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불빛 아래, 운전대가 말할 때

운전 패턴 변화, 경도 인지 장애의 조기 신호일 수 있어

by 전의혁

어느 날부터 운전이 조심스러워진다.


저녁 진료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키를 손바닥에 꼭 쥔 채 한동안 서 있었던 날이 있다.
내비게이션은 “출발”을 기다리는데, 나는 괜히 시동만 걸었다 껐다 했다.
피곤해서라고 넘기기엔 마음 한쪽이 자꾸 걸렸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익숙한 길에 몸을 숨기는 일에 가깝다.
나도 그랬고, 특히 부모님 병원 동행이 잦아지면서 더 그랬다.
혹시 당신도 “오늘은 가까운 데만”을 자주 고르는 편인가?


운전은 기억보다 먼저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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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츠하이머병에서는 운전 능력에 장애가 나타나고, 그 결함이 치매 초기 단계부터 보일 수 있다고 한다.
인지장애가 있는 사람은 교통사고에 연루될 위험이 2~5배 높아진다는 점도, 운전 기술이 인지 기능과 함께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문제는 그 변화가 너무 미묘해서 가족도 임상의도 놓치기 쉽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그 미묘함을 ‘차 안의 기록’으로 잡아보려 했다.
연구진은 차량 데이터 기록장치로 일상 운전 패턴을 모아, 경도인지장애(MCI) 환자와 정상 인지 기능을 가진 사람을 신뢰성 있게 구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대면 인지 평가나 뇌 영상 검사 이전 단계에서, 조기 식별의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차는 매일의 습관을 그대로 저장한다.


연구는 65세 이상 298명을 등록해, 최대 40개월 동안 운전 데이터를 추적했다.
등록 시점과 이후 매년 인지 평가를 했고, 56명은 경도 인지 장애였으며 242명은 정상 인지 기능이었다.
GPS 기반 추적 장치와 데이터 기록장치는 이동 횟수, 이동 시간, 이동 거리, 목적지, 과속과 급제동, 급회전 빈도 같은 변수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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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생활의 선택처럼 보였지만, 패턴은 분명했다.
경도 인지 장애가 있는 고령자는 이동 횟수가 더 적었고 특히 야간에 차이가 두드러졌다.
장거리 이동을 할 가능성이 낮았고, 새롭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을 피하면서 익숙한 경로를 고수하는 경향이 있었다.
추적 기간 동안 급회전 빈도가 증가한 점은, 수행 능력 저하와 연결될 수 있는 신호로 읽혔다.


연구진은 장거리나 낯선 환경을 피하는 변화가, 운전 능력 저하를 상쇄하려는 적응 전략일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안 가는 것”이 늘 위험 신호만은 아닐 수 있다.
다만 그 선택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겹쳐질 때, 우리는 그 의미를 다시 보게 된다.


운전 패턴만으로도 연구진은 참가자의 인지 상태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인지 평가 데이터와 연령, 성별, 인종, 교육 수준, 유전적 소인을 더하자 정확도가 더 좋아졌다.
흥미로운 건 운전 패턴 기반 모델이, 인지검사 점수나 인구학적 변수들만으로 만든 모델보다 MCI 구분에 더 정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너무 빠르게 결론으로 몰아가고 싶진 않다.
참가자 대부분이 백인이며 고학력자였다는 점은 일반화 가능성을 제한한다.
비교 코호트 설계와 비교적 작은 표본 규모가 인과 추론을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게다가 운전 패턴은 보호자 의견, 사회적 지지, 약물 사용, 다른 의학적 상태, 차량 종류와 상태 같은 변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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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이런 연구가 마음에 남는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하는 행동이, 누군가의 독립성과 이동성을 지키는 ‘이른 신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야간 운전과 장거리 이동이 줄어든 날을 달력 한쪽에 조용히 표시해 둔다.


만약 변화가 계속되어 불안이 커진다면, 혼자 단정하기보다 의료진이나 약사와 상의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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