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소심하기 그지없는 나를 설명하는 행위이다.
또래의 아이들은 저 멀리 운동장의 한가운데에서 까만 고무줄을 이어 붙여서 길게 만들고, 고무줄을 뛰어넘고, 발에 걸고 노래에 맞춰서 퐁당퐁당 뛰어오르면서 놀았다.
아이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서 달리 할 일이 없어 심심했던 나는 주변에 있는 뾰족한 돌멩이나 바닥에 뒹구는 메마른 나무줄기를 주워서 땅 한 곳에 여러 번 그어내며 파내려 갔다.
동그랗게 파내려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작은 공간에 주변에서 서서히 물이 스며들어 작은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고인 물은 샘물처럼 맑고 깨끗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늘을 향해 폴짝폴짝 뛰거나 어울려 놀지 못한 이유는 고무줄을 잘하지 못했고, 못한다고 탓을 듣거나, 편을 가르면서 서로 맞짱을 떠야 하는 다소 사납기도 했던 그 놀이에 나는 졸았고, 나 때문에 친구들의 흥을 깰까 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놀다가도 아이들은 걸핏 싸우기도 하였고, 그 장면을 몇 번 목격하고서는 더욱 겁을 먹고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운동장이라는 텅 빈 공간에도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를 위치하게 한다면, 내가 있을 곳은 철봉대 근처 가장자리 끝, 그 지점이다.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 생각하고, 그곳에서 세상 편안함을 느꼈던 것이다.
누가 어디에 있든 개의치 않는 공간에서도 나의 자리를 스스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지금 생각하면 나에 대한 존재감, 자의식이 그때부터 공간에 대입하여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곳, 편안함을 느끼던 그 지점. 그곳이 늘 가장자리였다.
이런 자의식이 살아가는 내내 좌절, 고통을 가져온 갈등의 시작이 되었다.
어쩌면 운동장 한가운데 당당하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렇게 못했을 뿐이었으니까. 아닌 척하면서 운동장 모래나 파내려 가고 있는 아이가 한창 신나게 놀고 있는 또래들을 동경하고 있었음을 나는 알고 있었기에.
자의식과 꿈꾸는 모습 사이의 그 거리감, 그 폭이 강처럼 이쪽에서 저쪽까지 바라보기만 하고, 건너지 못하는 간격처럼 내 삶의 온통을 채우고 있었다.
그 거리감을 채우려고 편안함을 느끼는 가장자리로 스스로 매김 했던 자리를 어느 날은 호기롭게 떨치고 일어나기도 하고, 어느 날은 다시금 주저앉기도 하고.. 어쩌면 나의 삶이 그렇게 일어나 다시 주저앉는 반복이라 설명해도 무방할 것 같다.
여고생이 되어 한창 생각이 많았던 나를 설명하는 행위이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아버지의 월급으로 살림을 꾸려가셨다. 오빠, 나, 남동생 둘..
이들은 들거니 나거니 유독 공부 욕심이 지나쳤고, 대학에 대학원, 유학까지 꿈꾸는 남자 형제들을 위해서 어머니는 하숙생을 집에 들여서 생활비를 보태기에 이르셨다.
나는 자신들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오빠와 남동생들 사이에서 역시나 밀려나 있는 여고생이었다.
연탄불에 밥을 해내시는 어머니의 고생이 내 눈에는 들어왔고, 매일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 오시고 도시락을 날마다 이건 누구 거, 이건 아무개 거 하시면서 개수를 챙겨가면서 싸는 고단한 일상에 지레 일찍이 마음에 찬바람이 불기도 했다.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여겼지만, 여전히 사랑과 관심에 목마른 소심하고 예민했던 여고생이었다. 그 간극은 나를 왠지 모를 슬픔 가운데 있게 만들었다.
부엌방에서 어머니의 밥 짓고, 하숙생들의 입맛에 맞춰 메뉴를 바꿔가면서 지지고, 볶고, 튀기고.. 사나흘에 한 번씩은 김치를 담으시던 어머니의 일상을 소리로 들으면서 나는 마음의 일분 대기조로 지냈다.
그랬다. 무엇이 그렇게 몸을 언제든 일으켜 세워야 하는 그 가운데 있게 하였는지, 그다지 어머니께 도움이 되지도 못하면서도 나 혼자서 마음만은 그랬다.
어머니의 겨울은 그래서 더욱 추웠다. 밥 먹는 사람들의 숫자만큼 찬물에 쌓여있는 그릇들 앞에 있을 그 장면을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 없는, 그렇다고 별다른 대책이나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지도 못했던 그런 내가 그 겨울날 부엌방에서 여전히 어릴 적 운동장 한 끝에 쪼그려 웅덩이를 만들고 있던 것처럼 나는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고무줄 놀이하던 친구들에게도, 부엌일에 힘든 어머니에게도.. 마음만 있었다.
