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통 한 칸 앞에서 나이를 다시 세는 밤

고령층의 생물학적 노화 시계를 약 4개월 늦춘 것으로 나타난 멀티비타민

by 전의혁

가끔은 작은 알약 하나에 괜히 마음을 걸게 되는 밤이 있다.
잠들기 전 물컵을 식탁 끝에 놓고, 약통 뚜껑을 연다.
하루를 정리하듯 손바닥 위에 비타민 한 알을 올려두고, 나는 늘 잠깐 망설인다.
이게 정말 내 몸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그건 유난이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몸을 너무 늦기 전에 붙잡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봤다.
멀티비타민을 챙겨 먹으면서도, 이게 정말 뭐라도 해주기는 할까 망설였던 순간 말이다.
혹시 당신도 약병 라벨을 읽다가, 기대와 민망함 사이에서 잠깐 멈춘 적이 있는가.


20260316 _ 멀티비타민, 생물학적 나이 늦출 수 있을까 _ 2.png


그 질문에 아주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간 결과가 최근 나왔다.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된 이번 연구에서, 하루 한 알의 멀티비타민을 복용한 고령층은 생물학적 노화 속도가 약 4개월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
크게 들리지는 않지만,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넘기기도 어려운 숫자다.


연구는 958명의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무작위대조시험이었다.
평균 연령은 70세였고, 남성은 60세 이상, 여성은 65세 이상이었다.
절반은 2년 동안 고령층용 표준 일일 멀티비타민을, 나머지 절반은 위약을 복용했다.
이번 결과는, 많이 먹는다고 더 좋은 쪽으로 곧장 가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함께 보여줬다.


연구진은 생물학적 나이 시계, 즉 후성유전학적 시계로 노화 속도를 봤다.
혈액 속 DNA 변화를 분석해 몸이 실제로 얼마나 빠르게 늙고 있는지를 측정했다..
그 결과 멀티비타민을 꾸준히 복용한 사람들은 가짜 약을 먹은 사람들보다 2년 동안 생물학적 노화가 약 4개월 느리게 진행됐다..
특히 원래 노화 속도가 더 빠른 사람일수록, 그 속도를 늦추는 데 더 도움이 되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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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은, 멀티비타민의 이득이 누구에게 더 클지 다시 보게 만든다.
이미 영양이 부족하거나 건강 상태가 더 좋지 않은 고령층에게, 멀티비타민이 조금 더 유익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23년 ⟪미국 임상영양저널⟫에 발표된 다른 연구에서도, 하루 한 번 멀티비타민 복용은 일반적인 기억력 검사 점수를 약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다.
연구진은 여러 비타민과 미네랄의 상호연결성이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방식으로 함께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여기서 약국으로 서둘러 달려갈 단계는 아직 아니다.


이번 연구는 생물학적 나이의 변화가 실제로 몸 상태를 더 좋게 느끼게 하는지, 혹은 사망 시점까지 바꾸는지는 보여주지 못했다.
후성유전학적 시계는 수술을 받은 사람이나 임신한 여성에게서도 일시적으로 노화가 빨라진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니 이 숫자가 곧바로 건강수명 자체를 뜻한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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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들조차 “모두가 당장 멀티비타민을 먹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60세 미만에 대한 데이터는 이번 연구에 없었다.
가능성은 보였지만, 지금 바로 권고로 바꿀 단계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연구를 볼 때마다 알약보다 먼저 생활을 떠올리게 된다.
영양가 있는 음식, 활동적으로 지내는 습관, 친구들과 교류하는 시간 같은 것들.
멀티비타민 한 알이 노화 시계를 몇 달 늦출 수는 있어도, 삶 전체를 대신 살아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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