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돌봄이 노화하는 뇌에 ‘완충’이 될 수 있다는 연구가 시사한 것
문 앞에서 신발을 신겨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현관 바닥에 앉아 작은 운동화를 잡는다.
끈을 당기면 손끝에 고무 냄새가 묻는다.
아이는 “할머니, 빨리”라고 말한다.
나는 웃다가 잠깐 호흡을 고른다.
오늘 내가 기억해야 할 건 약 시간만이 아니다.
이 작은 하루의 순서까지도 그렇다.
그건 단순한 손주 돌봄이 아니다.
뇌가 깨어 있도록 붙잡히는 시간에 더 가깝다.
나도 그 감각을 안다.
특히 “오늘은 뭐 했더라”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맴도는 날.
아이의 질문이 나를 현재로 끌어당긴다.
손주가 축복이라는 말은 흔하다.
그런데 한 연구는 그 ‘축복’을 조금 더 구체적인 언어로 옮겼다.
1월 26일, 저널 ‘심리학과 노화’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부모로서 손주를 돌보는 경험은 인지 기능과 연관이 있었고,
인지 저하에 대한 ‘완충’ 가능성을 시사했다.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는 기억과 언어 검사에서 점수가 더 높게 나타났다.
이 한 줄이 묘하게 현실적이다.
삶은 거창한 퍼즐이 아니라,
단어를 떠올리고 문장을 이어 붙이는 힘으로 굴러가니까.
이번 결과는 할머니에서 더 두드러졌다.
연구진에 따르면 손주를 돌본 할머니들은
인지 검사에서 감소 폭이 더 적게 관찰됐다.
손주에게 “그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시간.
단어를 찾고, 설명을 고르고, 다시 풀어내는 시간.
그 과정이 내 뇌를 조용히 쓰게 만드는 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얼마나 자주’가 전부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지난 1년 동안 어느 시점에서든 돌봄을 제공한 조부모는
전반적으로 더 나은 인지 점수와 연결되는 경향이 보였다.
네덜란드 틸뷔르흐 대학교의
심리학 박사과정생인 수석 연구자 플라비아 체레케스는,
돌봄의 빈도나 세부 활동보다
“돌봄을 제공하는 조부모로서의 경험” 자체가 더 중요해 보였다고 말했다.
나는 이 대목에서 ‘횟수’에 매달리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한 주에 몇 번, 몇 시간, 얼마나 완벽하게.
그 계산이 돌봄을 더 무겁게 만들 때가 있으니까.
연구는 영국의 장기 노화 연구에 참여한
약 2,900명의 조부모 자료를 분석했다.
참가자 평균 연령은 67세였다.
참가자들은 설문에 답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2022년 사이, 총 3차례 인지 검사를 받았다.
설문은 지난 1년 동안 손주를 돌본 적이 있는지,
얼마나 자주였는지, 주로 무엇을 했는지를 물었다.
큰 그림에서는 ‘돌봄 경험’ 자체가 중요해 보였다.
다만 활동 유형에 따라 차이가 관찰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여가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숙제 도와주기를 더 자주 한 경우는
언어 능력과 기억 능력 점수와 연결되는 경향이 있었다.
손주를 위해 정기적으로 식사를 준비하거나,
등하교를 도와준 조부모는
언어 유창성이 더 좋은 경향을 보였다.
내가 손주 도시락을 싸며 “이건 어느 칸에 넣을까”를 중얼거리는 시간.
학교 앞에서 “가방 챙겼지”를 반복하는 시간.
그 작은 말들이 내 안의 언어를 마르게 두지 않는 걸까.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다만 체레케스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익이 있다면, 그 이익은 특정 활동이나 빈도보다
돌봄에 관여하는 ‘경험의 결’ 자체에 달려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가족 역학이 이 잠재적 이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더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지적인 가족 환경에서 자발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는 것과,
지지가 부족하거나 부담으로 느껴지는 환경에서의 돌봄은
조부모에게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도 함께였다.
손주 돌봄은 ‘좋다’로 끝나는 한마디가 아니다.
어떤 날은 힘이 된다.
어떤 날은 부담이 된다.
그 사이에서 뇌도 마음도 함께 반응한다.
오늘 내가 손 내밀고 싶은 방향은 하나다.
손주를 돌보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을 “얼마나 했지”로만 재지 않아도 된다.
대신 그 시간에 내가 얼마나 말했는지,
얼마나 기억했는지,
얼마나 연결되어 있었는지를 한 번만 떠올려보자.
그리고 돌봄이 버거운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혼자서 끌어안지 않아도 된다.
자발성의 감각과 지지의 구조가 달라지면,
같은 돌봄도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