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틴 이후 가장 큰 ‘경구 감소폭'
검사표를 받아 들면 먼저 숫자부터 보게 되는 날이 있다.
약국 조명이 조금 차갑게 느껴지는 오후다.
종이를 접었다 펴며 LDL이라는 세 글자를 다시 훑는다.
LDL 콜레스테롤은 흔히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린다.
그 별명이 붙는 순간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그건 무심해서가 아니라 숫자 하나가 내일을 미리 보여주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약을 꾸준히 먹는데도 왜 내려가지 않지”라는 말을 들을 때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약을 챙겨 먹고 있는데 검사 결과 앞에서 한 번쯤 멈춘 적이 있나?
2월 4일 《뉴잉글랜드 의학 저널》에 실린 임상시험 결과가 그 멈춤을 건드린다.
매일 복용하는 실험적 알약 엔리시티드(enlicitide)가 LDL 콜레스테롤을 최대 60%까지 낮췄다는 보고다.
알약인데 60%였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심장 전문의 앤 마리 네이버는 “스타틴이 개발된 이후 경구용 약물로 LDL을 이렇게까지 줄인 것은 단연코 이번이 가장 큰 감소폭”이라고 말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현재 이 약을 심사 중이다.
이번 결과는 그 결정에 반영될 예정이다.
엔리시티드는 PCSK9 억제제 계열에 속한다.
이 계열 약물은 간이 혈류에서 LDL 콜레스테롤을 더 잘 제거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혈관을 떠도는 LDL을 간이 더 빠르게 ‘회수’하도록 돕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연구진은 이미 위험이 높은 사람들에서 효과를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는 이미 동맥이 막혀 있거나 막힐 위험이 있는 환자 2,900명 이상이 참여했다.
참가자의 거의 97%는 이미 스타틴을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평균 LDL은 96 mg/dl이었다.
권고되는 기준과는 거리가 있었다.
동맥이 막힌 사람에게 권고되는 수치는 70 mg/dl이다.
심장병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권고되는 수치는 55 mg/dl이다.
여기서 중요한 장면은 딱 하나다.
“약을 먹고 있는데도 목표치에 닿지 않는 사람들.”
환자 3분의 2는 무작위로 엔리시티드 1일 1회 복용 군에 배정됐다.
나머지는 위약을 복용했다.
6개월 뒤 엔리시티드를 복용한 사람들의 LDL은 위약군과 비교해 약 60% 감소했다.
이 약물은 심장병과 연관된 다른 유형의 콜레스테롤과 지질도 유의하게 낮췄다.
그 결과는 1년간의 추적 관찰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연구에 따르면 뚜렷하게 늘어난 부작용 신호는 없었다.
네이버는 확립된 죽상경화성 심혈관질환이 있는 환자 중 현재 LDL 목표치에 도달하는 비율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효과가 큰 경구 치료제는 인구 집단 수준에서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예방하는 우리의 역량을 극적으로 향상시킬 잠재력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가능성은 크다.
하지만 아직 마침표는 아니다.
이번 임상시험은 약물 개발사 머크(Merck)가 후원했다.
연구진은 엔리시티드가 LDL을 낮춘 것이 실제로 심근경색과 뇌졸중 감소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별도의 임상시험이 이미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나는 오늘도 검사표를 접는다.
다만 그 접는 손끝이 예전만큼 떨리진 않는다.
숫자를 내리는 약이 하나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소식은 적어도 “방법이 없다”는 말을 조금 덜어준다.
약을 바꾸거나 새로 시작하기 전에는 지금 복용 중인 치료 계획을 의료진과 함께 다시 맞춰보는 편이 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