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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듯 나를 바라본다.

- 마음 풍경 (2)

by 산들바람

우울했던 시간이 있었다.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어떤 것에도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또 살아내야 하는' 의미로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몸을 일으키던 아침이 계속되었다.

웃을 수 없었고, 잠들 수 없었고, 화가 나기도 했다.

'나만 왜 이렇게..'

그 생각은 나를 옭아맨 사슬이었다.

그 생각의 묶임에 꼼짝할 수 없이 매여있었다.


할 수 없이

내 안에 흐르는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대체 왜 이런가?'싶어서였다.

생각이 많아지니, 생각에 대해서까지 생각하게 된 어처구니없는 생각의 끝장을 보는 일이었다.

나의 일들은 나와 상관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 그 일들은 생각하기 나름이었으니까.


어쩌면,

이 생이 끝나기 전에 갚고 가야 할 빚과 같아서, 반드시 겪고 가야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내 마음의 그릇이 워낙 작아서 담을 수 없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겪어야 할 고통을 모두 겪어야 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견딜 만하기도 했다.


그런데,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이건 너무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훅 들어왔다.

생각이 생각으로, 생각은 시작도 끝도 없이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내가 아닌 듯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남의 일이다.

지금 나는 내가 아니다.

나를 지나치게 염려하고, 지나치게 걱정하고, 지나치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어질 때까지.

나를 내가 아닌 또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생각의 매듭을 어떻게 풀고, 지을까? 그것이 더 중요해졌다.

관계보다, 사람보다, 사연보다 문제는 나였다.

문제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나였고, 나의 생각이었다.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를 '나에게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왜 이렇게 힘든 거야'를 '힘들어야지'로 생각하고,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를 '그렇게 말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고,

'나는 슬플 수 있고, 나쁠 수 있고, 잘못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나는 그냥 있는 존재로, 누군가에게 밟힐 수도 있는 날들을 살아가는 미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생각하니,

분명 밟힌 것 같은데, 밟히지 않게 된 듯 가벼워졌다.


많이 힘든 어느 날에는

내가 아닌 듯 나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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