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와 80세 사이, 치매 곡선이 갈라졌다

대상포진 백신이 남긴 ‘20%’라는 신호

by 전의혁

나는 가끔 숫자에 약하다.
특히 “20%” 같은 숫자다.


크지 않아 보이는데.
사람의 삶에서는 크다.
한 가족의 시간으로 바꾸면 더 그렇다.


이번 이야기는 대상포진 백신이다.
그런데 끝이 치매로 이어진다.
의외라서 더 눈이 간다.


대규모 분석에서.
대상포진 백신을 맞은 노인은.
이후 7년 동안 치매 진단 가능성이 낮았다.


정확히는 20% 낮았다.
연관성이었다.
하지만 근거의 모양이 특이했다.


웨일스의 정책이 열쇠였다.
스탠퍼드 의대가 주도한 연구가.
웨일스 노인들의 건강기록을 들여다봤다.


지난 4월 Nature에 발표됐다고 한다.
그리고 12월 2일 Cell에 후속 연구도 이어졌다.
이미 치매가 있는 사람에서 진행이 느려질 수 있다는 신호까지.


여기서 잠깐.
대상포진은 왜 생기나.


원인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다.
어릴 때 수두를 앓고 나면.
바이러스는 신경세포 안에 잠복한다.


평생 잠복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거나 면역이 약해지면.
다시 깨어나 발진과 통증을 만든다.


20251219 _ 대상포진 백신, 치매 위험 20%↓ 근거는 _ 1.png


치매는 전 세계 5,500만 명 이상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매년 신규 사례는 약 1,000만 건으로 추정된다고도 한다.
그동안 연구의 초점은 플라크와 엉킴이었다.


하지만 돌파구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길을 보는 연구자들이 늘었다.
바이러스 같은 감염 경로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건강기록 연구에는 늘 약점이 있다.
백신을 맞는 사람은 대체로 더 건강 행동을 한다.
그 차이가 기록에 남지 않는다.


식단, 운동 같은 것들이다.
치매에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의무기록에는 잘 안 들어간다.


연구의 시니어 저자인 파스칼 겔트제터는 그걸 지적했다.
“백신을 맞으러 가는 사람들은 다르다.”
그래서 이런 연구만으로 권고하긴 어렵다고.


그런데 웨일스에는.
편향을 피할 수 있는 틈이 있었다.


2013년 9월 1일.
이 날짜가 기준선이 됐다.
백신 프로그램이 시작된 날이다.


규정이 이랬다.
그날 79세인 사람은 1년 동안 접종 자격이 있다.
78세는 다음 해에 자격을 얻는다.


문제는 80세 이상이었다.
그날 이미 80세인 사람은.
영영 자격을 못 얻었다.


작은 나이 차이가.
접근성의 큰 차이를 만들었다.
정책이 만들어낸 ‘자연 실험’이었다.


연구진은 기준선 양쪽을 붙잡았다.
기준일 직전 1주일 안에 80세가 된 사람들.
기준일 직후 1주일 안에 80세가 된 사람들.


“거의 동일한 집단”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나이만 다르고.
나머지는 평균적으로 같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리고 실제로.
자격이 있던 사람들 중 약 절반이 백신을 맞았다.
자격이 없던 사람들 중엔 거의 아무도 못 맞았다.


이 차이를 이용해.
백신의 효과를 분리해 낸 셈이다.
무작위 시험을 거의 흉내 낸 구조다.


우선 대상포진은 줄었다.
7년 동안 약 37% 감소했다.
임상시험과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핵심.
치매가 줄었다.


2020년 무렵.
그들이 86~87세가 됐을 때.
8명 중 1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치매 진단 가능성이 20% 낮았다.
연구자는 “어떻게 봐도 신호가 계속 보였다”고 했다.


연구진은 다른 차이를 찾아 헤맸다.
교육 수준 차이도 없었다.
다른 예방접종을 더 많이 받은 것도 아니었다.


당뇨, 심장질환, 암 진단이 덜한 것도 아니었다.
비슷했다.
남은 차이는 치매뿐이었다.


더 흥미로운 대목도 있다.
너무 늦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백신 효과가.
경도 인지 장애 시기에서도 보였다고 한다.
백신을 맞은 사람들이 그 진단을 덜 받았다.


그리고 더 놀라운 신호.
치매 진단 후에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서.
치매로 사망할 가능성이 낮았다.


추적 기간 동안.
치매가 있던 노인 7,049명 중 거의 절반이 치매로 사망했는데.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약 30%가 치매로 사망했다고 한다.


치료 같기도 했다.
예방을 넘어선 느낌이다.
연구자도 “치료적 잠재력”을 말한다.


20251219 _ 대상포진 백신, 치매 위험 20%↓ 근거는 _ 2-1.png


또 한 가지.
여성에서 효과가 더 뚜렷했다.


여성은 백신 후 항체 반응이 더 강하다는 설명이 붙었다.
대상포진도 여성에게 더 흔하다는 말이 뒤따랐다.
성별 차이가 기전에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직 모르는 것도 많다.
면역계를 전반적으로 깨우는 건지.
잠복 바이러스 재활성화를 줄여서인지.


최신 백신이 치매에도 같은 효과를 낼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결국.
연구는 무작위 대조시험을 향한다.


겔트제터는 말한다.
안전성이 알려진 ‘한 번의 개입’으로.
실용적인 시험을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또 하나의 힌트.
웨일스 데이터에서.
두 곡선은 약 1년 반쯤부터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시간을 다시 본다.


치매는 오래 걸리는 병이다.
그런데 어떤 변화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날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이 사람을 움직인다.


물론 이 글은 처방전이 아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지나치게 늦었다고만 생각했던 길에, 다른 문이 있을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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