몸은 따라가지 못하고,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그러면서도 마음마저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을 수 없는 그 어중쭝한 사이에서 그렇게 겨울이 지나갔다.
그랬던 나에게 근사한 일은 집 근처 동네의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던 사촌언니 방에 놀러 가는 것이었다.
이모 집은 따뜻했고, 조용했으며 무엇보다 이모는 오로지 딸인 사촌 언니만을 위해서 모든 주파수를 맞추고 살아가고 있었다. 입맛 까다로운 언니를 위해 식사를 챙기고, 책상 겸 화장대를 갖추고, 옷장에는 너무 예쁜 언니를 위해서 원피스가 걸려 있었던 그런 방을 갖고 있었다.
환상이었다. 나는 부러움을 넘어서 질투가 날 만큼 시샘이 나기도 했다.
‘난 왜 이렇까?, 우리 집은 왜 이렇까?’ 사촌언니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그리고, 그 공간이 나에게는 도달할 수 없는 저 멀리 있는 것들이어서 때론 아득하게 비현실적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언니의 방을 나의 부엌방과 통째로 바꿔서 언니와 나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환상이었고, 내가 유일하게 그 방에 있는 것 중에서 얻어올 수 있는 것이 한 가지였다. 가지런히 꽂혀있는 세계문학전집 한 세트의 책들이었다.
그 겨울에 나를 위로해 주는 것은 이제 운동장에 무턱대고 땅을 파는 놀이는 아니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삶과 일상이 현실을 떠나서 마음껏 더 넓은 곳으로 떠나기 시작했던 것이.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부엌방의 어머니를 안타까워했던 공간만이 아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방에서 행복하기 시작했다.
빌려온 책들과 함께 했던 순간부터.. 나는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문장의 화려함과 섬세함과 그리고 상황의 숨 막히는 전개와 로맨스와 주인공의 심정과, 대화와, 어떤 곳을 나도 함께 떠나고 있었다.
때로는 기차를 타고, 때로는 어떤 언어로 서로 대화하는 지를 읽고, 마음의 심장이 어떻게 내려앉고 뛰는지를 하루 온종일 무한한 행복의 책 속의 여행에 빠져들어갔다.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나는 무작정 읽었을 뿐이었다.
무대책으로 시작했던 것에 비해 후속은 너무 강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세계로 던져진 것이다.
가장 기억나는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 죄와 벌이다.
그토록 부러워했던 사촌언니가 장식처럼 꽂아만 두고 읽지 않아서 빳빳했던 책 페이지를 처음 넘기는 느낌을 내가 즐기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더 이상 춥지 않았고, 더군다나 괜히 삐딱한 시선으로 질투하던 사촌언니가 더 이상 부럽지 않게 되었다.
삶이 그 공간에 머물러 있지 않고, 더 이상 쪼그려 앉은 내가 아님을 알았던 그 감동의 언어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이제 책만 있으면 그 무엇도 용서가 되는 단계를 건너가는 나를 경험하게 된 순간을..
무채색으로 한없이 단조롭고 불행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던 나를 끌어올려서 수만 가지 스펙트럼의 감정과 상황과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꿈꾸던 나로 뛰어올랐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보내고 학교에 가던 날, 이전과는 내가 다름을 느꼈다. 내가 더 사랑스럽고, 학교가 고마웠고, 친구들이 더 예뻐 보였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나를 만났던 것이다. 위대한 걸작 가운데, 그 낱말 하나하나가 살아서 생명체가 되어 내 안에서 꿈틀대면서 다가오는 순간 그런 작품을 읽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적을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하고, 그 시간에 감사함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읽기 위해서 아침에도 눈이 번쩍 뜨였고, 나의 하루를 사랑하게 되었다.
얼굴 표정도 더 이상 찡그리지 않았고, 그때부터 나는 조금씩 웃기도 했던 것 같다.
책의 감동이 전율처럼 느껴지고 책을 덮으면서 분명 이전과는 달라진 나를 뿌듯하게 바라보면서 나를 쓰다듬게 되면서부터다. 책을 읽음의 기쁨이 희열로 일상을 바꾸고, 나를 바꾸고, 심지어 나를 사랑하게 되었던 시간이 되었음을 안다.
나는 이제 나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물론 옆구리에는 책 한권이 반드시 들려있다. 책을 사랑하면서, 내 일상이 소중하고, 나를 사랑하는 여정으로 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