 높은 용량에서는 만성 노출자의 약 1%~4%에서 다발신경병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고, 수개월~수년에 걸쳐 50mg/일 같은 “중등도이지만 지속적인 섭취”도 감수성이 있는 개인에서 감각신경병증과 연관돼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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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드니아는 다발신경병증 평가에서 B6 수치를 “항상” 확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보충제 복용을 구체적으로 묻지 않거나, 원인 불명 신경병증에서 B6 측정을 하지 않아 놓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손상이 너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면, 제제를 중단한 뒤 서서히 호전되는 ‘가역적’ 가능성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오늘 내가 제안할 수 있는 건 아주 작다.
집에 있는 B-콤플렉스와 B6 제품의 함량(mg)을 한 번만 보고, 여러 제품을 함께 먹고 있다면 총량이 얼마나 되는지 조용히 계산해 보는 것.
그리고 저림, 감각 이상 같은 신경 증상이 있거나 고용량을 오래 복용해 왔다면, 복용을 스스로 결론 내리기보다 의료진이나 약사와 함께 점검하는 편이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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