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만 명을 15년간 추적한 연구가 내린 답
"너 그렇게 스트레스받으면 암 걸린다."
명절 때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었다.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펴고 있었고, 설거지를 마친 어머니는 내 옆에 귤을 놓으며 그 말을 하셨다.
귤껍질 냄새가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좀 찜찜했다.
야근이 잦았고, 잠을 잘 못 자는 날도 많았으니까.
혹시 이게 진짜 몸에 쌓이는 건 아닌가.
비슷한 걱정을 해본 사람이 꽤 있을 거다.
최근 학술지 《암(Cancer)》에 실린 연구가 하나 있다.
네덜란드 암학회가 지원한 국제 컨소시엄 연구인데, 규모가 크다.
네덜란드, 영국, 노르웨이, 캐나다 4개국에서 421,799명을 모았다.
15년 동안 추적했다.
연구팀이 살펴본 건 이런 것들이다.
신경이 예민한 성향, 외로움, 배우자를 잃은 경험, 전반적인 심리 고통.
이런 요인이 나중에 암 발생과 관련이 있는지.
결론은 명확했다.
관련이 없었다.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 어디에서도 정신 상태와 암 발생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은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 하나 걸린 게 있긴 했다.
외로움을 느끼거나 최근 배우자를 잃은 사람에게서 폐암 위험이 살짝 높았다.
그런데 흡연 여부를 빼고 다시 계산하니까, 그 차이가 거의 사라졌다.
스트레스 자체가 세포를 바꾸는 게 아니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이 담배를 더 피우고, 술을 더 마시고, 먹는 것에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것.
그게 진짜 문제였다.
나도 야근이 길어지면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들고 들어올 때가 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캔을 꺼내는 그 동작이 하루를 끝내는 의식처럼 됐던 시기가 있었다.
스트레스가 직접 몸을 망가뜨리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가 나쁜 습관의 문을 열어주는 거다.
수석 저자인 로네커 반 타윌은 이렇게 말했다.
"작은 효과가 관찰되더라도, 그것은 대부분 건강하지 않은 행동으로 설명된다."
이 연구가 한 가지 더 짚은 게 있다.
암 진단을 받은 뒤 "내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하고 자책하는 사람들.
이번 결과가 그 짐을 좀 덜어줄 수 있다고 연구팀은 말했다.
정신 건강을 챙기는 건 여전히 중요하다.
살아가는 동안의 질, 아플 때의 회복.
그건 분명히 연결돼 있다.
다만 "마음이 약해서 암에 걸린다"는 말은, 42만 명의 데이터 앞에서 자리를 잃었다.
오늘 밤 스트레스가 좀 쌓였다면, 편의점 캔맥주 대신 물 한 잔이 나을 수도 있겠다.
암 예방 때문이 아니라, 내일 아침 컨디션 때문에.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