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안 풀리는 날, 식탁을 본다

유럽에서 커지는 ‘영양정신의학’의 기대와 신중함

by 전의혁

괜찮은 척하다가, 식탁 앞에서 더 솔직해지는 날이 있다.


약국 문을 닫고 조명을 낮춘 뒤, 카운터 위 처방전을 정리한다.
종이 소리가 바스락거리고, 머리는 여전히 “증상”이라는 단어에 붙잡혀 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식탁이 먼저 떠오른다.
증상에 매달리던 마음이, 오늘은 ‘내가 먹는 것’으로 방향을 튼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같은 방식으로는 더 버티기 어렵다는 신호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약과 상담이 일상이 될수록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도대체 어디서부터 바꿔야 하지”라는 생각에 멈춘 적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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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동안 정신의학은 주로 증상과 증후군을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
약물치료와 정신치료(심리치료)가 중심이었고, 그 틀은 지금도 중요하다.
다만 유럽 곳곳에서 임상의와 연구자들이 하나를 더 묻기 시작했다. 기존 치료에 반응하지 않았던 우울, 불안 같은 정신질환에 ‘표적화된 식이 개입’이 보탬이 될 수 있느냐고.


이 질문의 이름이 영양정신의학(nutritional psychiatry)이다.
식이와 영양소, 장-뇌 축이 기분과 생각, 행동과 어떤 연결을 가지는지 살펴보는 분야다.
식이 패턴이 염증, 미생물군집 변화, 뇌 기능과 이어진다는 연구들이 나오면서, 한때 주변부로 여겨지던 관심이 탄력을 받았다.


우리는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도구를 쓰고 있지 않다.


그 질문을 진료로 옮긴 곳이 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에는 영양정신의학과 심신의학을 함께 보는 외래 클리닉이 있다.
그라츠 의과대학에서 정신과 전문의 사브리나 가르시아가 이끄는 곳으로, 유럽에서 이런 시도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시작한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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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수련 동안 대체로 ‘증상 지향적 모델’을 배웠다고 말했다.
만성 환자 돌봄은 장기 증상 관리로 틀 지어졌고, “치유”는 가능성이 낮다고 여겨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2년 전 부서가 새로운 임상 우선순위를 논의할 때, 그녀는 영양정신의학 클리닉을 제안했다.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는 말처럼, 팀은 거의 처음부터 출발했다.


처음에는 소규모 의사 주도 서비스였다.
하지만 곧 정신과 의사, 정신치료사, 영양사가 함께하는 다학제 팀으로 확장됐다.
이런 확장을 볼 때마다 ‘치료’라는 단어가 혼자 서 있지 않게 느껴진다.


이 클리닉을 찾는 환자들은 대개 여러 치료가 실패한 뒤 의뢰된다.
여러 항우울제를 시도했고 전기경련치료까지 받았는데도 여전히 힘든 사람들이다.
환자들은 영양 결핍을 확인하기 위한 혈액검사를 받고, 표준 정신과 진료와 함께 행동치료를 제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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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증상만 관리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태도다.
가르시아는 증상 뒤에 있을 수 있는 대사적 또는 영양학적 기여 요인을 확인하는 것을 강조한다.
환자들은 보통 약 1년간 치료를 받는데, 그녀는 지속 가능한 행동 변화를 돕기 위해 그 정도 기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핍이 두드러지면 보충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이 부족한지 찾고 필요한 것을 더한다는 방식이다.
그녀는 “종종 비타민 D와 비타민 B군 전체가 문제”라고도 말했다.


희망이 커질수록, 신중함도 같이 커진다.


이 흐름의 과학적 근거는 호주 디킨대학교 식생활과 정신건강 센터 설립자 펠리스 잭카가 주도해 온 연구들로 영향을 받아왔다.
그녀는 2017년 무작위 대조시험에서 식이 개선이 우울 증상의 상당한 감소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하려 했다.
이후 연구들은 지중해식 등 다양한 식이 패턴이 염증, 장내 미생물군집, 뇌 기능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탐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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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특화 클리닉”이 정답이라고 보진 않는다.
아일랜드 유니버시티 칼리지 코크의 테드 디넌은 영양정신의학이 특히 기분장애에서 관련성이 크지만, 확립된 치료를 대체하는 것으로 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적절한 영양이 약물치료나 정신치료의 효과를 높인다고 했고, 전담 클리닉이 비현실적인 기대를 조장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나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식단이 마음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이 식단을 바꾸기도 한다는 사실을.


독일 기센 대학교의 울리케 기슈도 양방향 관점을 강조한다.
그녀는 영양정신의학이 식이가 정신질환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정신질환이 섭식 행동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정신질환은 일상 기능의 손상과 연결될 수 있다.
기슈는 심한 불안이 집을 나서는 것 자체를 어렵게 만들고, 그 결과 식품 접근성을 크게 제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문장을 읽고 나면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밖에 나갈 수 있었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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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기슈는 우울 증상이 있는 환자에게 철이나 비타민 D 같은 결핍, 혹은 갑상선 기능장애가 있는지 1차 진료에서 확인하도록 조언한다고 했다.
그리고 영양이 특화 서비스로 분리되기보다, 표준 정신과 진료에 더 완전히 내재화될 미래를 말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라츠의 가르시아 역시 영양정신의학이 학부 및 대학원 의학교육의 일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오늘은 진료실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작게 꺼내 보자.
다음 상담에서 “최근 식사와 결핍 검사를 함께 점검할 수 있을까요?”라는 문장 하나로도 시작할 수 있다.
약이나 치료를 스스로 바꾸기 전에,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가 필요할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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