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린 걸음으로 -
겨울이 깊어질수록 봄은 가까이 옵니다.
봄을 찾는다면 더 깊은 겨울로 들어가야 하는 이치입니다.
어제 우리나라의 오늘이 아직도 어두운 현실을 보면서, 연둣빛으로 온 산이 물드는 푸른 봄을 꿈꿨습니다.
살고 있는 집 주변 개울에는 쨍하게 추운 날이 아직 오지 않아서 꽁꽁 얼어붙지도 않았고,
베란다에 내놓은 제라늄과 아보카도 화분을 아직 방안으로 들여놓지도 않았으면서 봄부터 기다립니다.
일요일 한 낮입니다.
겨울에 맛좋은 탱글탱글 제주도 귤을 바구니에 한가득 담아서 책상에 앉아 조용하게 하루를 보냅니다.
바구니를 조금 비워도 좋을 텐데, 가득 채워 담으면서 생각합니다.
바구니를 꽉 채워서 들어갈 틈이 없으면 더 담을 게 없다는 것을..
빈 틈이 있어야 매력도 있고, 사람도 끌리며, 더 담을 것도 있습니다.
누구나 어느 한 구석에는 그늘이 있고, 부족함이 있으며,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은 것이지만, 마음이 자리를 내놓은 빈 공간 여백입니다.
명상을 즐겼던 스티브잡스는 7개월 간의 인도 순례 여행에서 깨달은 통찰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들여다보면 마음속 불안의 파도는 점차 잦아들고, 그러면 좀 더 미묘한 무언가를 감지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여백, 빈 공간이 생겨야만 하는 이유는 평온함이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때로 실수를 할까 두렵고, 힘든 일이 생길까 무서웠고, 이겨내지 못해서 화가 났습니다.
처음부터 나약하고 결핍되어 있었습니다.
귤 바구니를 가득 채워서 틈과 결핍을 없애기 위해서 살아왔습니다.
조금 비워두는 여백의 무심함으로 더 넓게 보니, 이제는 내용물이 아니라 바구니도 보였습니다.
비집고 들어갈 여백이 없는 누군가의 일상에는 거기사람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뭔가 부족하고, 뭔가 아쉽고, 뭔가 어리숙한 그 결핍의 자리에 사람들이 깃듭니다.
누군가 자신의 결핍을 보이는 것이 사람을 끄는 매력입니다.
부족하고, 아쉽고, 어리숙한 자신의 결핍이 여백이 되면 샘물이 비어 있는 곳에 스며들 듯 다른 무엇인가가 자연스럽게 채워져 옵니다. 땅을 파서 구멍을 만들면 그곳에 어딘가에 있던 물들이 몰려오게 되어있으니까요.
일부러 괜찮은 척, 좋은 척, 더 나은 척하는 마음은 스스로의 구멍과 여백을 헛되게 채워놓은 것입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아쉬운 것을 받아들이고, 어리숙함이 당연한 결핍의 빈 여백에 있고 싶습니다.
부족함이 실패는 아니고, 아쉬움이 좌절은 아니며, 어리숙함이 완성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핍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결핍을 내보이는 용기, 그것이 끌립니다.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나를 돌아보면 압니다.
오늘을 얼마나 불완전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거리낌 없이 인정하면서 스스로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천연 다이아몬드는 사실 완벽한 보석이 아니라고 합니다. 강하지도, 투명하지도, 반짝이지도, 심지어 영원하지도 않다고 하네요. 우리가 아는 다이아몬드는 인간의 손으로 갈고닦은 ‘인공물’에 불과하고, 천연 다이아몬드는 어딘가 깨지고 무엇인가가 부족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이아몬드는 오랜 시간 지각 속에서 천천히 성장하기 때문에 탄소 이외에 다른 질소, 산소, 수소, 황 등의 다양한 원소가 끼어들고, 어떤 종류가 끼어들었는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파장의 태양빛을 반사하여다이아몬드의 ‘결함’은 다양한 색깔을 만든다고 합니다.
세상에나~~ 가장 완벽한 다이아몬드 보석에서도 다른 물질이 들어와 결함이 생기고, 이것이 다양한 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빛이 낸다니..
부족하고 결핍되어 있는 것이 매력이고, 아름다움이라고 것을 다이아몬드에서 배웁니다.
부족한 자신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눈이 누군가의 결핍에도 너그러울 것입니다.
다이아몬드의 결점이 아름다움 자체는 아니나, 그것으로 더욱 영롱한 빛을 내며 아름답게 빛을 내듯이,
아름다운 절대적은 것은 없으니, 그것을 아름답게 보는 눈이 있을 뿐이고,
결핍을 매력으로 느끼는 생각이 아름다울 뿐이다.
그러니,
그저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 고백하고,
미워할 것을 알면서 다가서고,
안될 것을 알면서도 행하는 것이 결핍으로 아름답게채워지는 여백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미리 계산하지 않고, 결과만을 생각하지 않기에 가능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는 것뿐이니까요. 모든 일이 끝만 있는 것이 아니며, 단지 끝만을 위해 가는 것도 아닙니다.
가는 길에 만나는 것들도 더 얼마나 소중하냐고 이야기하니까요..
그 길 가운데서 거절당하면서도 아팠지만 성숙하였고,
미움을 받았어도 모든 걸 내주었으니 되었고,
종국에서 안되었지만, 그래도 해봤으니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글을 쓰는 행위가 두렵습니다.
쓸려고 할수록 결핍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졸작의 글은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밖에 없으니,
민낯의 부끄러움을 떨쳐내려 용기도 내야 합니다.
'저장'을 클릭하고, '발행'을 클릭하는 순간에는 늘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에잇, 그냥 저지르자!" 하면서 발행버튼을 꾹 눌러버리고 맙니다.
어찌 보면 그런 부족한 순간들의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쓰면서 나의 결핍을 더 자주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만큼 나를 더 만나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과 얼굴을 대하지만, 정작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없었다는 것을 압니다.
내 속에 묻혀 있던 생각들을 더듬어 찾아가면서 결핍을 느끼고, 그것을 채우듯 글을 씁니다.
묵혀있는 나의 옛날의 기억들.
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이 머무는 어떤 것들..
누군가 나에게 건네온 말 한마디.
그 모든 것들이 다시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결핍된 내 빈자리 여백에 다른 사람의 맑은 샘물이 고여 들어오고,
내 안에서 다시 밖으로 빠져나가는 바다의 물결 파도와 같은 일들이 이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들어 제 핸드폰은 바쁘게 울립니다.
브런치의 다른 작가님들 글 발행을 알려주는 소식입니다.
핸드폰은 글을 싣고~~~~ 입니다.
그러면
나는 얼른 다른 작가님들의 세상이 펼쳐지는 브런치스토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다시금
나는 글을 쓰면서 나의 결핍을 보여주면서 브런치스토리 다리로 건너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