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고령 환자에서 불안·우울이 피로 중증도와 함께 높게 나타났다
피곤하다는 말이 자꾸 길어지는 날이 있다.
저녁 무렵 약국 조명이 조금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카운터 위에 길게 출력된 처방전이 놓이면 나는 약 이름과 용량을 한 줄씩 다시 읽는다.
종이 한 장인데 마음이 먼저 지친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파킨슨병 관련 피로에 가깝다.
나도 그랬다.
특히 “잠을 자도 낫지 않아요”라는 문장이 나올 때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 앞에서 스스로를 탓하고 있나?
휴식이나 수면으로 쉽게 가라앉지 않는 피로가 있다.
파킨슨병 관련 피로는 정신적·신체적 소진을 함께 만든다.
운동 증상의 중증도와 무관하게 어느 단계에서든 나타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운동 증상을 잘 조절해도 피로는 따로 남는다는 말이 남는다.
불안과 우울은 그 피로의 곁에 자주 선다.
‘세계 정신의학 저널’에 실린 연구는 그 동행을 확인했다.
연구는 2023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상하이 제2재활병원에서 치료받은 파킨슨병 고령 환자 123명을 대상으로 했다.
불안은 벡 불안 척도(BAI), 우울은 노인 우울 척도(GDS), 피로는 피로 척도-14(FS-14)로 평가했다.
불안과 우울은 생각보다 흔했다.
불안 유병률은 약 64.2%였고, 평균 BAI 점수는 19.59 ± 10.92였다.
우울 유병률은 약 56.1%였고, 평균 GDS 점수는 12.82 ± 6.37이었다.
피로 점수는 불안·우울 점수와 함께 올라갔다.
FS-14 총점 평균은 약 9.46 ± 1.89였다.
신체적 피로는 5.77 ± 1.51, 정신적 피로는 3.69 ± 1.20이었다.
연구진은 피로 점수(총점·신체·정신)와 불안 및 우울 사이에 유의한 양의 상관관계가 관찰됐다고 썼다.
나는 이 결과가 ‘기분 문제’로만 읽히지 않았으면 한다.
약 봉투를 챙기는 일은 건네는 순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치료 전체를 버티는 힘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약국에서는 피로가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다시 묻게 된다.
질환의 일부인지, 약으로 생긴 이상반응처럼 치료 과정에서 더해진 것인지.
그래서 약 목록에서 상호작용과 중복 처방을 먼저 정리한다.
보충제는 시작 전에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하자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피로가 길어질수록 마음도 같이 흔들린다.
불안과 우울의 작은 신호가 보이면 복약과 일상 기능이 함께 흔들리는지까지 본다.
이 연구는 어떤 상황에서 더 취약해질 수 있는지도 함께 봤다.
단변량 분석에서는 월 소득, 질병 기간, 질병 중증도가 불안 및 우울과 유의하게 연결돼 있었다.
다변량 로지스틱 회귀에서는 월 소득이 낮거나 질병 기간이 길거나 중증도가 진행됐거나 다질환 동반이 있을 때 불안 위험이 더 높았다.
우울은 월 소득이 낮고 질병이 중증인 경우 위험이 증가했다.
또 질병 기간이 길수록 우울에서는 보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됐다.
약 봉투는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담는다.
오늘 내가 권하고 싶은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다.
다음 외래나 상담 전까지 “피로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하루 한 줄이라도 적어두는 것이다.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를 나눠 한 줄씩 남기면 불안과 우울의 그림자도 더 빨리 포착될 때가 있다.
약이나 보충제를 바꾸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그 마음까지 포함해 의료진과 약사에게 먼저 꺼내 놓아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