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린 걸음으로 (2)
책방의 이름이다.
생각을담는집.
책방지기 꿈은 '신간을 읽는 책방 할머니'라고 말하는데, 그 수식이 되게 어색하다.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고, 작은 것에 기쁨이 넘쳐나는 소녀적 감성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는 사람의 발길이 도무지 들어오지 않는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의 작은 시골 마을에 숨어 있는 책방이다.
두 단어의 조합이 어색하다. 시골과 책방.
'시골에 누가 책을 보러 오고, 사러 올까?'
'시골에 농사를 지으러 가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책방을 열러 가는 사람이 있을까?'
몇 년 전 안동에 있는 폐교 초등학교 전체를 구입해서 그곳을 책방으로 꾸미고 사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돌아서 '도대체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인가?' 싶은 의심을 도착하는 끝까지 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정말 그림처럼 책방이 있었다.
안동댐 수몰로 인해 폐교된 와룡 도곡초등학교를 통째로 책방으로 만들었다는 스토리처럼 학교 운동장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교실 벽면에는 온통 헌책들이 꽂혀있는 서가들이고, 옆 교실에 들어가도 역시나 서가들이었다.
서가를 놓을 수 없는 위치에는 바닥에 책들이 쌓여 놓여 있었다.
어디를 가나 모두 책이었다. 교실 벽면, 계단, 복도...
사람은 오히려 넓은 책방 가운데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들어가 생활하고 있었다.
책이 주인이고, 사람이 객이었다.
'안동 책마을' 이름이 말해준다. 책이 주인임을.
책을 판매하는 곳이라는 책방의 고정관념을 떼면, 시골 책방은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책을 읽고, 책으로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책을 두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책의 통로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의 글쓰기를 돕는다.
북콘서트와 음악회가 열리는 날은 책방지기가 애써 가꾼 텃밭 채소가 오르는 호사스러운 밥상을 맞이할 수 있다.
심지어 가끔 책을 끼고 잠드는 북스테이도 한다.
살아있는 것들이 더 생기를 더하는 책방이다. 창가에 놓인 햇빛을 마음껏 받는 화분들이 그렇다.
식물들은 어느 위치에 있어도 거기에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곳을 찾을 수 없는 꼭 있어야 할 자리이다.
나는 이제야 책방이 시골과 조합이 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책은 소나무를 바라보고, 유리창에 한껏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과 서로 한 몸으로 물들어 있으며,
북쪽의 책방 뒷 산은 '그저 거들뿐'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게 그림 같다.
책방의 풍경을 말로 담아보았다.
그러나,
책방의 진가는 따로 있다. 말이 끊긴 고요 가운데 그곳을 깊이 느껴야 한다.
도시의 온갖 소음이 뚝 끊어진 그 자리에 책방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 앉아있는 잠깐의 시간에 내가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곳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느낄 만큼 고요하다.
오롯이 자신을 만나 혼자만의 소리를 듣고 글을 쓰는 책방.
책방지기가 숨어 있기 좋은 방이다.
나의 마음이 여기까지 이르고 보니, 책방지기의 생각이 너무 근사하다.
그런 생각이 담긴 집이다.
햇빛이 오래 머물다 가는 안온한 방이다.
마치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시선으로 상상해 보게 된다.
책방지기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깊은 샘물을 만난 듯하다.
퍼올려도 맑은 물이 끝나지 않는 깊이를 알 수 없다.
그곳 생각을담는집에서,
책방지기는 생각과 함께 행복을 담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무얼 하시나요?