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교육 확대, 식탁 앞 현실까지 비춘 제안
아픈 데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장바구니 앞에서 한 번쯤 오래 서 있는 날이 있다.
저녁 불을 켜고 식탁 위에 봉지를 내려놓는다.
사과 몇 개와 우유, 반쯤 할인된 빵이 보인다.
한 끼를 급히 때우게 하는 가공식품도 그 옆에 놓여 있다.
나는 약국 서랍을 닫던 손으로 영수증을 다시 펼쳐 본다.
먹는 일은 사소해 보여도, 늘 몸으로 돌아온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의과대학의 영양 교육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53개 의과대학이 이 자발적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기로 했다.
각 학교는 현재의 영양 교육을 점검하고, 담당 교수 리더를 정하고, 학생들에게 약 40시간의 영양 교육을 어떻게 마련할지 공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는 국가 차원의 엄격한 교육과정을 밀어붙이려는 방식은 아니라고 했다.
그건 유행을 좇는 제안이라기보다, 오래 미뤄둔 숙제를 다시 꺼내 든 일에 가깝다.
나도 그랬다.
복약 설명은 길게 해도, 식탁 이야기는 늘 짧았다.
그건 무지라기보다, 너무 짧은 진료와 너무 긴 하루 사이에서 생기는 막막함에 가깝다.
혹시 당신도 병원에서는 검사 수치를 듣고, 집에 오면 결국 “그래서 뭘 먹어야 하지” 앞에서 다시 멈추는 편인가.
케네디는 그동안 많은 의사들이 영양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식이로 만성질환을 예방하도록 돕기보다 약물 치료에 더 치우쳐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현장의 시선은 조금 다르다.
영양을 더 가르치는 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바로 뒤따른다.
뉴욕대학교의 마리언 네슬리는 “의사들이 영양을 더 많이 알면 정말 좋다”라고 했다.
하지만 곧바로 다른 현실을 덧붙였다.
지금 의료 시스템에서 의사는 환자 한 명당 대개 15분을 가진다고.
그래서 그녀는 의사가 정말 알아야 할 두 가지를 말했다.
환자에게 영양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알아보는 일.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그런 환자를 영양사에게 의뢰하는 일.
멀게만 들리던 영양 교육이 여기서 아주 구체적인 현실로 내려앉는다.
15분 안에 식탁까지 다 설명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이 걱정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2015년 《생의학 교육 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미국 의과대학 133곳을 조사했을 때 의대생들은 4년 동안 평균 19시간만 영양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이 문제 제기는 새롭지 않다.
1960년대 미국의사협회도 의과대학 영양 교육이 “불충분한 인정, 지원, 관심”을 받고 있다고 봤다.
1969년 백악관 회의의 보건 전문가들도 의사 대상 영양 교육이 기준 이하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니 이번 제안은 갑자기 생긴 요구가 아니다.
오래 알고도, 오래 바꾸지 못한 문제에 더 가깝다.
다만 하버드 의과대학의 아담 개프니 박사는 조건을 달았다.
교육 내용이 과학적으로 엄밀하다면 개선을 지지하겠지만, 의사들이 영양을 외면하고 약만 처방한다는 전제는 틀렸다고 했다.
문제를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정작 원인을 비껴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가 짚은 건 생활의 벽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비용과 시간 때문에, 또 값싼 가공식품에 쉽게 닿을 수 있는 환경 때문에 건강한 음식을 먹기 어렵다는 것.
진료실 안의 지식만으로는 끝까지 건너가기 어려운 문제라는 말처럼 들렸다.
지난 1월 케네디가 새 영양 식품 피라미드를 내놓으며 붉은 고기와 특정 지방을 맨 위에 둔 것도 논란을 불렀다.
비판하는 쪽은 그런 주장들에 강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 영양 교육 확대도, 시간을 더 넣는 일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무엇을, 누구의 언어로 전할지. 그 질문이 더 오래 남는다.
새 프레임워크는 각 학교가 자기 교육과정을 직접 설계하도록 열어뒀다.
연방 당국자는 표현 방식에 대한 이견은 있을 수 있어도, 의대생들이 더 많은 영양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데는 폭넓은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사협회와 미국의과대학협회도 지지 성명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나는 이 소식을 읽고 거창한 개혁보다, 더 작은 장면을 먼저 떠올렸다.
진료실의 15분과 집 식탁의 저녁 사이를 누가 어떻게 이어 줄 것인지.
그 질문이 조금만 더 정확해져도, 우리가 몸을 대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많이 달라질지 모른다.
당신이 식탁 앞에서 오래 망설이는 게, 무지해서만은 아닐지 모른다.
문제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 너무 짧은 시간과 너무 복잡한 식탁에 있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