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숫자가 먼저 달린 날

남성의 심혈관 위험, 생각보다 빨리 시작된다

by 전의혁

나이가 들수록 “아직 괜찮겠지”라는 말이 더 자주 나온다.


약국 카운터 위 혈압계 버튼을 한 번 누르고, 종이 한 장을 다시 접는다.
형광등 아래 숫자는 또렷한데, 마음은 자꾸 흐릿해진다.
오늘은 유난히 “언제부터 챙겨야 하지?”라는 질문이 오래 남는다.


그건 겁이 많아서가 아니라, 시작 시점을 놓칠까 봐 생기는 긴장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30대 후반이 가까워질수록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검진은 40대부터’라고 미뤄두는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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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심장협회저널》에 실린 새 연구는 그 미루는 습관을 건드린다.
심장병은 미국에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사망 원인 1위지만, 남성은 더 이른 시기부터 위험이 자라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정기 선별검사를 언제 시작할지, 질문이 더 앞쪽으로 당겨진다.


심장병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연구진은 5,112명을 약 34년 동안 추적했다.
참가자들은 1980년대 중반 연구 시작 당시 18~30세였고, 그때는 모두 건강한 상태로 간주됐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연구진은 뇌졸중과 심부전 등을 포함해, 심혈관 질환이 언제 발생하는지 따라갔다.


그리고 35세부터, 남녀 사이의 간격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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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격차를 가장 크게 만든 건 관상동맥 심장질환이었다.
관상동맥심장질환은 동맥 벽에 지방이 쌓여 혈관의 길이 좁아지면서 혈류를 제한하는 질환이다.
심근경색의 가장 흔한 원인이기도 하다.
남성의 위험이 더 먼저 움직인다는 말은, 결국 이 흐름이 더 빨리 시작된다는 뜻에 가깝다.


연구진은 다른 요인들도 함께 고려했다.
혈압·콜레스테롤·혈당 수치, 흡연 여부, 신체 활동, 체중 같은 것들이다.
그렇게 보정하자 격차는 눈에 띄게 좁아졌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이번 연구만으로, 그 차이의 이유를 한쪽으로 단정하긴 어렵다.


이 연구에서 말하는 유병률은, **‘그 나이에 어느 정도 비율이 질환을 겪기 시작했는지’**를 뜻한다.
데이터는 더 구체적이다.
남성은 여성보다 약 7년 더 이르게 심혈관 질환 유병률 5%에 도달했고, 평균 연령은 남성 50.5세, 여성 57.5세였다.
관상동맥심장질환만 보면 남성은 여성보다 정확히 10년 더 이른 시점에 유병률 2%에 도달했다.


그 숫자는 ‘지금은 아니겠지’의 시간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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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뇌졸중 위험에서는 유의한 성별 차이를 찾지 못했다.
심부전은 남녀 간 격차가 더 늦은 연령에서 만들어지는 듯했는데, 연구진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마지막 추적 시점에서도 참가자들은 모두 65세 미만이었다.
연구진은 뇌졸중과 심부전이 대개 더 늦은 나이에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함께 설명했다.


노스웨스턴대학교의 역학자 알렉사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한다.
심장병은 수십 년에 걸쳐 발달하고, 젊은 성인기부터 조기 표지자가 탐지될 수 있다고.
더 이른 나이에 선별검사를 하면 위험 요인을 더 빨리 확인해, 장기 위험을 낮추는 예방 전략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는 근본 이유를 직접 분석하진 않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차이가 성호르몬과 콜레스테롤 수치의 차이와 연관될 수 있다고 말한다.
원인은 단정하기 어렵지만, “시작이 빠르다”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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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정기 검진을 위해 의료 전문가를 더 규칙적으로 방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심근경색 위험과 관련해서는 남성이 상당한 ‘선행’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대목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프리드먼은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예방적 진료 방문을 장려하는 것이 중요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늘은 ‘언제부터’라는 질문을 조금 앞당겨 들고 가려한다.
달력에 한 칸, “혈압과 콜레스테롤 숫자 확인”이라고 적어두는 것부터.
검사나 치료를 바꾸는 일은 개인마다 다르니, 결정이 필요할 땐 의료진과 상의하는 편이 마음이 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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