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망구 Jan 01. 2022

사무실

호망구의 창업스토리


작가의 말

연남동에서 자그마한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사업을 하면서 겪은 인사이트를 SNS에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누군가에게 저의 작은 경험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떠돌이 사업가였다

유료 화장실 '꽃길' - 나의 한계를 시험했던 첫 번째 도전.

벌써 사업을 하겠다고 직장을 뛰쳐나온지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 중 '1년 반'은 1인 기업으로 사업을 준비(이전 사업이었던 '유료화장실(꽃길)'은 별도로 연재할 예정)했고, 카페와 다른 대표님의 사무실 구석을 전전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공간 청소도 하고 파트타임을 뛰기도 했다. 거래처와 미팅을 진행할 땐 카페가 자연스러웠는데, 집 주소로 찍힌 사업자등록증을 요구할 때면 괜스레 쪽팔림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사무실만 있으면 바벨탑이라도 쌓겠어


창업을 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사업을 시작하면 나만의 사무실을 간절히 꿈꾼다. 손님을 초대하기도 하고, 조용히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 팀원과 함께 커피 한 잔 나누며 우리의 사업을 함께 구상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침이 꿀꺽 넘어간다. 사무실만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


하지만 아직 사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선 매출이 없는데, 천만원이 넘는 보증금과 비싼 월세는 지름신 조차 벌벌 떨 정도의 막막함으로 다가온다. "조금이라도 매출이 발생하면 사무실을 구해야지", 또는 "팀원이라도 구해야 사무실이 의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나는 그 생각을 1년 반 동안 했다(그나마 장고 끝에 사무실을 구했다는 것이 대견할 따름).




드디어 함께 할 팀원을 찾았다


팀원으로 티나가 합류하면서 나에게도 명분이 생겼다. 일단 일을 시작하려면 공간이 있어야 하니까. 그런데 설레이는 마음으로 부동산을 탐색하면서 다시 가슴이 조여왔다. 홍대 근처의 사무실이라며 추천 받은 공간으로 갔는데, 4층으로 헐떡이며 올라가 보니 문을 3번 열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내부 공간은 더 가관이었다. 천장, 벽이 모두 뜯겨져 있고, 에어컨도 없었다. 기가 막히긴 하지만 시세를 확인해야 했기에 금액을 물었더니 500에 70이란다(사무실 용도의 공간은 일반 주거공간보다는 월세가 쎈 편이다). 과연 내가 만족스러운 공간을 적정한 가격에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라섹수술을 하고 난 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로 20곳을 둘러보고 나서는 좌절하기에 이르렀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요즘에는 '뻔하다'며 자만심을 가지고 넘겨버렸던 명언들이 가슴에 쏙쏙 박힌다. 역시 사람은 고생을 좀 해봐야 현실이 보인다고 했던가. 나는 8월 한 달 동안 50곳이 넘는 곳의 매물을 보러 다녔다. 1곳만 보고 들어와도 전신이 땀에 젖을 만큼 더운 날들이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기회가 오더라. 생각지도 못한 좋은 입지에 아담한 사무실 공간을 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스튜디오로 썼던 공간, 코로나19로 인해 퇴실하셨기에 마냥 기쁜 마음은 아니었지만 - 50곳 넘게 둘러본 나에게 바로 계약해야겠다는 확신이 왔다.
















이렇게 구한 사무실은 2년째 우리 팀의 사무실로 소중한 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사무실은 언제 구해야 하나요?


나는 여력이 되면 빨리 구하라고 조언해 준다. 특정 목표를 위해 공간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 못한 많은 장점을 제공하기 때문이었다.


함께 활동할 팀원을 모집할 때 공간 걱정이 없고, 거래처에게 사무실을 보여줌으로써 신뢰의 기반이 마련된다. 특히 사업자등록증에 사무실을 등록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요소인 것 같다(지금도 사업자등록증을 보면 뿌듯하다).

 

무엇보다 큰 부분은, 업무와 휴식의 분리이다. '일할 공간'이 없을 땐, 어떤 곳이든 내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에 마음이 쉬질 못한다. 출/퇴근과 업무 장소의 경계가 없는 워커홀릭 노마드의 삶을 꿈꿨던 나였지만, 3년이 지난 지금은 출/퇴근을 오히려 명확하게 지키고 있다(니가 지금 그럴때냐 싶기도 하지만).


의도치 않게(?) 예쁜 공간이 되어 지인들도 자주 대여를 요청하는 곳이 됐다. 1년 반 동안 추억도 하나씩 쌓아가면서, 힘든 스타트업의 현실을 낭만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노력할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기본이 되는 자금을 마련한 상태라면 사무실을 구해 보는 건 어떨까. 단순히 비용만으로 가성비를 따질 수 없는 값진 경험을 할 것이다.





+ 사무실을 함께 꾸며준 티나와, 사무실이 없을 때에도 함께 팀원으로 활동했던 라헬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