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카운터에서 비만의 곡선을 본다

WHO가 GLP-1을 ‘조건부’로 껴안은 이유

by 전의혁

살이 붙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내 탓’이 된다.


점심이 끝난 뒤, 약국 카운터 위에 처방전이 몇 장 겹쳐졌다. 종이 끝이 손끝을 스치고, 나는 무심코 체중과 혈압 수치를 같은 줄에서 훑었다. 누군가는 말을 아꼈고, 나는 설명을 더 조심하게 됐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낙인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몸무게가 숫자로만 남는 순간에 더 심했다. 혹시 당신도 “조금만 덜 먹고 더 움직이면 되잖아”라는 말 앞에서 작아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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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 넘게 전 세계 비만율은 실망스러운 방향으로만 움직여 왔다. 1990년부터 2022년 사이, 전 세계 비만 유병률은 2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3년 전 약 40%에 가까운 최고 기록 이후 흐름이 바뀌어, 2025년 비만율이 37%로 내려갔고 추정치로 760만 명이 줄었다고 한다.


그 시점은 GLP-1 수용체 작용제 사용이 눈에 띄게 늘어난 때와 겹친다. 세마글루티드(위고비), 티르제파타이드(젭바운드) 같은 약들이 ‘비만 치료’로 승인되면서, 진료실의 대화도 달라졌다. “곡선을 꺾기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워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구호가 아니라 숙제가 됐다.


비만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하고 재발하는 만성 질환이다.


WHO는 비만 치료에서 GLP-1 약물과 GIP/GLP-1 이중 작용제의 사용에 관한 첫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그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을 대표 해법처럼 강조해 왔던 WHO가, 이제는 조건부로 GLP-1 사용을 지지한다는 점이 “획기적 변화”로 표현됐다.


가이드라인은 비만을 “복잡하고, 재발하는, 만성 질환”으로 규정하고 평생 관리가 필요하다고 못 박는다.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약을 끊으면 다시 악화될 수 있는 범주에 공식적으로 올려놓겠다는 뜻이다. 유전, 행동, 생물학적·대사적 요인, 사회적 환경까지 원인이 넓게 얽혀 있다고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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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내가 가장 크게 고개를 끄덕인 문장은 ‘낙인’이었다. 혈압이 조금 높다는 말은 견디면서, 4.5kg 과체중은 왜 그렇게 쉽게 본인 책임이 되는지. WHO는 더 이른 진단, 동반질환 평가, 행동 변화와 약물치료 또는 수술까지 이어지는 개입을 이야기하며 참여를 끌어올리려 한다.


하지만 권고는 분명히 ‘조건부’다. 임신부를 제외한 성인에게 장기 치료로 GLP-1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처방을 받은 사람에게 집중적 행동 중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유효성은 분명하다고 하면서도, 장기 데이터는 제한적이고 근거 확실성이 낮은 부분이 있다고 적었다.


GLP-1은 마법의 총알이 아니다.


장기 안전성은 아직 “결론이 불분명”하다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오심, 구토, 설사 같은 위장관 문제와 함께 급성 췌장염, 비동맥염성 전부 허혈성 시신경병증의 잠재적 위험도 언급됐다. “향후 10년 안에 수억 명이 복용한다면” 드문 이상반응도 절대 수로는 커질 수 있다는 경고도 있었다.


그래서 WHO는 약을 단독 해결책이 아니라 포괄적 전략의 일부로 둔다. 약물요법, 건강한 식단과 신체활동에 초점을 둔 행동 지원, 장기 추적을 묶고 ‘다중 양상 임상 알고리즘’을 제안한다. 목표 설정, 에너지 섭취 제한, 상담 세션 같은 구조화된 중재가 포함된다. 반대로 효과가 거의 없거나 없는 것으로 확인된 식사 대체나 선행 단계 같은 병행 중재는 권고하지 않았다.


현실은 더 까다롭다. 일차의료에서 행동과 생활습관을 쉽게 다룰 시스템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약만 처방하고 끝내는 구조라면, 약이 아무리 좋아도 오래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형평한 접근성이 없으면, 곡선은 다시 오른다.


WHO는 가격과 공급, 시스템을 함께 본다. 2024년 미국에서 비만 진단을 받은 사람 중 GLP-1 사용은 5% 미만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가격을 낮추는 정책 수단과 시장 요인을 강조했고, 노보 노디스크가 11월에 위고비·오젬픽의 본인 부담 가격을 월 499달러에서 349달러로 내렸다는 사례도 언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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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급 부족과 생산 역량 제한이 계속 걸림돌이고, “현재 역량으로는 필요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 중 10% 미만만 커버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공동 구매, 현지 생산, 강제실시 같은 전략이 거론된다. 콜드체인이나 주사 전달이 어려운 지역에서는 경구 제형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있고, ‘하루 1회 위고비 알약’ 같은 경구용 GLP-1의 안전성·실행 가능성·효과는 앞으로 지침 업데이트에 포함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속 가능성은 또 다른 질문이다. 시작한 사람 중 절반 이상이 1년 안에 중단할 수 있고, 치료를 끝내면 체중이 다시 늘어나는 경우가 흔하다고 WHO는 지적한다. 유지 용량처럼 더 낮은 용량이나 빈도로 체중을 지키는 방법이 논의되지만, 모든 사람이 평생 GLP-1이 필요한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말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잠재력은 “아직 다 펼쳐지지 않았다”고 한다. 비만 관련 합병증에 대한 영향 근거는 초기 단계라 지침에 다 담기지 못했고, 예로 대사 기능 이상 연관 지방간 질환이 언급됐다. 한 임상시험에서는 거의 4년에 걸친 치료로 당뇨병 전단계에서 당뇨병으로의 진행이 94% 감소했다는 수치도 소개됐다.


나는 오늘 카운터에서, 질문을 하나만 더 붙여보기로 했다.
“약만으로 끝내지 말고, 같이 갈 수 있는 계획이 있나요?”


복용 시작이나 중단, 용량 조정은 개인의 상태와 동반질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의료진과 상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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